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우리 모두의 서른

중위연령으로 바라본 서른의 사회적 무게감 변화

by 지리는 강선생

김광석과 서른 즈음에


내가 막 스무 살이 된 해였던 2003년 봄, TV에서 우연히 '내 인생의 콩깍지'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주요 촬영지는 강원도 춘천이었고,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주인공 남녀가 20대부터 30대까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겪는 사랑과 청춘에 대한 드라마로 기억한다.


이 드라마에 보다 눈길이 갔던 이유는 당시에는 보기 드물었던 뮤지컬적 요소가 가미된 드라마였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내용보다도 오히려 그 내용과 어울리는 음악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상황의 마디마다 적절하게 흘러나오는 음악들에 심취하면서 드라마나 영화를 즐기는 편이다.


드라마 속 여러 노래 중에서도 유독 내 귀를 사로잡았던 노래는 바로 '서른 즈음에'라는 곡이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 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서른 즈음에 - 김광석


처음에는 가수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가슴을 저릿하게 파고드는 목소리와 역시 가슴을 애틋하게 만드는 가사말에 어느새 노래에 흠뻑 빠져서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대체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이 누구지?'


노래 제목과 가수가 너무도 궁금해져서 찾아봤고, 비로소 이 노래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03년은 이미 그가 세상을 떠난 지 7년이 훌쩍 지난 후였다. 하지만 스무 살의 내가 뒤늦게 발견한 가수 김광석은 내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우선 그의 노래는 애틋한 가사와 풋풋한 멜로디가 너무도 잘 어우러졌다. 또한 그는 어떤 노래든 부르기만 하면 어느새 자신만의 목소리로 자신의 노래를 만들어 버리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 마디로 김광석은 가객(歌客), 그 자체였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1994년에 발표되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김광석은 그 해 딱 30살이었다. 그렇다면 서른 살 김광석은 과연 나이 '서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다행히도 그가 콘서트에서 '서른 즈음에'를 부른 후에 관객들에게 '서른'이란 나이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아래는 김광석 라이브 앨범 '인생 이야기' 중 두 번째 트랙, '이야기 하나'에 실린 내용이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시지요. 네. 어... 처음 보내 드린 곡이 '서른 즈음에'라고 하는 곡이었습니다. 공감하시는지요. (관객 웃음)

누구나 스스로의 나이에 대한 무게는 스스로 감당해내면서 지냅니다. 10대 때에는 거울처럼 지내지요. 자꾸 비추어보고, 흉내 내고. 선생님, 부모님, 또 친구들. 그러다 20대 때쯤 되면, 뭔가 스스로를 찾기 위해서 좌충우돌 부대끼면서, 그러고 지냅니다. 가능성도 있고. 나름대로, 주관적이든 일반적이든, 뭐, 객관적이든. 나름대로 기대도 있고. 그렇게 지내지요. 자신감은 있어서 일은 막 벌이는데, 마무리를 못해서 다치기도 하고, 아픔도 간직하게 되고, 그럽니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유리처럼 지내지요. 자극이 오면 튕겨내 버리든가, 스스로 깨어지든가.

그러면서 아픔 같은 것들이 자꾸 생겨나고, 또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면 더 아프기 싫어서 조금씩 비켜나가죠. 피해 가고. 일정 부분 포기하고, 일정 부분 인정하고. 그러면서 지내다 보면 나이에 'ㄴ'자 붙습니다. 서른이지요. 뭐, 그때쯤 되면 스스로의 한계도 인정해야 하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도, 뭐 그렇게 재미있거나 신기하거나 그렇지도 못합니다.

얼마 전에 후배 하나를 만났는데, 올해 갓 서른이에요. "형." "왜?" "... 답답해." "뭐가?" "재미없어." "아 글쎄, 뭐가?" "답답해." "너만 할 때 다 그래." (관객 웃음) 그 친구 키가 180이에요. "형이 언제 나만해 봤어?" (관객 웃음) "그래, 나 64다. (관객 웃음) 숏다리에 휜 다리다. 왜?" (관객 웃음)

뭐, 그런 답답함이나, 재미없음이나, 그런 것들이, 그즈음에, 그 나이 즈음에. 저뿐만이 아니라, 또 그 후배뿐만이 아니라, 다들, 친구들도 그렇고, 비슷한 느낌들을 가지고 있더군요. 해서, 계속 그렇게 답답해하면서, 재미없어하면서 지낼 것인가. 좀 재미거리 찾고, 이루어내고, 열심히 살아 보자. 뭐, 그런 내용들을 지난 7월에 발표한 4집 앨범에 담았습니다. 주변에서, 이렇게, 들으시더니 괜찮대요. (관객 웃음) 여유 있으시면... (관객 웃음) 감사합니다.


