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석용
익숙한 골목이 말을 걸어오는 순간
글 / 김석용
사람의 마음에는 저마다 한두 군데쯤, 오래된 골목이 있습니다.
그곳은 늘 가까이에 있지만, 바쁜 일상에 쫓겨 자주 눈길을 주지 못하는 자리이기도 하지요.
나 역시 오랜 세월을 한 동네에서 살아오며, 집 앞 골목을 매일같이 지납니다.
그러나 어쩐지 오늘은, 그 익숙한 골목이 내게 말을 건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햇살에 젖은 담벼락, 군데군데 이끼가 낀 골목길,
비 온 뒤 더 짙어진 흙냄새, 그리고 누군가 베란다에 내건 파란 이불 한 장—
어릴 적부터 익히 보아온 풍경이지만, 오늘따라 모든 것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김석용, 잘 지내고 있니?’
골목이 내 이름을 부르듯 속삭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때로는 무심하게 지나치던 이 길 위에서,
나는 문득 내 삶의 작은 조각들을 되짚어봅니다.
이 골목에는 내가 겪어온 계절들이 고요히 쌓여 있습니다.
추운 겨울, 손을 호호 불며 뛰어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봄날, 사랑을 고백하던 젊은 연인들의 두근거림,
장마철마다 비를 피해 뛰어 들어가던 오래된 구멍가게,
여름 저녁 어스름 속을 걷던 중년의 그림자까지—
이 골목은 묵묵히 모두를 품고,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켜왔지요.
사람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익숙함이 때로는 무심함이 되고,
오래된 풍경은 생활의 일부가 되어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삶에 지쳐 어깨가 무거운 날이면
이 골목은 조용히 다가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오늘은 어땠니? 마음이 많이 힘들었니?’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을, 아무 말 없이 건네는 골목.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날들을 떠올려봅니다.
행복했던 순간도, 아팠던 기억도, 모두 이 골목을 지나왔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익숙함 속에서 전해지는 작은 위로일지도 모릅니다.
아침이면 이른 햇살을 쬐고, 저녁이면 노을빛을 안은 채,
골목은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내가 다시 돌아오기를, 내 마음이 쉬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익숙한 골목을 지나며
가끔은 걸음을 늦추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너, 정말 잘 살아왔다.
지금 이 순간도 충분히 아름답다.’
오늘 익숙한 골목이 내게 말을 걸었습니다.
나는 그 조용한 위로에 마음을 맡기고,
다시 한 번,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아무렇지 않게 반복되던 평범한 하루가,
오늘따라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