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석용
《나는 중년 노년을 도시에서 살아》
에세이 김석용
프롤로그
- 도시는 나의 배경이자, 내 뿌리입니다
- 시멘트 위에 뿌리내린 사람의 이야기
1장. 아스팔트 위의 청춘
- 종로 골목, 첫 직장, 도시의 빛과 그림자
- 회색빛 거리 속의 젊은 날
2장. 남양주라는 이름의 쉼표
- 서울과 가까운 도시, 그 사이의 숨
- 아파트 단지에서 피어난 작은 정원 이야기
3장. 도시의 계절은 벽을 타고 흐른다
- 콘크리트 틈에 피어난 봄
- 장마철의 베란다 풍경
- 눈 오는 날, 단지 안 벤치에 앉아
4장.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
-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인사
- 아파트 옆집 할머니와의 작은 연대
- 지하철에서 스친 인연들
5장. 나이 든다는 것, 도시에서
- 병원, 마트, 공원… 익숙한 동선 안의 변화
- 이 도시에서 나이 들어가는 방법
- 혼자와 함께의 경계에서
에필로그
- 도시의 나무는 뿌리를 내리지 못해도 꽃을 피운다
- 나 역시 그 나무처럼
프롤로그
도시, 나의 뿌리가 되어버린 곳
나는 도시에서 늙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자연을 그리워하고, 흙냄새를 그리워하며 말한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고 싶다고. 그러나 나에게 도시란 단지 회색빛 거리와 빽빽한 건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시는 나의 과거이고, 나의 일상이자, 나의 현재다. 어쩌면 마지막까지 함께할 운명 같은 존재다.
서울 한복판, 그 익숙한 시멘트 바닥 위에 내 청춘은 놓여 있었다. 수없이 걸었던 골목길, 서성였던 밤거리, 햇살이 쏟아지던 공원 벤치. 도시의 풍경은 계절 따라 옷을 갈아입으며 내 마음을 흔들었고, 내 삶을 가만히 안아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남양주라는 도시의 끝자락에 살고 있다. 서울의 연장선 같기도 하고, 나지막한 산자락에 기대 선 마을 같기도 한 이곳은, 중년의 시간을 품고 노년의 문턱에 선 나를 조용히 안아준다. 아파트 창밖으로 보이는 잿빛 하늘도, 늦가을 은행나무 아래에서 혼자 걷는 산책길도, 지금은 다 나의 일부다.
나는 시멘트 위에 뿌리를 내린 사람이다.
이 도시가 나를 길렀고, 다듬었으며, 때로는 거칠게 밀어붙이며 성장시켰다.
그래서 나는 도시를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하다. 떠나고 싶지 않다. 나는 이곳에서 내 삶을 꿋꿋이 살아내고 싶다.
이 책은 중년과 노년의 문턱에서, 도시에 뿌리내린 한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기록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시간 속에서도, 나는 천천히 나만의 걸음을 이어왔다. 그리고 그 걸음들은 이 도시의 일부가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아마 내 마음 한켠을 공감해줄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이 도시의 풍경 속에, 우리가 함께 살아낸 이야기를 적어내려가려 한다.
1장. 아스팔트 위의 청춘
서울에서의 젊은 날은 늘 바빴다.
계절을 느끼기도 전에 지나갔고, 마음 둘 곳도 없이 흘러만 갔다.
지하철 첫차에 몸을 실으면 벌써 하루는 절반쯤 흘러간 듯했고, 늦은 밤 마지막 전철에서 내려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간판 불빛도 희미하게 느껴졌다.
나는 청춘의 대부분을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서 보냈다.
회색빛 도로를 따라 걷는 일,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지워가며 살아가는 일이 익숙했다.
한때는 그 길이 전부인 줄 알았다.
누군가는 “청춘은 찬란하다”고 했지만, 내게 그 시절은 고요한 소음 같았다.
북적거림 속의 고독.
환하게 웃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있어도 내 마음엔 자꾸 음영이 졌다.
종로 골목 어귀, 20대 시절 첫 직장이 있었다.
창문도 없고, 햇살도 들지 않던 작은 사무실.
그곳에서 나는 매일 반복되는 서류 정리와 상사의 눈치를 배우며 사회라는 이름의 낯선 세계에 적응해야 했다.
