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있다는 뜻일까. 3월이 얼마 남지 않는 지금, 무척 날이 따뜻하다. 단순히 동네를 한가로이 거닐었을 뿐인데 기분이 좋았다. 특별히 기분 좋을 만한 일은 없었는데 그냥 즐거웠다. 산책이 이렇게 즐거운 거였나. 한 달 전, 지금의 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런데 동네를 거닐 기회가 없었다. 날씨는 두꺼운 외투를 입어도 추웠고 회사는 새로 맡은 업무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기회 없는 나날을 보내다가 한 달이 지나서야 설날과 함께 따뜻한 날씨도 찾아왔다. 주머니에 두 손을 넣지 않아도 손이 시렵지 않았다.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리고 있지 않아도 되었다. 무엇 하나 감추지 않고 떳떳이 햇볕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냥 걸었을 뿐인데 얼어붙은 마음이 녹는 듯했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봄이 온다는 기대감만으로 내 마음은 달라졌다. 걷는 게 이렇게 좋은 것이었나. 인류사의 획기적인 변화 중 하나인 직립보행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었다. 동네를 한참 걸었다. 구불구불한 주택 사이를 걷고 또 걸었다. 나중에 발등에 통증이 조금 느껴지고 나서야 걸음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왔다. 종아리에도 살짝 뻣뻣한 감각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평소와 다르게 갑자기 많이 걷긴 했나 보다.
이번 겨울은 참 길었다. 우리는 기억하는 만큼 그 시간의 길이를 가늠한다. 겨울이 길었던 이유는 겨울에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부서로 발령났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새로운 길로 출퇴근하고 새로운 동료들을 만났다. 새로운 장소에서 점심을 먹었고 새로운 업무로 야근을 했다. 새로운 게 많으면 그 시간도 길어지는 법이다. 익숙한 것들은 반복하면 더 이상 새롭게 기억되는 것은 없지만, 새로운 것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새롭다는 것은 처음이란 뜻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