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답답해서 1박 2일간 강릉으로 떠났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크게 준비한 것도 없이 그렇게 떠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이었다.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은 순조롭게 풀리고 있었다. 올초에 굉장히 고민스러웠던 새로운 업무도 예상과는 달리 실적이 너무나 잘 나오는 중이었다. 사람은 모든 것이 잘될 때에도 또 안될 때를 대비하는 존재이다. 답답함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포함하는 감정일까. 예기치 않은 우연적 사건들의 합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삶에 불안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상황이라면 불안감이 생기지 않을 터. 그렇다면 사는 재미도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답답함의 원인은 불안이 아닐까 마음속으로 추측하고서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겼다. 1박 2일 동안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서핑도 즐기며, 맛있는 것도 먹었다. 일상과의 완벽한 분리로 여려 연결고리와의 단절을 경험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에서 벗어나 나만의 세계에서 잘 머무르다 가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한 번도 여행을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코로나 확산, 새로운 업무 적응 등은 일상을 벗어날 기회를 앗아갔다. 이참에 쓸데없는 소비를 막아 돈도 굳히고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일상의 찌꺼기는 버려지지 않고 내 안에 켭켭이 쌓여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나 보다. 마음이 답답한 것을 보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깜깜한 도로를 주행하면서 문득 과거의 일들이 떠올랐다. 강원도에서 돌아오는 만큼, 강원도에서 군대 생활을 했던 것이 첫 번째로 떠올랐다. 쉽지 않은 나날들이었다. 선임들에게 많이 혼나고, 후임들도 많이 혼냈다. 선임들에게는 좀 더 현명한 방법으로 대처하고 후임들에게는 좀 더 친절하고 다정했으면 어땠을까. 모두가 막 20대에 진입한 시점이었다. 사회에서는 성인으로 취급받지만, 사실 여전히 어리숙한 나이일 뿐이다. 나름 힘들다고 생각했던 군 시절, 도저히 끝나지 않는 터널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 나날들도 어느새 끝이 나버렸다. 그리고 전역한 지는 10년이 넘게 흘렀다.
내가 이렇게 힘든 것도 잘 버티고 지금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마음속 답답함은 사라졌다. 답답함의 정체는 미래였다. 내가 생각했던 목표와의 간극이 결코 좁혀지는 것 같지 않아 답답했던 것이었다. 과거부터 쌓아온 지금을 보지 않고, 내가 아직 쌓지 못한 미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행복이 미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행복을 위해서 미래를 꿈꾸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만들고 싶어서 미래를 꿈꾸었다. 마냥 현재만 만족하면서 사는 것은 조금 무기력한 듯 느껴졌다. 소확행도 좋지만, 누군가는 좀 더 큰 행복을 꿈꾸어야 선한 영향력을 전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답도 없는 문제에 명확한 해답이 나온 것도 아니었지만, 답답함의 정체를 파악한 것만으로도 여행을 떠난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다. 여행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모든 연결고리와의 단절을 경험한 순간, 객관적인 입장에서 살펴보기 때문이다. 너무나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만큼이 많이 애용되는 이유는 모두가 비슷하게 경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부터 쌓아온 지금을 보자. 그리고 지금을 믿고 미래를 향해 또 달려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