점심시간이면 종로 뒷골목을 걷곤 했다.
식당 앞에 길게 줄 선 사람들, 담배를 피우며 한숨 쉬던 옷가게 아저씨,
그리고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연신 동전을 넣고 누군가와 싸우던 여자까지—
모두가 도시를 살아내는 방식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지독히 외로웠지만,
동시에 이 도시가 아니었다면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도시는 냉정했지만, 어떤 때는 더없이 솔직했다.
아무도 위로하지 않지만,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공간.
때로는 그런 익명성이 나를 살게 했다.
퇴근길마다 들르던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묵묵히 도시의 소음을 듣던 순간들이 있었다.
불쑥 고개를 든 하늘, 어둠 속에 반짝이던 전봇대 불빛,
그 모든 것들이 지금 돌아보면 나의 도시적 감수성을 만들었다.
나는 청춘을 도시에서 다 써버렸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그 모든 회색빛 장면들이 지금은 오래된 사진처럼 소중하다.
누군가에게 도시는 차가운 공간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도시는 삶의 교과서였고, 훈련장이었으며,
때론 가장 잔인한 선생이었다.
그리고 지금, 중년이 되어 돌아보니
그 모든 시간이 내게 말을 걸고 있다.
“그때, 넌 잘 살아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나는 분명 그 속에서 꿋꿋이 버텼다.
2장. 남양주라는 이름의 쉼표
서울에서의 삶이 달리기였다면,
남양주에서의 삶은 숨 고르기였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했을 때, 사람들은 말했다.
“그래도 서울이 낫지 않아요?”
익숙한 편리함, 빛나는 거리, 어디든 금방 닿는 교통망.
모두가 서울을 기준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편리함보다
조금 느린 속도, 조금 더 많은 여백을 선택하고 싶었다.
남양주는 서울의 그림자처럼 붙어 있으면서도,
느리게 흐르는 공기와 낮게 깔린 하늘이 있었다.
그 사이로 들려오는 새소리,
멀리 산등성이에 걸려 있는 노을빛,
그리고 밤이면 불빛 대신 어둠이 중심이 되는 이곳.
나는 이 느린 도시가 마음에 들었다.
서울에서의 삶이 내게 경쟁과 긴장을 가르쳤다면,
남양주는 기다림과 수용을 가르쳐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단지 안을 걷는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스친다.
모퉁이 작은 벤치엔 어르신들이 조용히 앉아 대화를 나눈다.
그 모습은 마치 시간마저 머무는 풍경 같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비슷한 삶의 무늬를 가진 사람들로 가득하다.
은퇴를 앞두고, 혹은 아이들을 다 키운 후
서울을 떠나 이곳에 자리 잡은 이들.
우리 모두는 비슷한 결로 나이 들어가고 있다.
누군가의 인생에 끼어들지 않되, 가만히 곁이 되어주는 거리감.
그게 이 도시의 예의이자 온기였다.
처음엔 서울과 다르게
어디를 가도 낯설고 조용한 이곳이
어쩐지 조금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알게 되었다.
이곳의 침묵은 배척이 아니라,
그저 나를 조용히 받아들이는 방식이라는 걸.
하루는 퇴근 후,
단지 내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노을이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지나는 아이들이 킥보드를 타고 웃으며 달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도시라는 건 꼭 서울처럼 바쁘고 북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걸 느꼈다.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면,
그 안엔 누군가의 웃음과 삶의 호흡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남양주는 나에게 쉼표다.
바쁜 문장 속, 숨을 고르게 해주는 멈춤.
이곳에서 나는 조금씩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법을 배우고 있다.
사람들 틈에서 나를 놓쳤던 서울의 시간들과는 다르게,
여기선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
나는 이 도시의 느린 리듬을 좋아한다.
빨리 걷지 않아도 되는 길,
계획하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
그리고 가끔 마주치는 익숙한 얼굴들.
남양주는 나를 비워냈고,
그 빈자리에 작은 평온이 스며들게 해 주었다.
3장. 도시의 계절은 벽을 타고 흐른다
자연은 시골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도시에서도 계절의 숨소리를 들었다.
