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 머물다 간 자리

에세이 김석용

by 화려한명사김석용

오월이 머물다 간 자리 / 에세이 김석용

창밖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달라졌다. 오월의 마지막 날들이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아직은 완전히 떠나지 않았지만, 이미 작별을 준비하는 듯한 기운이 공기 중에 떠돈다. 나는 이런 순간을 좋아한다. 무언가가 끝나고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경계에서 느끼는 묘한 설렘과 아쉬움이 섞인 감정 말이다.

오월은 참으로 특별한 달이었다. 봄의 절정을 지나 초여름의 문턱에 서 있는 지금, 나는 오월이 내 마음속에 남겨놓은 자리들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그곳에는 따뜻했던 햇살의 기억과, 연둣빛으로 물든 나뭇잎들의 속삭임과, 사람들과 나눈 소중한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월이 선물한 시간들

오월 초, 혼자 걸었던 공원 길이 떠오른다. 벚꽃은 이미 져버렸지만, 그 자리를 대신한 신록들이 나를 맞았다.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이런 날씨가 제일 좋아." 혼잣말로 중얼거린 그 순간,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와 자연에 대한 사랑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그 순간을 곱씹어본다. 오월은 이렇게 소소하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선물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던 오후, 책장을 넘기는 손끝으로 전해지던 종이의 감촉, 저녁 산책길에서 만난 이웃의 따뜻한 인사까지. 이 모든 것들이 오월이라는 시간 안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만난 사람들의 얼굴도 오월의 기억 속에 선명하다.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과 나눈 따뜻한 순간들도 소중하다. 한 어르신은 창가에 앉아 늘 밖을 내다보셨다. "오월이 제일 좋다"고 하시며 희미하게 미소 지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가슴 깊이 남아있다. 그분에게 오월은 단순히 계절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추억과 연결된 시간의 다리였을 것이다. 동료 선생님들과 점심시간에 나눈 격려의 말들, 힘든 순간에 서로 건넨 위로의 손길들도 이 오월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머물다 간 것들의 의미

오월이 남긴 자리를 살펴보면, 그곳에는 단순한 추억 이상의 것들이 있다. 성장의 흔적들이다. 이달 내내 나는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고민했다. 때로는 막막했고, 때로는 영감이 번개처럼 스쳤다. 그 과정에서 만난 좌절과 기쁨이 모두 오월의 일부가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일이다. 오월 동안 써내려간 문장들 하나하나가 이 계절과 함께 익어갔다. 마치 나무가 계절에 따라 잎을 틀우고 열매를 맺듯이, 내 글도 오월이라는 토양 위에서 자라났다.

이 달에 만난 사람들도 특별했다.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독자분이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 브런치를 통해 전해진 댓글들, 그리고 가족들과 나눈 평범한 대화들까지. 이 모든 만남들이 오월이라는 시간 위에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변화 속에서 발견하는 것들

오월 말이 되면서 주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올라가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졌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서 말이다.

이 시기에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의 의미,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 그리고 지나간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에 대해서. 오월이 가르쳐준 가장 소중한 교훈은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창문을 열면서 느끼는 바람의 변화, 점심시간에 마주치는 햇살의 따스함, 저녁 무렵 들려오는 새들의 노랫소리까지.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오월이라는 큰 그림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그림 속에서 나는 삶의 진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들과 나눈 온기

오월은 관계의 달이기도 했다.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들과도 안부를 나눴다. 특히 요양원에서 만나는 어르신들과의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한 어르신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젊은이, 시간은 강물 같아. 잡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지. 대신 그 흐름을 느끼며 함께 가는 거야." 그분의 말씀이 오월 내내 내 마음속에서 울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따뜻함이야말로 오월이 남긴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말없이 건네는 미소, 함께 나누는 차 한 잔,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순간까지도. 이 모든 것들이 오월이라는 시간 안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제 오월이 정말로 떠나간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오히려 감사하다. 이 한 달 동안 내가 경험한 모든 순간들이 내 안에 단단히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오월이 머물다 간 자리는 빈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

떠나간 것들을 아쉬워하기보다는, 그것들이 남긴 흔적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오월이 가르쳐준 교훈들을 가슴에 품고, 다가올 유월을 맞이하고 싶다. 계절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번 오월을 통해 깊이 깨달았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나는 계속해서 이런 순간들을 기록하고 나누고 싶다. 오월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런 깨달음이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들은 영원히 남는다는 것 말이다.

오월아, 고마웠어. 네가 머물다 간 자리에서 나는 더 깊이, 더 진실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이제 새로운 달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내 안에 단단히 자리 잡은 너의 기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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