이야기 하나 - 김광석


세상을 떠나기 채 1년도 남지 않았던 서른 살 김광석은 이처럼 나이 '서른'에 대해 '답답함', '재미없음', 그리고 이제 청춘은 사라져 버렸다는 '쓸쓸함'으로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사실 꼭 그의 이야기에 언급된 '답답함', '재미없음', '쓸쓸함'이 아니더라도,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이제 내 청춘은 다 끝나가는구나'라는 허무함과 '이렇게 또 하루 멀어져 가는구나'라는 허탈함이 묵직하게 전달된다.



'서른'이 갖는 사회적 무게감


20대 초반에는 서른이 된다는 것이 두려웠다.


'정말 나이에 'ㄴ'자가 붙으면 인생이 그렇게 허무해질까?'

'서른이 되면 정말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까?'

'과연 젊은 날의 청춘이 모두 다 사라져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은 얼마나 슬플까?'


사실 이것들은 막연한 두려움들이었다. 하긴 원래 두려움은 제대로 직면하기 전 상상 속에서 더 두려운 법이니까!


이런 대책 없는 두려움을 안은 채로 사랑을 하고 또 이별을 했다. 여행을 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그러면서 세상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갔다. 그렇게 20대 중반을 지나 20대 후반이 되자, 비로소 20대 초반에 느꼈던 그 막연했던 불안감이 실체적으로 다가왔다.


"청춘은 젊은이들에게 주기 아깝다"라고 말한 버나드 쇼의 말처럼 소중했던 나의 청춘을 찰나에 탕진해버린 것만 같은 허탈감이 들었다. 이제 곧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절이라는 20대, 아름다웠던 청춘이 사라져 버린다는 아쉬움과 더불어 최후의 바리케이드와도 같았던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전쟁터와도 같다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두려움에 그 불안감은 더 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까? 2012년, 29살의 나는 그 아쉬움과 불안감에 그 어떤 해보다 더 많은 도전을 했던 것 같다.


대한민국 교육의 메카, 강남에서 학습법 컨설팅 회사에 초기 멤버로서 미친 듯이 몰입하여 뚜렷한 성과를 만들어냈고, 또 문득 20대의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춘천-여수 도보여행을 다녀온 것도 바로 그 해였다. 그리고 첫 교직생활도 29살이었던 바로 그 2012년에 시작했다.


그렇게 뜨겁게 한 해를 보내고 29살의 끝자락이었던 12월 31일, 카페에 앉아 이렇게 글을 남겼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함께 했던 시간은 이젠 추억으로 남기고
서로 가야 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

- 이젠 안녕, 015B


지나간 시간들과 다시 만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오게 될 비슷한 시간들과는 좀 더 성숙한 만남이 되기를!

나의 첫 Initial 3이 될 2013년은,

Showing up보다는 Stacking up을 위한 한 해가 되기를!

이젠 안녕!
나의 2012년 그리고 나의 이십 대!


이렇게 기록까지 남겨가며 나의 청춘, 나의 이십 대와의 이별 의식을 가졌다. 또한 자취방에 함께 서른을 맞이하는 친구 놈들을 불러 모아 통기타에 소주와 함께 서른 즈음에를 목청껏 부르면서 나와 너와 우리의 서른을 축하하고 또 떠나간 이십 대를 애도했다.


어찌 보면 20대 중반에 처음 시작한 '유럽에서 막살기'의 내일모레 서른 파티도 서른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무렵 나 역시도 내일모레 서른 파티를 했고, 이제 영영 나의 청춘과 이십 대와는 작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서른이 된 후에도 나의 삶은 신기하게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사랑을 하고 꿈을 꾸고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청춘 그 자체였다. 물론 내가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않았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서른 즈음에'의 화자의 심리와는 상당히 많은 괴리가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여전히 충분히 젊고 에너지가 넘쳤다.