벽을 타고 흐르는 햇살, 창문 너머로 느껴지는 바람,
아파트 베란다에 놓인 작은 화분 속에서도
시간은 분명히 지나고 있었다.
봄, 콘크리트 틈에 피어난 생명
겨울이 지나고,
어느 날 아침 베란다 창을 열었을 때
차가운 공기 사이로 희미한 꽃향기가 스며들었다.
어디서 피었는지도 모를,
이름 모를 꽃 하나가 아파트 화단 끝에 고개를 들고 있었다.
나는 문득 오래된 운동화를 꺼내어 단지 안을 걸었다.
꽃은 아무도 모르게 피어나 있었고,
아이들은 벚꽃잎을 줍기 위해 뛰어다녔다.
자동차와 사람들, 콘크리트 건물 틈 사이에서
도시의 봄은 그렇게 조용히, 하지만 분명히 찾아왔다.
아파트 단지 내 조경 화단,
버스정류장 옆 이름 모를 나무,
베란다에 놓은 초록색 화분 하나.
그 모든 곳이 작은 봄의 정원이었다.
나는 그 봄을,
도시 속에 피어난 생명으로 느꼈다.
여름, 장마와 베란다 풍경
도시의 여름은 유난히도 무거웠다.
비가 오면 창틀에 물방울이 맺히고,
베란다 바닥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하지만 그런 날엔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창밖으로 흐르는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흙냄새 대신 시멘트 냄새가 묻어 있었고,
두꺼운 회색 구름 아래 도시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따금 천둥이 울리면
멀리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따라왔다.
비 맞은 놀이터,
고무신을 벗고 흙탕물에 발을 담그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더 이상 흙이 아닌
회색 타일 위에서 여름을 보내지만,
그 속에도 어린 날의 향수가 있었다.
가을, 벽을 타고 흐르는 햇살
도시의 가을은 색으로 온다.
노랗고 붉은 단풍들이
길가 가로수에서부터 아파트 단지 안까지 스며든다.
나는 출근길에 늘 걷던 그 길에서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햇살이 벽에 길게 그려지고 있었다.
벽돌 틈 사이,
단풍잎이 타고 내려오는 그림자와 함께
가을이 내 어깨를 쓰다듬고 있었다.
단풍은 공원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버스정류장 앞 은행나무,
엘리베이터 앞 유리창 너머의 풍경,
그리고 담장에 부딪히는 낙엽 소리.
도시는 사방에서 가을을 쏟아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내가 삶은 밤을 내밀었다.
“이거 남양주 장날에 산 거야.”
그 말에 나는 괜스레 따뜻해졌다.
도시의 가을은 사람의 손끝에서 깊어졌다.
겨울, 눈 오는 날의 조용한 의자
도시의 겨울은 조용했다.
크고 시끄러운 도시도
눈이 내리는 날만큼은 소리를 삼켰다.
아파트 단지 안,
벤치 위에 소복이 쌓인 눈,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이
이야기를 남기듯 찍혀 있었다.
나는 종종 그 벤치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따뜻한 커피,
마음엔 어딘가 텅 빈 고요.
서울의 겨울보다 남양주의 겨울은 더 하얗고 더 느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도시도 하얗게 멈춰 있었다.
그러나 그 멈춤은 정지라기보다
다시 흐르기 위한 준비 같았다.
사계절은 시골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도시에도 계절은 분명히 왔고,
나는 그 변화를 매일같이 느끼며 살았다.
그것은 무언가 거창하거나 눈부신 것이 아니었다.
그저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햇살,
창문에 맺힌 빗방울,
길 위를 스치는 바람 속에서
나는 계절의 손길을 느꼈다.
도시는 여전히 바쁘고,
삶은 여전히 무겁지만,
계절은 언제나 벽을 타고 나에게 와주었다.
나는 그 벽에 손을 대어보며,
도시에서의 나이 듦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다.
4장.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
도시를 살아간다는 건,
사람들 사이에 서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거리감은 항상 일정하지 않다.
어떤 이는 가까운 듯 멀고,
어떤 이는 멀지만 묘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나는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쳤고,
그 중 몇몇은 내 삶에 조용히 흔적을 남겼다.
