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달린다. 팬케익의 나라로 불리는 덴마크에서의 기차여행은 평평한 자연과의 만남이다. 동쪽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내내 펼쳐지는 바다와 하늘이 열차의 창문을 가득 채운다. 약 35km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훔레벡(Humleback) 역. 2004년 여름, 그날은 루이지애나 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마침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건축가 오른 우쫀(Jorn Utzon)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역에서 내려 20분 정도 걷는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 버스나 기차역에 내려 다시 20분을 걸으라고 하면 짜증이 났던 것 같은데, 그날은 우리 일행 중 누구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이유가 뭐였을까?
덴마크 인구는 서울 인구의 반인 500만이다. 코펜하겐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불과 40분 정도 기차를 타고 온 것뿐이었는데. 훔레벡 역에 내린 순간 우리는 마치 땅끝 마을에라도 온 듯한 한적함을 느꼈다. 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평평하고 한가로웠다. 공기는 쾌적하고 달았다. 걷는다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던가? 타박타박 걷는 걸음 소리가 이렇게 듣기 좋았던가? 작고 낮게 얘기해도 상대방의 목소리가 깨끗하고 또렷하게 들렸다. 경사가 없는 한적한 길은 걱정거리 하나 없는 휴일 오전 같다. 세상에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았다. 신선하고 신기했다.
그렇게 도착한 미술관의 입구는 작고 소박했다. 미술관 대지에 원래부터 위치해 있던 19세기 주택을 개조했다. 마치 어느 시골의 우체국 정문처럼 편안하게 우리를 맞이한다. 표를 사고 짐을 맡기면 몸은 더 가벼워진다.
미술관의 입구가 소박하다는 것은 이후 펼쳐질 거대한 반전의 복선이다. 미술관은 전시공간만 6,000m 2인 결코 작지 않은 크기다. 입구를 비롯한 미술관 전체 평면도는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다.
수평적으로 나지막이 엎드려있는 건축을 감싸 앉듯 둘러싸고 있는 대지, 주변의 자연환경을 한껏 끌어들이는 높고 낮은 창문들, 이들과 어울리거나 대조를 이루는 크고 작은 전시장과 작품들 사이를 슬렁슬렁 걷는다. 미술관 내부와 전시물에 집중하다, 어느 순간 자연광과 외부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다. 자연스럽게 외부 공간으로 걸음을 옮기기도 하고 바위에 앉아 쉼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날 나는 우쫀의 전시에도 제법 몸과 마음을 집중했었는데, 긴 시간 머물면서도 지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중간의 쉼 덕분이었다. 평면도를 보면서 순서대로 감상하다가도 필요하면 동선을 가로질렀다. 전시장 내부의 관람용 의자에도 틈틈이 않았다. 그렇게 내외부를 들고 나며 즐기다 보면 2-3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게다가 나는 그날 부인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지금은 고인이 된, 우쫀과 인증숏을 찍는 행운도 누렸다.
훔레벡 역에서부터 시작된 미술관 여행의 크라이맥스는 동선의 마지막에 위치한 루이지애나 카페다. 카페가 아직 시아에 잡히지 않을 때부터 커피와 데니시 패스츄리의 냄새가 여행자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드디어 카페에 들어서면, 당장 커피부터 한 잔 들이켤 것 같던 예상과는 달리 탄성부터 지른다. 평화롭게 나뒹굴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한 칼더 테라스(Caler Terrace)와 그 너머 스웨덴이 바라보이는 바다와 하늘이 화들짝 펼쳐진다. 스케일이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이동한 느낌이라니. 아, 통쾌하다.
차분하게 반복되던 전시실과 복도, 전시물은 마지막에 만나게 될 자연과의 만남을 위한 장치였다. 아르네 야콥센의 세븐 체어에 앉아 마시는 한 잔의 커피 맛은 거기까지 오는 과정 모두를 함축한다. 미술관 입구에서부터 내가 지나왔던 공간과 시간을 찬찬히 복기해 본다. 그제야 미술관의 디자인 요소와 전시장에서 본 내용이 소화되기 시작했다. 공간이 주는 스토리텔링의 감동이 밀려온다.
우리는 칼더 테라스에 오래오래 머물렀다. 칼더의 작품이 조금씩 움직인다. 잔디밭에 앉아 있다가 드러누웠다. 부드러운 바람의 호흡에 몸이 이완됐다. 멀리서 아이들이 서로를 부르며 노는 소리,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덴마크 인들에게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문화 충전뿐 아니라 휴식과 소풍의 공간이다. 잔디밭에서 놀다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가 볼 수도 있다.
코펜하겐에 갈 때마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꼭 방문했다. 내 박사논문의 실마리를 줬던 우치다 시게루의 전시와 그날 우쭌의 전시 모두, 전시 기획과 내용이 훌륭했지만, 내 몸과 마음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감동의 실체는 전시물이나 공간이 아니다. 창 너머 풍경이 선사하는 자연과 카페, 테라스의 시간이다. 그 공간에 직접 몸을 대고 앉거나 누워 존재했던 내 몸의 경험이다. 그때 봤던 구름의 형태, 커피의 향기가 여전히 선명하다.
우리는 이제 컴퓨터나 스마트폰 속에서 실물보다 더 생생한 건물, 자연, 사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건물, 자연, 사람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어디론가 떠난다.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세상에서는 몸으로 직접 체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물, 자연, 사람과,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들로 구분될 것이다. 인간의 몸이야 말로 가장 분명하고도 생생한 삶의 증거이자 현장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