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나 이방인

by 김민아

마음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다. 그 마음이 어디로 끝 간 데 모를 곳으로 가더라도 마음대로 살고 싶다. 그래서 이 먼 제주까지 날아와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내가 원하는 건 뭘까 생각한다. 엄마의 전화를 차갑게 차단하며 생각에 잠겼다. 신랑과 엄마와 대화하기 싫은 이유에 대해 말하면서 느낀 감정은 참 여러 가지가 있었다. 엄마에 대한 서운함, 이기적인 내 마음, 그리고 나도 모르게 원하고 있는 소속감.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소속감이다. 내가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그 소속감이 필요했다. 이모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에게 이모가 돌아가셨다는 연락 한 통화도 없었고 문자 하나도 오지 않았다. 진짜 날 가족으로 생각했다면 연락 한통도 받지 못하진 않았을 텐데. 변명의 여지가 있을까? 내가 연락을 안 받았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좋은 핑계가 되겠지. 그들은 나를 가족으로 생각은 하고 있을까? 내가 미울까? 나는 밉다. 그들이 밉고 내 마음이 아주 모지리 같아서 참 싫다. 내 가족! 그냥 평범한 가족. 그게 아주 어렵다. 내 가족이란 지금 내가 편안히 울타리 안에 있는 지금의 아들과 신랑뿐이다. 아바타에서 가족은 요새라는 말이 떠오른다. 내가 가진 편안함과 안식처가 가족이다. 그 안락함과 편안함까지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너도 우리 안에 있어. 그리고 너 또한 나와 다르지 않아. 그 메시지를 원한다. 아바타에서의 그 하나 됨이 그 소속감이 부러웠다. 난 어디에 존재하더라도 이질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모의 집에서도 심지어 결혼을 하고 나서야 가게 된 엄마 집에서도. 내가 맘 편히 쉴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다 이질감과 서로 다른 공간일 뿐.


그나마 부산 엄마, 아빠에게서는 내가 소속감이라는 걸 최초로 느꼈다. 시댁이 뭐가 좋으냐 말을 하지만 그래도 난 좋았다. 그 소박하지만 진솔한 꾸밈없음이 좋았다.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그들만의 가족 문화가 좋았다. 나도 꼭 그들의 딸과 같다 느껴졌다. 그러나 제주도로 오면서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신랑은 나에게 제주도에 와서 좋다고 말했다. 일을 그만두는 큰 결심을 하면서 제주에 내려왔지만 그 누구 하나 말리지 못했던 건 코로나라는 큰 변화 때문이었다. 언젠가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회사로 복귀하거나 다른 직장으로 취직할 것이라는 당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신랑은 관련 직종이 하나 없는 제주도로 내려와 다시 자신만의 일을 찾으려 한다.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나만 생각했다. 직장을 포기하고 제주도로 내려와서 아무도 없는 곳에 떨어져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여기 와서야 깨달았다. 다들 용감하다 했다. 그게 좋다고 여기며 우리는 만족하며 살았다. 제주도 온 지 3년 되는 해에 우리의 생각과 부모님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신랑의 직장을 그만두게 한 죄인이 되어가고 있었고 그저 내가 잘되어 좋다는 가족이라기보다는 신랑의 직장을 그만두게 만든 장본인이 되어갈 뿐이었다.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만 신랑은 직장까지 관두게 되었다. 신랑이 직장을 다니지 않는 이유가 곧 내가 되어 버려서 난 불편하고 내가 너무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난 시댁에서도 딸이 될 수는 없었다. 너무 무리한 감정 요구다. 난 그저 이방인일 뿐인데 그저 남의 자식일 뿐인데 말이다. 내가 잘 되었다고 기쁜 것보다 신랑이 직장을 잃은 것이 더 큰 아픔일 거라는 걸 나는 생각하지 못했다.


서운한 감정이 밀려들어올 때 그리고 내가 너무 외롭다 느낄 때 출근하는 길에 본 아들과 신랑의 웃는 얼굴을 마주했다. 아! 내 가족은 지금 내 옆에 있다. 그래서 소중하다. 그래서 더 아깝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소중해서 이 시간이 아깝기만 하다. 밝게 웃고 함께 해주는 아들과 신랑이 고맙다.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워준다. 네가 필요해 네가 있어야 해라는 말들이 나를 일으키고 내 옆에서 자신과의 온기를 웃음을 나눠주는 이 둘이 너무 사랑스럽다. 오늘 울적한 마음에 이들과의 추억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이방인이 아니다. 결국 그들이 나에게 이방인일 뿐이다. 지금, 내 현재에 머무른 이 시간 같이 함께 하는 이들이 나와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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