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후 첫 직장, 입사 며칠 후, 선임 디자이너가 조용히 불렀다. 아침마다 부서 내 모든 직원들(15명 정도)의 테이블을 닦아야 한다며 동참을 명령(?)했다. 원래는 사무보조 (여) 직원 두 명이 그 일을 도맡아 했는데, 부서 내 모든 여직원들이 함께 하기로 했다고. 두 사람이 하루 건너 하기에는 힘든 일이니 여성 직원들이 연대해 돕자고 했다. 연대의 대상인 여직원은 나와 그 선임 디자이너 두 명이었다. 나에게는 같은 시기에 입사한 두 명의 남자 동기가 있었지만 이 일은 처음부터 '여성'에 국한된 일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게 그 일을 지시했던 선배는, 부장님의 테이블을 닦는 동안 그 위에 놓여 있던 아이디어 스케치나 메모를 볼 수 있는 것이, 걸레질의 큰 혜택, 기쁨, 혹은 행운이라고 얘기했다. 매일매일 아이디어 경쟁을 하는 부서였으니 그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었을까?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의미를 찾고 즐기라?
이후 나는 순번에 의해 나흘에 한 번씩 아침마다 15개의 책상을 닦았다. 선배의 지시에 나는 아무 말 못 했다. 신입이라 용기가 없었다기보다, 뭔가 불편한데 정확한 이유를 몰랐다. 몇 가지 생각과 감정이 머리와 입 언저리에서 빙빙 돌았지만 말이 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30년이 넘은 일인데도, 나는 종종 그때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처럼 내 연구실 책상을 닦는 행위를 할 때 특히 그렇다. 생각해 보면 성평등, 직장 내 갑질 등 꽤 복합적인 이슈를 담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무 말, 행동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뒤늦은 성찰일까.
그 회사에서 나는 짧은 사내연애를 했다. 소위 썸 타는 기간, 확 달아올랐던 기간, 갈등의 기간, 그리고 마침내 이별을 결정했던 기간 동안, 그 사람의 책상 닦기는 그야말로 긴장과 스릴의 드라마였다. 좋았던 기간의 책상 닦기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모르긴 해도 그때만큼은, 그 행위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보다는 그 사람의 파티션 너머로 들어가 숨소리, 향기, 옷자락의 스침을 감지할 수 있던 몇 초가 더 소중했을 것이다. 하지만 크게 싸운 다음날 아침의 기억은 생생하다. 대개의 연애가 그렇듯, 나와 그는 연애의 기승전결을 거치며 서로의 바닥을 드러냈다.
나는 일부러 그의 자리만 걸레질을 안 했고, 그러면 부당한 업무를 바로잡겠다는 듯 엄숙한 목소리가 건너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놀란 다른 직원이 대신 걸레질을 해 준 적도 있다. 내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걸레질을 하러 가면, 이번에는 필요 없다며 그가 굳은 얼굴로 자리를 비켜 주지 않았다. 전문용어로 '삐짐'의 표현이다. 나는 걸레를 대충 빨아서 닦기도 하고, 일부러 서류 한 귀퉁이에 물을 묻히기도 했다.
그와 연애하는 동안, 걸레질하는 몇 초 안 되는 시간은 때로 영원처럼 길거나 순간처럼 짧았고, 벽돌처럼 무겁거나 깃털처럼 가벼웠으며,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유치하거나 목숨이라도 걸 것처럼 진지했다. 자기 책상을 왜 다른 사람이 닦아줘야 하는 건지, 그것도 왜 여자 직원들만 해야 하는 건지 등 던졌어야 할 일상 속 묵직한 질문들은 20대 중반 내 개인사와 뒤엉킨 채 사라져갔다.
지금이라면 상상조차 어렵다. 1990년이라는 시대를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게다가 그 결정이 여성 직원들의 업무 일부에 대한 부당함을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었다니. 세월이 흘러 이제는 옛날 얘기처럼 할 수 있게 됐으니, 느리고 때로 아이러니해도 성평등과 직장 내 갑질 등의 문제는 진일보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
오늘 이 에피소드를 소환하면서 떠오른 것은 옛 애인의 얼굴도, 성평등, 갑질 이슈도 아니었다. 나에게 걸레질을 부탁했던 선배, 내가 만약 그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새로 들어온 후배에게 무슨 명분으로 걸레질을 지시했을까? 그리고 그 후배는 나처럼 별말 없이 걸레질을 시작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