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모의 죽음
그냥 내 마음을 돌보는 중이다. 내가 가진 상처를 최대한 잘 보듬어 주고 있다. 그러니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메시지이고 더 이상 힘들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내가 가진 시간과 내가 가진 장소에 대한
액!! 액땜이라고 하나? 아프다. 몸이 아프다. 손목에서 시작된 통증이 목으로 그리고 발목까지 타고 증상이 나타난다. 마음이 아파 몸도 아픈가 보다. 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그렇지 않은가 보다. 어느 순간 우리 집 식구들이 나를 포함하여 하나 둘 아프기 시작한다. 문득 이모가 우리를 저주하나라는 생각도 했다. 누군가에게 원망을 사서 이렇게 몸으로 아픈가? 아프지 않던 다치지 않았던 우리 가족에게 해가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기분이 나쁘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또는 그에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내가 너무 안타깝다. 그렇다. 그냥 내가 가진 죄책감이 건드려졌다. 죽음을 함께 하지 못한 비스듬히 빗겨 있는 내가 많이 슬펐다. 때론 잘 피했다고도 생각했다. 동생이 제주도에 놀러 와 평화사절단이라고 말하며 이모의 장례식장에서 엄마와 이모의 아들이 싸웠다는 얘기를 했을 때 잘 피해 있었구나 생각도 했다. 결국 내가 가지 않아서 생긴 다툼인데 내가 있었다면 안 들어도 될 말을 참 많이도 쓸어 담았겠구나 싶었다.
함부로 대해도 되는 상대는 없다.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누구에게나 다 소중한 존재들일뿐이다. 내가 나라서 나는 지금 좋다. 그냥 어찌 되었든 내가 지금 이 시간 조용히 앉아서 가족들과 함께 글을 쓰고 있는 이 지금이 참 좋다. 나로 있을 수 있는 이 시간과 이 공간을 방해받지 않고 싶을 뿐이다.
언제쯤 용서가 될까? 언제쯤 만나고 싶을지는 모르겠다. 내 상처보다 내 존재가 더 크게 될 때가 언제일까? 나에게는 더 이상 아프지 않은 상처가 있다. 내 왼손 엄지 손가락 부근에는 칼에 베어 살점이 떨어져 나간 상처가 남아 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없는 그런 상처. 그러나 엄마는 이 상처를 볼 때마다 사과를 해 줬다. 그래서 내가 이 상처에 대해 많이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나 또한 의식하지 않고 살았나 보다. 어느 순간 엄마도 나도 이 상처를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 나 칼에 베었어'라는 아들의 떨리는 목소리에 내 심장도 크게 요동쳤다. 운전 중이지만 내가 더 당황하면 안 될 거 같아 지혈을 스스로 하게 하고 얼른 차를 몰아 집으로 갔다. 단감을 혼자 깎아 먹으려다 엄지 손가락이 칼에 베여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달래며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다행히 엄지손의 상처는 금방 지혈도 되고 심하지 않았다. 나를 보자 안심한 듯 머리 위로 손을 치켜들고 지혈을 하는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터진 건 그 이후였다. 다음 날 교무실에서 많이 다치지 않아 다행인 우리 아들과의 일을 다른 선생님과 얘기하다 내 손등의 상처를 보게 되었다. 아! 맞다. 나도 이런 상처가 있었지? 의식하지 않고 있던 내 상처가 눈에 띄었다. 엄마의 지속적인 사과로 내 상처는 내 마음속에서도 치유가 됐던 모양이다. 내 어린 시절 아마 우리 아들보다도 더 어린 나이에 카터칼을 가지고 연필을 스스로 깎다 연필이 아닌 내 손등을 깎아내렸다. 아픔도 컸지만 엄마의 더 당혹스러운 얼굴이 눈에 띄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그때는 붕대를 감고 엄마가 떨어진 내 손등의 살을 붙여 병원에 가기보다 엄마가 다니던 회사로 향했다. 병원에 갈 수 없었던 걸까? 병원으로 바로 갈 수 없었던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이후 그 상처를 신경 쓰지는 않았다. 다만, 항상 엄마를 만나는 날에 기존에 있던 살이 달라붙어 점점 아물어가던 내 손을 보며 엄마는 항상 미안하다고 했다. 그 미안하다는 말이 나는 듣기 좋았나 보다. 어린 아들이 아프고 나서야 내 상처가 보였다. 이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그 상처자국이 보였다.
어쩌면 내가 바라는 건 진정한 엄마의 사과인지도 모른다. 내가 잘못했다는 사과말이다. 엄마는 사과를 했지만 내가 느끼기엔 진심으로 와닿지 않았다. 왤까? 본인의 삶을 이해해 달라고만 하고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딸로 나의 포지션을 만들어버리는 게 너무 싫었다. 그냥 정말 미안하다로 끝나는 말을 주고받고 싶었다. 상처가 아무는 데에는 참 오랜 시간이 걸린다. 상처를 보듬어주고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고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보호해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가진 상처의 크기는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압도 당해 많이 아프고 쓰라린 곳을 자꾸만 비집고 들어와 다시 상처를 내는 건 너무 힘들었다. 왜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느냐고 왜 본인의 삶을 부정하느냐고 말을 하는 것들도 나에겐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내가 엄마의 삶을 이해한들 내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
내가 가진 부정적 감정이 나에겐 낯설고 죄책감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를 보호하고 싶다. 내 존재를, 나의 가족의 존재를 철저히 부정하고 숨기기 바빴던 그 상처 주는 마음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나는 아직 미숙하고 어리석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는 나를 보호해주고 싶다. 껴안아 주고 싶다.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된다고 토닥이고 싶다. 그래도 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