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위험성 권위

by 초록 사과 김진우

제자 부부가 학교 앞에서 카페를 했다. 벌써 오래전 일이다. 유학비 마련을 목표로 구옥을 빌려 직접 수리한 다음 영업을 시작했다. 비싼 재료나 마감을 하진 않았지만 꽤 감각적인 공간이어서 한 때는 학교 주변의 핫플레이스였다. 함께 동영상을 보거나 강연을 할 수 있는 스크린과 프로젝터가 있었고, 일부러 비워 놓은 흰색 벽면은 학생들을 위한 갤러리로 활용됐다. 일종의 복합 문화공간이었다.


응원할 겸 자주 카페를 찾았는데, 한쪽 벽면에 걸린 세계지도가 눈에 들어왔다. 보던 중 가장 세련되고 아름다웠고 그들의 공간에 잘 어울렸다. 구매처를 물었더니 알아본 다음 연락을 주겠노라 했다.


이틀 뒤인가, 연구실로 택배가 도착해 열어보니 바로 그 세계지도였다. 순간 깜짝 놀랐다. 그들의 안목을 칭찬하는 과정에서 내가 잘 못 된 사인을 주었던 걸까?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스승과 제자라는 권력관계 속에서 내 말의 위험성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둔감함이 두고두고 싫었다.


디자인 분야에 있는 사람들끼리 소위 코드가 맞는 안목은 대화의 주된 소재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 입고 있는 옷에 대한 칭찬을 받으면 내 안목에 대한 인정이나 공감으로 느껴져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건 동등한 권력관계 일 때 얘기다. 나보다 어린 사람, 제자, 자식에게는 그런 말이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 수 있음이 당연했다. 그 이후에는 늘 조심하고 경계한다.


사전투표가 시작됐다. 학생 대표에게 공지해서 투표를 독려한다. 정치인은 투표하는 국민만 두려워하고, 투표를 해야 백성에서 시민이 되는 것이므로, 공약을 꼼꼼히 읽고 너희들의 삶을 바꿔줄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하라고 한다. 교육자로서 어른으로서 당연한 독려인데도 혹시나 내 독려가 특정 후보(정확히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드러내면 어쩌나 싶어 문장 하나하나를 검열한다.


반면, "이번 대선이요, 솔직히 누굴 찍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조심스레 말문을 여는 후배들이 있다. 아, 말로만 듣던 스윙 보터. 갑자기 가슴이 뛴다. 흥분하지 말고, 잘 얘기해야 하는데 싶어 크게 심호흡을 한다. 간단히 내가 지지하는 후보와 후보를 정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괜찮은 어른, 선배, 스승의 조건은 권력관계가 사라진 후에도 내 의견을 궁금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수천 명의 좋아요를 받는 인플루언서는 아니지만, 후배들의 질문 덕분에 내가 갖고 싶은 말의 권위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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