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심하게 체를 해서 하루 종일 끙끙 앓았다. 그 후유증인지 손등에 습진이 생겼다. 울긋불긋한 반점이 손등을 지배했다. 가려움을 참고 피부약을 발랐다. 체하면서 모든 것을 토하고 기력이 떨어지면서 면역력도 같이 떨어진 듯했다. 갑자기 디지털 디톡스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한 이유는 식사를 하자마자 바로 소파에 앉아 몇 시간 동안 꼼짝 않고 OTT를 본 탓인 듯했다. 몸을 좀 움직여야 하는데 미동도 하지 않았던 태도가 문제 같았다. 요새 퇴근하고 나서 나의 패턴은 너무 뻔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소파로 조르르 달려가 OTT를 보았다. 예능이든, 드라마든 몇 시간 보고 나면 밤이 되었다. 다음 날 출근 앞두고도 새벽까지 본 날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한때 디지털 중독을 경계했던 적도 있었지만 요새는 별생각 없이 살고 있었다.
이제는 중독에서 벗어나야지. 원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TV를 틀었지만 오늘은 음악을 틀었다. 소파에 앉지 않고 바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디지털 디톡스 한 김에 몸도 디톡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대충 빵으로 때우는 것을 좋아하지만 오늘은 밥을 먹기로 했다. 냉장고에 생각보다 먹다 남은 반찬들이 많았다. 그냥 버리기는 아까워서 이것저것 접시에 담아 아침을 차렸다. 은근히 남은 반찬들이 많다 보니 배가 빵빵하게 불렀다. 소파에 갈까 하다가 순간 몸을 돌이켜 옷을 입었다. 그리고 동네산책을 나섰다.
TV도 안 보고 스마트폰도 안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잘 안 갔다. 평소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기로 했다. 문득 거울을 보니 머리가 많이 길었다. 그 즉시 미용실을 예약했다. 이사 온 지 한 달밖에 안 된 동네여서 미용실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현재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 미용실 정보에 나온 프로필 사진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사람이 친절하게 맞이했다. 내가 예약한 미용실이 맞는지 들어가기 전 간판을 쳐다보았다. 맞았다. 프로필 사진과는 달랐지만 머리 자르는 솜씨는 좋았다. 거울을 봤는데 머리가 마음에 들었다. 머리 한 번 잘못 자르면 며칠 동안 상심이 큰 법인데 다행히 그런 위험은 피했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입으로 잘 내뱉는 편이지만 머리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표현한다고 해서 다시 머리카락이 붙는 것도 아닐뿐더러 상대방과의 관계만 어색해진다. 그냥 다음번에 안 가는 것이 최선이다.
디지털 디톡스를 한다고 스마트폰도 쳐다보지 않으니 시간이 꽤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엉뚱한 곳에 시간을 많이 쏟고 있었다. 문제는 스마트폰에 쏟은 시간은 뇌에 잘 저장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나를 스마트하게 만드는 듯해도 스마트폰으로 찾아봤던 기사나 지식은 쉽게 휘발된다. 휘발된 것들과 함께 시간도 사라진다. 말 그대로 순삭이다.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하려고 하면 짧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시간은 부족하고 일상은 바빠진다. 디지털 디톡스는 중독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사라진 시간을 되찾는 행위이다. 그 시간만 되찾아도 일상은 더욱 풍부해진다.
현대 사회는 바쁜 듯 보여도 실상 바쁜지는 잘 모르겠다. 옛날 사람처럼 주말도 없이 농사만 짓던 시대도 아니고, 과거 급제를 위해 평균적으로 30년을 공부했던 시대도 아니다. 기계와 로봇이 도움을 주기 때문에 모든 것을 손으로 다 처리하는 시대도 아니다. 심지어 집안일도 옛날보다 훨씬 더 발전된 가전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과학과 문화는 우리에게 많은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럼에도 더 바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