스무 살 때 막연하게 상상했던, 서른이 되면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만 같던 모든 것들이 사실상 거의 그대로였다. 당시 나와 함께 서른을 맞이한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해봐도 거의 대부분 나의 생각에 공감했다. 어렴풋하게 이제는 '서른 즈음에'는 마흔 즈음에 들어야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곡이 발표되었을 1994년과 내가 서른을 맞이한 2013년은 사회적으로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단순하게만 봐도 1990년대의 서른은 대부분 취업, 결혼, 출산 등을 겪으며 어른이 되었지만, 2010년대 이후 들어서는 사회의 전반적인 생애주기가 훨씬 늦어졌고, 이 때문에 아직 서른은 여러모로 진짜 어른이 아니었다.


이 지점에서 나이 '서른'이 갖는 사회적 무게감을 인구 통계를 활용하여 구체적으로 분석해보기로 했다.



중위연령(median age)의 변화


어떤 사회에서 특정 나이가 갖는 무게감을 보다 피부에 와닿게 알아보기 위해 '중위 연령'이라는 개념을 활용해보았다. 중위연령(median age)은 전체 인구를 연령의 크기순으로 일렬로 세워 단순히 균등하게 2 등분한 연령이다. 이것은 하나의 지표를 사용하여 인구의 연령 특성을 파악하는 것으로 연령분포 자체가 비대칭이기 때문에 평균 연령(mean age) 보다 인구의 연령 특성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선 대한민국의 전체적인 중위연령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1960년부터 현재 2021년까지의 중위연령 자료를 찾아 그래프로 도식화해보았다. 이를 통해 출생률과 사망률이 모두 높았던 1960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는 중위연령 자체가 매우 낮고 그 증가폭도 작았다. 이후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와 자녀에 대한 가치관 변화로 출산율이 감소하고 의료기술의 발달로 사망률 역시 낮아지는 1980년대 중반부터는 중위연령이 지속적으로 가파르게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보다 장기적인 중위연령의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1960년부터 2067년(예측값)까지 약 100년 간의 중위연령 값을 찾아서 그래프로 도식화해보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중위연령의 변화 양상이 사회과학 분야에 자주 등장하는 S자 형태의 로지스틱 곡선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1960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중위연령은 초기 단계가 나타나고 그 이후로 가속화 단계, 이어서 종착 단계가 나타났다.


이를 보다 세부적으로 분석해보기 위해 중위연령을 연령대별로 구분하여 시계열적으로 정리했다. 즉, 중위연령이 10대인 1960년부터 1975년까지, 중위연령이 20대인 1976년부터 1996년까지, 중위연령이 30대인 1997년부터 2013년까지, 중위연령이 40대인 2014년부터 2030년까지, 중위연령이 50대인 2031년부터 2055년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위연령이 60대인 2056년부터 예측값의 마지막 해인 2067년까지 구분했다.

이를 통해 각 시기별 중위연령의 미세한 변화 정도를 파악할 수 있고, 또한 해당 연령대에서 다음 연령대로 넘어가는 기간을 파악함으로써 시기별 중위연령의 증가 속도를 상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를 분석해보면 중위연령이 10대로 나타나는 1960년(19세)부터 1975년(19.6세)까지는 15년이 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위연령이 20대로 나타나는 1976년(20세)부터 1996년(29.8세)까지는 20년, 중위연령이 30대로 나타나는 1997년(30.3세)부터 2013년(39.7세)까지는 16년, 중위연령이 40대로 나타나는 2014년(40.3세)부터 2030년(49.5)까지는 16년, 그리고 중위연령이 50대로 나타나는 2031년(50.1세)부터 2055년(59.8세)까지는 24년이 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중위연령이 19세부터 시작하지만 그 변화의 폭이 작아서 지속 기간이 15년이나 지속되는 1960년부터 1975년까지의 기간과 중위연령 값이 50대인 2031년부터 2055년까지 기간이 중위연령 증가 속도가 가장 느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에 띄는 점은 1960년부터 1968년까지는 중위연령이 시간이 지나며 감소하는 모습(19세 -> 18.3세)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출산율과 사망률이 모두 매우 높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의 중위연령 상승 속도와 2010년대 중반부터 2030년까지의 중위연령 상승 속도는 거의 비슷하게 나타나는데, 그 이후부터는 점점 상승의 정도가 둔화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가 중위연령 변화 양상의 초기단계, 1970년대 중반부터 2030년까지는 가속화 단계, 그 이후가 종착 단계라고 결론 지을 수 있다.