엘리베이터 안의 인사
매일 아침 같은 시간,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이 있었다.
검은 패딩을 입은 중년 남자,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던 사람.
처음엔 서로 눈인사만 나누다,
어느 날은 엘리베이터가 잠시 멈춘 적이 있었다.
그 짧은 순간 동안 그는 말했다.
“요즘 날씨 참 춥죠.”
그 한 마디가 우리 사이의 침묵을 조금 녹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짧은 인사는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도시에서는 소중한 온기였다.
내가 외롭지 않다는 증거.
내가 누군가의 시야 안에 존재한다는 징표.
그 후로 나는 인사를 먼저 건넸다.
서로 이름도, 사는 층도 모르지만
그 아침의 인사는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 있다.
옆집 할머니와의 작은 연대
옆집에 사는 할머니는
작은 체구에 허리가 굽어 있었고,
늘 검은 모자를 쓰고 다녔다.
처음엔 그저 지나치는 이웃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할머니가 현관 앞에서 짐을 들고 서성이는 걸 보았다.
무거워 보였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짐을 들어드렸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내게
손수 지은 찐 고구마를 내밀었다.
“고마워서 그래요, 혼자 사는 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그 말에 나는 마음이 뭉클했다.
그리하여 가끔, 나는 할머니의 문 앞에
귤 한 봉지나 식빵 하나를 걸어두었다.
이런 것이 도시에서의 연대였다.
거창한 도움도, 깊은 관계도 아니지만
서로의 삶에 조용히 스며드는 존재.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버틸 수 있다.
지하철에서 스친 인연들
도시의 지하철은 거대한 강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오가고,
그 안에서 나는 수많은 삶의 파편들을 보았다.
어느 날, 퇴근길.
지하철 좌석에 앉은 젊은 남자가
슬그머니 자리를 일어나 노인을 앉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다음 칸으로 사라졌다.
그 조용한 배려는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지만
나는 오래도록 그 장면을 기억했다.
또 한 번은
아이를 안은 젊은 엄마가 땀을 흘리며 앉아 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사람들이 힐끔힐끔 돌아보던 그때,
건너편에 앉아 있던 여자가
작은 초콜릿 하나를 건넸다.
“이거라도 드셔요. 힘드시죠.”
말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도시는 차갑지만,
그 안엔 언제나 누군가의 따뜻함이 숨어 있다.
사람들은 도시를 차갑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차가움 속에도
사람의 체온이 고여 있다는 것을.
어쩌면 도시에서의 관계란
짧고 가볍게 스치지만,
그 안에 묵직한 울림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누군가는 내게 손을 내밀고,
나는 또 누군가에게 눈빛을 건넨다.
이것이 내가 도시에서 배운 사람살이였다.
묶이지 않되, 스쳐가지 않는 마음.
부담 없이 닿되, 쉽게 잊히지 않는 온기.
나는 그 사람들과 함께
이 도시를 살아냈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5장. 나이 든다는 것, 도시에서
나이든다는 것은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삶의 무게가 더해지는 일이다.
그리고 도시는 그 무게를 날마다 측정하듯 내게 보여준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자동차의 속도,
어느새 낯설어진 유행가의 리듬,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의 주름들.
그 모든 것들이,
나는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걸 조용히 알려준다.
병원, 마트, 공원… 익숙한 동선
요즘 내 하루는 단순하다.
병원에 들러 검진을 받고,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사고,
산책 삼아 공원을 돈다.
청춘의 시절, 도시는 무한한 가능성과 속도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그 안에서 일정한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익숙하고 안정된 리듬이 되었다.
병원 대기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장바구니를 끌며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노년의 부부,
공원 벤치에서 햇살을 쬐는 중년 남자.
나는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본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나이 들어가는 얼굴들.
그 얼굴들 위엔 공통된 표정이 있다.
기다림, 포기, 체념이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잔잔함.
이 도시에서 나이 들어가는 방법
도시에서 나이 든다는 건
홀로 서는 연습을 하는 일이다.
더 이상 누구의 보호 아래에 있지도 않고,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책임에서도 조금씩 멀어지는 시간.
도시는 그런 나를 특별히 배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서운하지 않다.
