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해졌다. 어쩌면 이제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맞다. 거리를 두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내가 가진 감정을 더 이상 부정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편안해졌다.
엄마는 본인의 감정이 항상 먼저다. 항상 나의 감정보다는 본인의 감정을 해소하고 그 이후에 나의 말을 듣는다. 난 그전에 감정이 다 소진되어 지쳐버린다. 난 이모와 그 아들에게 어떠한 연민도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데 나더러 또 그들과의 만남을 추진하는 것이 불편했다. 내 이기심이 내 예민함이라며 엄마는 말한다. 엄마에게 난 유난 떠는 예민한 그리고 가식적인 아이이다. 지금 그들을 보는 것이 난 힘들고 지치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용서가 되지 않는다. 내 감정이 타당하지 않다 부정하는 것도 이제는 지친다. 엄마의 인생을 다 부정당했다 생각하며 나를 또 원망하기 시작했다. 긴 통화에 지친 나는 문자로만 소통했다. 그럼에도 지쳤다.
어쩌면 좋을까? 내가 정말 후회하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엄마에게 '그만하자'라는 메시지를 남긴 이후로 정말 더 연락을 하지 않는다. 이모의 죽음에도 연락을 받지 못한 것이 더 내가 외부인임을 알려주는 것 같다. 아무래도 가족이 아님을 이렇게 느낀다는 건 슬프다. 생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 연락조차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 난 그들의 테두리 안에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분명 엄마는 네가 연락을 안 받으니 연락할 길이 없었으며 너한테 연락해 봤자 내 예민함이 문제가 될 터였다. 내가 그들을 버렸다. 내가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나를 위하지 않는,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에게서 멀어졌을 뿐이다. 가끔 생각한다. 내 존재가 어느 정도일까?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 기분을 온전히 내가 받아들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내가 잘 되어 기분이 좋지 않을 사람들이 많다. 내가 숨겨진 아이로 계속 남았어야 하는데 중등 임용에 합격을 하다니. 그리고 본인의 가족이 하지 못한 일을 해내다니. 당황스러울 거라 생각한다. 내가 서운한 건 그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지 않음인가? 아니면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 알게 된 이 상황일까? 어디 내세우기 힘든, 어디 내놓기 힘들었던 내가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직장을 갖게 되었다. 내가 찌그러져 살았어야 하는데 그들의 생각에는 난 미미한 존재였는데 그래서 더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이었나 보다. 우리 가족의 존재가 숨겨진 것이 그들에겐 너무 당연해서 아주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었었나 보다. 나에게 소중한 존재가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데도 불구하고 숨겨진 것에 분노했다. 제주도 내려오기 전에 충분히 시간도 기회도 있었을 텐데....... 나는 어쩌면 기다렸나 보다. 많은 기회 속에 우연히 마주치는 기회가 생겨서 나도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존재한다. 고 알려주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더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남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내가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에 만났으면 이렇게 연을 끊지는 않았겠지. 제주도에 내려와서야 그 자식들이 엄마를 찾지 않을 때에야 나를 찾는 그 이기적인 모습이 너무 싫었다. 그리고 내 존재 자체도 모른다는 그 치욕스러움이 싫었다. 난 그들에게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인데 무엇을 기다린 것일까? 참 어리석었다. 이제 내가 기대하는 바는 없다.
기대하는 것보다 내가 포기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태어나기도 한 참 전, 10년도 더 전에 엄마는 첫째 딸 가족에게 나와 신랑을 보여주는 자리(정확히는 사촌동생의 결혼식에서)에서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얼른 현금 2만 원을 그들의 자식에게 주라고 했다. 난 전혀 모르는 애들에게 용돈을 쥐어주었다. 비굴한 그 웃음. 당황하는 모습. 어쩌면 그 자리에서 엄마는 나를 소개했다 생각했나 보다. 내가 바라는 모습은 정식으로 나의 존재를 알려주는 것이었는데 스쳐 지나가듯 그렇게 나를 소개한답시고 보여주는 꼴은 좀 사납지 않은가? 더군다나 그마저도 첫째 딸의 사정이 안 좋을 때 이때다 싶어 공개하는 그 비굴함이라니. 참 야속하다. 엄마의 존재도 그렇게 인정받지 못하고 살았구나. 누구를 위해 그렇게 산 걸까? 누구에게 보여주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내 결혼식에 아무도 오지 않고 그 큰 행사를 비밀리에 진행한 것도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어쩌면 엄마는 최고의 거짓말쟁이가 아닌가?
첫째, 둘째, 셋째 딸들이 결혼해서 아이가 몇 명인지 나는 왜 알아야 하는 걸까? 내가 함께 하지 않은 그들의 신상을 엄마는 나에게 왜 얘기한 걸까?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왜 나한테 그랬을까? 그래도 되니까? 내가 가만히 넘어가니까? 그래도 내 거리를 유지해주었어야 했다. 그들을 내 앞에서는 씹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가지지 못한 소속감을 그렇게 회복시켜 주기 위함일까? 그랬다면 정식으로 소개를 해주었어야 한다. 오히려 나는 그런 날이 오리라 기대했었나 보다. 내 딸이 여기 있다. 그리고 너희도 여기 있다. 존재 자체를 부정해 놓고 내 곁을 지키지 않아 놓고 그들을 그렇게 씹는 건 엄마 인생도 참 안타깝고 그 그늘 밑에서 숨 죽였을 그 자식들도 안타깝다. 미성숙한 어른이어서 낳은 참상일지도. 그러나 그 참상이 한 인간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아 흉터가 지고 계속 아프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