미국 뉴욕 맨해튼, 스웨덴 스톡홀름
3부에서는 강 한가운데 위치한 섬, 하중도에 대해서 알아 봤습니다. 한강의 여의도, 밤섬, 노들섬 그리고 북한강의 중도, 남이섬, 자라섬처럼 육지 안의 섬들은 때로는 도시의 중심 역할을 하고, 때로는 시민들에게 휴식을 제공해 줍니다. 또한 이런 하중도는 '개발하느냐, 보존하느냐'와 같은 오래된 딜레마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럼 이제 시선을 넓혀 세계의 하중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번 장에서 알아볼 섬들은 강과 바다라는 지리적 경계를 바탕으로 한 국가의 수도, 더 나아가 세계의 중심으로 성장한 도시들입니다. 바로 좁은 땅의 한계를 수직적으로 극복한 미국 뉴욕의 맨해튼과 수십 개의 섬을 수평적으로 연결해 친환경 도시의 이정표를 제시한 스웨덴의 스톡홀름입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Manhattan)은 세계의 중심 뉴욕에서도 핵심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쪽의 뉴욕항을 통해 대서양으로 바로 연결되는 맨해튼 섬은 허드슨강과 이스트강, 그리고 하렘강에 둘러싸인 하중도입니다. 맨해튼의 면적은 59㎢으로 서울시 강남구와 서초구를 합친 크기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섬은 뉴욕의 중심일 뿐 아니라 미국의 중심, 더 나아가 전 세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며 ‘세계의 수도’라는 별명을 지닌 곳입니다.
맨해튼의 역사는 17세기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가 원주민으로부터 이 섬을 매입하여 ‘뉴 암스테르담’이라는 정착지를 형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세계 경제의 중심 월스트리트(Wall Street)의 기원 역시 이때부터인데요. 네덜란드는 인디언과 영국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맨해튼 남부에 '방어벽(Wall)'을 세웠고, 이곳을 중심으로 증권 거래가 점차 활성화되었습니다. 결국 뉴욕 월스트리트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발전하였습니다.
1664년 뉴 암스테르담은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며 현재의 '뉴욕'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뉴욕은 이리 운하(Erie Canal)의 개통, 그리고 유럽에서 다수의 이민자들이 뉴욕항을 통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미 대륙 내부와 대서양을 잇는 독보적인 물류 거점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처럼 맨해튼의 성장은 언듯보면 압도적인 입지적 장점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주 강력한 지리적 제약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맨해튼이 사방이 물로 가로막힌 섬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19세기 후반 뉴욕은 유럽으로부터의 대규모 이민자가 밀려들었고, 그와 더불어 엄청난 자본이 유입되면서 건설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좁은 섬, 맨해튼이 선택한 전략은 수평적 확장이 아닌 수직적 성장이었습니다.
1811년에 도입된 격자형 도로 체계(The Grid)는 섬 전체를 효율적인 직사각형 블록으로 나누었고, 이는 부동산 가치를 극대화하고 체계적인 마천루 건설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맨해튼은 세계적인 마천루들이 밀집한 고밀도 인공 빌딩 숲으로 변모했습니다. 1930년대에 이미 뉴욕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크라이슬러 빌딩 같은 초고층 빌딩들이 들어서며 맨해튼 특유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했습니다. 이는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 안에서 수평적으로 부족한 공간을 수직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인간의 의지가 마천루(Skyscraper)라는 현대 건축의 상징을 탄생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맨해튼 섬 남쪽은 자유의 여신상을 볼 수 있는 배터리 공원, 9/11 메모리얼 공원, 그리고 전 세계 금융의 흐름을 결정하는 월가(Wall Street)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맨해튼의 중심부에 위치한 타임스퀘어와 브로드웨이는 현대 대중 문화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섬의 북동쪽에는 센트럴 파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다수 등장하는 이 거대한 도심 속 공원은 인구 밀도가 극도로 높은 맨해튼 시민들의 휴식을 위해 계획적으로 보존된 공간입니다. 뉴욕 시민들은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어김없이 센트럴 파크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센트럴 파크 외에도 맨해튼에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크고 작은 공원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계 최고 수준의 부동산 가격과 인구 밀도를 기록하는 뉴욕 맨해튼은 지리적 고립이 오히려 인적, 자본적 집약을 촉발해 어떻게 문명의 최정점에 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증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대륙 미국에 수직으로 솟아오른 도시 뉴욕 맨해튼이 있다면, 바이킹의 후예 스웨덴에는 물길을 따라 수평으로 펼쳐진 도시 스톡홀름(Stockholm)이 있습니다. 스웨덴의 수도이자 스칸디나비아반도 최대의 도시(인구 약 100만 명)인 스톡홀름은 멜라렌호와 발트해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합니다. 스톡홀름은 총 14개의 섬이 수십 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하나의 유기적인 도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구조를 지닙니다.
스톡홀름이 섬 위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멜라렌호 입구의 섬에 성채를 쌓았고, 이것이 스톡홀름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16세기 구스타브 바사 왕 시절부터 스웨덴의 중심지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스톡홀름은 섬이 가진 방어적 이점과 수로를 통한 물류 편의성을 극대화하며 성장했습니다. 오늘날 스톡홀름의 중심에는 감라 스탄(Gamla Stan)이라 불리는 구시가지가 있습니다. 이곳은 중세의 좁은 골목과 건축물들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이는 스톡홀름이 섬이라는 지리적 제약과 침략의 역사 속에서도 어떻게 고유한 역사를 보존해 왔는지 보여주는 박물관과도 같습니다.
현재의 스톡홀름은 세계적인 친환경 도시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스톡홀름의 1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파편화된 지형은 과거에는 소통과 통합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지만, 현재는 수변 공간을 활용한 쾌적한 주거 환경과 생태적 다양성을 보존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0년 유롭 최초의 ‘녹색 수도(European Green Capital)’로 선정될 만큼 스톡홀름은 환경 보호와 도시 개발의 균형을 중시합니다. 섬 사이를 흐르는 물길은 단순히 아름다운 경관을 넘어 주요 교통로와 여가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또한 세계적인 IT 기업과 금융 기관들이 이 섬들 사이의 쾌적한 환경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섬이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무려 267,000여개의 섬이 국토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스톡홀름은 약 24,000개의 섬으로 구성된 스톡홀름 제도(Stockholm Archipelago)의 관문이기도 합니다. 스톡홀름이라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섬들의 무리 속에 속해 있으며, 이는 도시 계획에 있어 물과 육지의 경계를 허무는 유연한 사고를 요구했습니다. 맨해튼이 협소한 공간의 한계를 하늘로 뚫고 올라 갔다면, 스톡홀름은 물길과 섬이라는 자연적 요소를 도시의 인프라로 수용하며 수평적인 조화를 추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맨해튼은 수직의 밀도를 통해 세계 자본을 끌어모았고, 스톡홀름은 섬과 물의 공존을 통해 북유럽 특유의 삶의 질을 완성했습니다. 이는 섬이라는 지형이 기술적 극복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반면, 동시에 지속 가능한 미래 도시의 핵심 자산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앞서 3부에서 살펴 보았던 여의도의 계획적인 도시 경관이나 남이섬의 관광에 대한 정체성은 맨해튼과 스톡홀름과 같은 세계적 도시들이 이룬 섬의 기능적 재해석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 섬들은 지리적 고립을 오히려 연결의 기회로 바꿨고, 한정된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노력은 섬을 더 이상 변방이 아닌 도시의 중심지로 변화시켰습니다. 이렇듯 섬은 인간의 의지와 입지적 이점이 결합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에너지를 생산하는 공간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