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하던 운동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조금만 앞으로 구부려도 정신이 번쩍 나게 아팠다. 양치질, 세수, 손 씻기 등이 모두 허리를 앞으로 구부리는 행위임을 깨달았다. 의사는 지금보다 나빠지면 수술해야 한다고 겁을 주며 엑스레이를 보여줬다. 4번 척추뼈가 배 앞 방향으로 미끄러져 있는 게 보였다. 통증 때문인가? 잘못 움직이면 저 뼈가 그대로 뱃가죽에 가서 붙어버릴 것 같았다. 일단은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처방받고 경과를 보기로 했다.
양말 신기, 신발 신기가 고통스러웠고 의자에 앉는 자세는 아예 불가능했다. 앉지 못하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스탠딩 데이블이 있는 카페를 찾아 급한 일을 했다. 내게 적합한 높이는 1,050mm 정도인데, 다들 조금씩 낮아서 조금만 작업해도 어깨와 목이 아팠다. 이러다간 목디스크까지 생길 판이었다. 평소라면 단번에 할 일들이 엿가락처럼 죽죽 늘어졌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며 미뤄 둔 영화를 봤지만 그것도 금세 지겨웠다.
높이 조절이 가능한 모션 테이블 구매를 고려했으나, 쇼핑을 위한 검색도 일이었고, 원래 있던 테이블을 움직이고 치우는 과정이 엄두가 안 났다. 급한 일에 밀리고 이것저것 따지다 시간만 흘렀다. 그렇게 금싸라기 같은 여름방학 중 3주가 어이없이 가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편성준 작가의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 143페이지를 보다 벌떡 일어날 뻔했다. "허리가 안 좋았던 그(헤밍웨이)는 높은 책상을 놓고 서서 글을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라는 문장이 책에서 튀어나왔다. 허리 통증을 참으며 당장 모션 데스트를 주문했다. 헤밍웨이도 서서 글을 썼다지 않나. 따라 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나도 좋은 글을 쓸 것 같다는 황당한 자신감이 생겼다.
사실 서있는 자세로 하는 작업에는 장점이 꽤 있다. 오래전 사무실에서 스탠딩 테이블을 썼다. 허리가 아팠던 것은 아니었는데, 치열하게 일하고 아이 키우던 시절이라 그랬을 것이다. 스탠딩 테이블은 조속히 결정해야 하거나 해 치워야 할 일에 적격이었다. 주로 오전에 사용했다. 인터넷 기사에 낚일 가능성과 정신이 다른 곳으로 분산되는 것을 막아줬다. 그 때의 기억마저 소환되자, 이제 모션 데스트만 도착하면 내 삶이 크게 바뀔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추석 연휴가 끼어있고, 충주 배송 가능 요일이 제한되어 있고, 거기에 내 사정까지 겹쳐 모션 데스트는 주문한 지 3주 만에 연구실에 도착했다. 그 사이, 죽을 것만 같던 허리 통증이 잠잠해졌다. 앉을 수 없을 때는 스탠딩 테이블의 존재만으로도 감지덕지였는데, 이젠 조금만 서 있어도 다리가 아프다. 아프면 앉을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기자 모션 데스트는 더 이상 "모션"일 필요가 없었다. 하루 종일 730mm 높이에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모션 데스크만 있다면, 허리만 아프지 않다면, 앉아서 작업할 수만 있다면 책 한 권 뚝딱 쓸 것 같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헤밍에이는 서서도 장편소설을 썼는데, 앉아서 쓰는 나의 글쓰기는 여전히 더디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