나와 너, 우리의 서른 즈음에


서른 즈음에의 원곡자 강승원이 이 노래에 처음 붙인 제목은 'thirtysomething'. '30대 즈음, 30대 무렵'이라는 뜻이다. 이는 1987년에서 91년까지 방영한 미국 드라마 'Thirtysomething'에서 따왔는데, 이 드라마는 80년대 중반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와 여피족들이 30대를 맞으며 겪게 되는 내용이라고 한다.


또한 '서른 즈음에' 노래가 발표되던 1994년에 시인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이 발표되어 화제를 모았다. 단군 이래 최고의 호황기라던 1994년,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민주화는 이미 이룩되었다며 과거의 순수했던 결의는 잊고 물질적인 풍요 속에 취한 채로 살아가던 서른 살들이 느끼던 복잡 미묘한 감정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 노래와 은근히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서른 즈음에 가 나온 1994년 6월에 1964년 1월 생인 김광석은 한국 나이로는 31살, 만으로는 딱 30살이었고, 그 해 한국의 중위연령은 28.8세, 한국 나이로는 딱 30살이었다. 그러니까 1994년에 대한민국에서의 서른이란 나이는 이제 막 인생의 생애주기의 절반을 지나서 후반기로 접어드는 길목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서른 즈음에를 부른 김광석도 역시 사랑의 설렘과 찬란한 청춘을 보낸 이후, 결혼과 출산, 그리고 안정된 삶을 얻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허전하고 막막한 허무함을 느꼈을 것이다.


개인의 나이가 어떤 사회에서 중간에 위치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해방과 전쟁 이후 출생한 세대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에 접어드는 시기가 바로 1960년부터 1970년대이었다. 당시 20살이면 이제 어른이고 사회인이라는 인식이 컸던 것은 당시 중위연령이 10대 후반~20대 초반이라는 점을 간과하기 힘들 것이다. 아래로는 부양해야 할 어린 동생들이 있고, 위로는 이제 곧 자신들이 부양해야 할 부모 세대가 있다는 점에서 당시 10대 20대는 철이 빨리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990년대의 중위연령은 20대에 머물렀다. 당시의 일반적인 30대에 대한 인식은 완전한 어른이었고, 사회에서 이제 완전 자리를 잡고 결혼하고 출산해서 곧 다가올 중년을 대비하고 있을 시기였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인터넷에 돌아다는 당시 서른 즈음이었던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노안인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패션 감각 자기 관리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의 서른들과는 너무도 확연하게 나이 든 표정과 연륜이 느껴지는 얼굴들이다. (궁금하면 구글에 '전국 노래자랑 30대 외모'를 검색하면 볼 수 있다.)


그럼 그 서른 즈음을 자신에게 적용해보자.


2003년, 그러니까 내가 김광석과 서른 즈음에를 처음 알게 되었고 서른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가졌던 시기 중위연령은 33.5세였다. 그리고 마지막 20대를 마무리 짓고 이제 막 서른으로 접어들었던 2013년의 중위연령은 39.7세였다. 그러고 보면 당시 친구들과 말했던 "서른 즈음에는 마흔 즈음 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 정말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현재 2021년의 중위연령은 44.3세이다. 즉, 2021년 6월 만 36세인 내가 중위연령이 되기까지는 아직 8년이나 더 남았다! 거기다가 내가 나이를 한 살 먹을 때마다 중위연령도 함께 약 0.6년씩 나이를 먹기 때문에 내가 중위연령이 되기까지는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비록 예상 값이긴 하지만 내가 중위연령이 되는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18년 후인 2038이고, 그때 내 나이는 54세가 된다.


즉, 2003년에 처음 서른 즈음에를 들었던 내가 한국 나이로 56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노래를 진정 내 노래처럼 느낄 수 있다는 통계적 계산이 나온다. 쉰을 훌쩍 넘겨서 가사처럼 정말 '또 하루 멀어져 가는' 시점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는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그러고 보면 2021년은 서른 즈음에 가 나온 시점에 태어난 아이들이 20대 후반에 접어드는 해이기도 하다. 이제 막 서른을 앞둔 1994년생들이 이 노래를 듣는다면 어떤 감정을 느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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