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석용
글 / 김석용
계절이 바뀌는 문턱에서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 것은 향기입니다. 유월의 첫 바람이 불어올 때, 어김없이 따라오는 것이 바로 라일락의 달콤한 향기입니다. 이 향기는 단순히 코끝을 스치는 것을 넘어서, 우리 가슴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기억들을 깨워냅니다. 봄의 마지막 인사이자 여름의 첫 약속, 라일락은 그렇게 우리 곁에 다가옵니다.
라일락의 꽃말이 '젊은 날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 꽃을 보고 있으면 문득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스무 살 무렵, 처음 만난 이의 손을 잡고 걸었던 캠퍼스 길목에도 라일락이 있었습니다. 달콤한 향기와는 달리 꽃잎을 깨물면 씁쓸한 맛이 난다고 해서 '첫사랑의 맛'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꽃은, 우리 인생의 그 시절을 정확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달콤함과 씁쓸함이 공존하는, 그래서 더욱 애틋한 시간들 말입니다.
향기만큼 강력한 시간여행의 수단이 또 있을까요. 라일락 향기를 맡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20대로, 30대로 돌아가 있습니다. 그때의 설렘도, 아픔도, 희망도 고스란히 되살아납니다. 이제는 흰머리가 늘고 주름이 깊어졌지만, 라일락 앞에서만큼은 여전히 그 시절의 우리입니다. 향기가 주는 선물입니다. 시간을 뛰어넘어 마음을 젊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 말입니다.
유월은 한 해 중 낮이 가장 긴 달입니다. 해가 길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을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라일락이 피는 이 시기에, 우리에게는 더 많은 순간들이 주어집니다. 아침 일찍 산책길에서 만나는 라일락 향기,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는 따스한 햇살 속에서 느끼는 꽃향기. 이 모든 것들이 유월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라일락의 매력은 특별한 곳에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 동네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꽃이기에 더욱 소중합니다. 출근길 버스정류장 앞에서, 저녁 산책길 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걷는 학교 담장 너머에서. 라일락은 늘 우리 곁에 있으면서 일상에 향기를 더해줍니다. 거창하지 않지만 확실한 행복, 그것이 바로 라일락이 주는 선물입니다.
유월의 바람이 실어오는 라일락 향기는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가족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때로는 낯선 이들과도 나누는 공통의 경험입니다. "라일락 향기가 참 좋네요"라는 한마디로 시작되는 대화들,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갑니다. 향기가 연결해주는 인연들, 그것 또한 유월이 주는 또 다른 선물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진짜 향기
유월의 바람에 실려오는 라일락 향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가 도달하는 곳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입니다. 그곳에는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순수함이, 시간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는 아름다운 기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라일락은 바로 그 마음의 향기를 깨워주는 열쇠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유월, 그 바람 속에 묻어있는 라일락 향기를 깊이 들이마셔보십시오. 당신 마음속에 숨어있던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이 다시 한번 생생하게 되살아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라일락이 우리에게 전하는 진짜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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