젊은이들 틈에서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것,
줄을 서도 조금 늦게 걷고,
지하철 손잡이를 꼭 잡고 서 있는 일.
그 모든 소소한 행동들이
이 도시에서 나이 들며 내가 익힌 기술이다.
가끔은 문득 겁이 날 때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이 도시가 너무 빨라지면
나는 따라가지 못할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곧 마음을 고친다.
도시는 나를 알아주진 않아도,
내가 사는 방식을 강요하진 않으니까.
그건 큰 위로다.
있는 그대로,
더디더라도 내 템포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혼자와 함께의 경계에서
이따금 친구들과 만나 차를 마신다.
누구는 이사를 했고,
누구는 손주 돌보기에 바쁘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한 번 얼굴을 보면 반가움이 얼굴에 먼저 피어난다.
도시에서의 인간관계는
더 이상 매일을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조용히 안부를 나누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또한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의 고마움도 알게 되었다.
아파트 복도에서 들려오는 이웃의 발소리,
창문 넘어 들려오는 어린이의 웃음소리,
그 모든 작은 소리들이
내가 이 도시에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나이 든다는 건,
그 모든 소리를 흘려보내지 않고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나이 든다는 건
어떤 날은 외롭고,
어떤 날은 감사하며,
어떤 날은 그저 조용히 스며드는 일이다.
나는 지금도 이 도시의 한 모퉁이에서
소리 없이 살아가고 있다.
눈에 띄지 않지만, 사라지지도 않은 채.
도시는 여전히 바쁘고 시끄럽지만,
그 안에서 나는
고요하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
에필로그
시멘트 위에 핀 꽃처럼
도시에서의 삶은
누군가에게는 숨 가쁜 생존의 연속이지만,
나에겐 한 사람의 인생이 천천히 스며든 풍경이었다.
나는 서울이라는 이름의 바다에서 젊은 날을 건넜고,
남양주라는 조용한 강가에서 중년과 노년을 맞이했다.
누구도 흙을 갈지 않은 시멘트 바닥 위,
나는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
누군가는 말한다.
“도시엔 뿌리가 없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말 아래 깃든 오해를.
도시에도 뿌리는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시간이 켜켜이 쌓인 기억들 속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온기 속에,
그리고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낸 나의 발걸음 속에
도시의 뿌리는 내려가 있었다.
나는 그 뿌리 위에 꽃을 피우고 싶었다.
번쩍이는 꽃이 아닌,
누가 보지 않아도 조용히 피었다 지는,
그러나 단단한 삶의 빛깔을 지닌 작은 꽃.
살아간다는 건 결국,
어디에 있든
자신만의 뿌리를 찾고,
그곳에 조용히 정착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도시에서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 늙음은 쓸쓸함이 아니라,
오히려 견고한 고요였다.
수많은 풍경과 사람, 계절과 시간 속에서
나는 나의 인생을 마침내
‘살아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도시는 나에게 남은 마지막 무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무대가 결코 초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빛나는 조명 없이도, 박수 소리 하나 없어도,
이 무대 위에서 나는
끝까지 나답게, 조용히 걸어갈 것이다.
그 길의 끝에서
혹 누군가 내게 물어온다면,
“어디서 살았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참 잘 버텼습니다.”
작가 소개
김석용
도시에서 나이 들어가는 삶을 조용히 응시해온 사람.
서울의 골목과 남양주의 아파트 단지 사이를 걸으며,
시간의 무게를 문장으로 옮기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매일 사람의 삶과 마주하고,
에세이스트로서 일상의 단면을 글로 새긴다.
나의 글은 화려하지 않지만,
지나온 삶의 결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도시의 회색 벽과 낙엽 쌓인 벤치 위에서
사람의 체온을 길어 올리는 문장을 써왔다.
브런치스토리와 블로그 ‘아름다운 여행’에서
170편이 넘는 글을 통해 독자들과 만났으며,
《기억은 고요히 흐른다》, 《삶이라는 바다 한가운데서》, 《고요한 자리 하나》 등
삶을 담은 전자책을 꾸준히 펴내고 있다.
이 책 《나는 중년 노년을 도시에서 살아》는
도시라는 무대 위에서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뿌리내리고,
꽃 피우고, 조용히 익어가는지를 담은 고백이자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