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석용
글 / 김석용
오늘 아침, 평소와 다른 길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스마트폰 지도는 꺼두고, 발길 가는 대로 걸었습니다. 20분쯤 지났을까요. 어디인지 모르겠더군요. 그런데 묘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길을 잃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자유로웠습니다.
요즘 저는 의도적으로 길을 잃어봅니다. 퇴근길에 한 정거장 일찍 내려서 걸어가기도 하고, 처음 가는 카페를 찾아 헤매기도 합니다. 지난주엔 동네 뒷산 등산로에서 샛길로 빠져 한 시간을 돌았습니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그 한 시간은 온전히 제 것이었습니다.
길을 잃으면 예상치 못한 만남도 생깁니다. 며칠 전, 처음 가는 골목에서 길 잃은 강아지를 만났습니다. 주인을 찾아주려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는데, 그 과정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여기 20년 넘게 살았는데 처음 보는 분이네요"라는 말씀을 들으며 웃었습니다.
길을 잃으면 찾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내 안의 직감이 살아납니다. 지도에 의존하지 않고 감각으로 길을 찾다 보면, 잊고 있던 본능이 깨어납니다. "이쪽이 집 방향인 것 같은데" 하는 막연한 느낌이 의외로 정확할 때가 많습니다.
중년이 되어서도 길을 잃는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젊을 때처럼 무작정 떠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일상 속에서 작은 모험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새로운 메뉴를 주문해보기, 다른 경로로 출근하기, 혼자 영화 보러 가기 같은 소소한 일탈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길을 잃어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입니다. 돌아가면 됩니다. 늦어도 됩니다. 효율적이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진짜 길 잃기가 가능합니다.
지난달, 완전히 길을 잃고 헤맸던 골목에서 30년 된 빵집을 발견했습니다. 할머니께서 직접 만드시는 단팥빵이 일품이었습니다. 그 맛을 평생 모르고 살 뻔했습니다. 정해진 길만 다녔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맛입니다.
이처럼 길을 잃으면 예상치 못한 보물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숨겨진 맛집, 아름다운 풍경, 정겨운 사람들. 이 모든 것이 우리 주변에 있었는데 그냥 지나쳤던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