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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날, 어느 전원생활 유튜버의 독백

유튜브 천태만상 제8 화 : 유튜브가 가져온 삶의 변화

오래전이었다.     

회사일과 사업 확장, 연일 이어지는 접대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 많은 일을 벌여 스트레스는 쌓여 갔고, 갑자기 감정조절이 안 되어 심리상담 치료도 받았다.

차 안에서 소리를 지르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그대로 상담소로 직행했다.

번아웃 증후군이란다. 상담사는 일을 줄이라고 권고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셔서 그래요. 과감하게 일을 놓으셔야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체중이 급작스럽게 빠지기 시작했다.

바빠서 그러려니 했다.

운전 중 갑작스러운 졸음에 갓길에 차를 대고 기절한 듯 잠을 자는 것도 몇 번... 느낌이 싸해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조직검사를 다시 하자고 한다.


결과는 암이란다.


그때 내 나이 37살... 죽음을 생각하기에 너무 젊은 나이였다.     


참 많이도 울었다.

다시는 술을 못 마실 것 같아 울면서도 많이 마셨다.

아닌가... 눈물이 나와 많이 마신 것인가...

암튼 징하게 울고 징하게 마셨다.     


몇 달 후에 수술을 받았고, 체중은 발병 전후해서 14kg이 빠졌다. (발병 전에는 84kg, 수술 후에는 70kg... 근데 지금은 원위치.ㅋㅋㅋ)     


수술 후 모든 것을 바꿨다.

곧 죽어도 후회 없는 삶을 살기로 했다.


먼 미래가 아닌 지금을 즐겨야겠어!


사업은 확장이 아니라 반대로 최소화했고, 당시 사회활동으로 하던 여러 직책은 모두 사임했다. (생각해보면 왜 쓸데없이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했나... 싶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했던 투자는 모두 정리하고,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돈을 썼다.     

그리고 와이프와 은퇴 후 하기로 약속한 전원생활의 꿈을 지금 실현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지금과 은퇴 후의 차이는 단지 은행 돈을 빌리느냐 마느냐의 차이일 뿐,

까짓 거 돈 주고도 못 사는 인생을 내가 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연고도 없는 충남 서천에 땅을 사고 전원주택을 짓게 되었다.

아무도 나를 말리지 못했다.

오래전부터 절대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던 와이프도 결국 돌아섰다.

목에 커다란 거즈를 대고, 나오지도 않는 쉰 목소리로 해야겠다고 하니 얼마나 호소력 짙었을까.


여보~ 더 늦기 전에 바닷가에 전원주택을 지어야겠어.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던 일들을 담은 리스트를 만들었고 하나하나 진행하여 결국 전원주택을 완공하였다.     


그렇게 전원생활을 3년째 즐기다가 문득 제대로 된 기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아깝다... 참 많은 일을 했는데 기록이 없다니... 이제부터는 다~ 기록하자.     


블로그를 할까? 유튜브를 할까... 에라 모르겠다. 유튜브에는 이런 컨텐츠가 없으니 유튜브를 하자!


당시 농사를 소재로 한 채널은 두어 개 있었지만, 농사가 아닌 오직 "전원생활"을 소재로 한 채널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블로그가 아닌 유튜브를 선택했다.


이 바닥도 땅따먹기다. 먼저 깃발 꽂는 사람이 임자!


이때가 2016년 12월... 캠코더를 사고, 편집을 배우고, 여차여차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채널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2017년 3월... 그리고 지금까지, 길다면 긴 시간이 지났다.     


문득 당시 공모전 피칭 심사(면접)에서 면접관이 하던 질문이 떠오른다.


전원생활은 컨텐츠가 별로 없을 듯한데... 어떻게 계속하실 것인가요?


하하하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지금 전원생활 유튜버가 엄청 많이 생겼다는 것을 그 면접관이 예상이나 했으랴.

전원생활만큼 다양한 컨텐츠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소재도 또 없으리.


전원주택을 짓고, 유튜브를 하고, 나의 삶은 전 후해서 참 많이도 변했다.     

항상 멀리 보려 하고, 밖을 찾던 나는, 바로 앞만 보며 가족과 나만 생각하게 되었다.

무언가 확장해야 하고, 더 커져야 하고, 더 많아져야 한다는 강박은 사라졌다.

더 안정되고, 더 단단해진 느낌.     


가끔 와이프나 친구들은 내게 말한다.

나는 사업을 해서 크게 성공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크게 망할 줄 알았다고.

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채워지지 않는 갈증으로 목말라하던 내 모습이 그래 보였나 보다.

자신 있어 보이지만 한편으로 불안해하고 흔들리는 내 모습.

조만간 안 좋은 사고를 칠 것 같은 위태로운 내 모습.

     

그러던 내가 전원생활을 시작하고 확장이 아닌 수성을 선택했다.

위태롭기만 한 나는 규모가 아닌 내실을 선택했다.

작지만 즐겁게, 오랫동안 이대로 즐길 수만 있다면 이제는 더 바랄 게 없다.

앞으로도 쭉 이럴 것이다.

작지만 단단한 나, 알 수 없는 막연한 목표보다 눈에 보이는 작은 성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확장이 아닌 수성 전략은 2017년 내가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수성은 옳았다.




평일엔 도시에서 일하고, 주말엔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합니다.
유튜브 바닷가 전원주택 채널을 운영중입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712zdYmemTs4XPa4fRan9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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