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생각이 있다. 글쓰기를 연마하면 문돌이가 할 수 있는 어지간한 일은 다 중간 이상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제 사오년 일한 신참 주제에 건방지다. 그래서 브런치에나 내 소신을 말한다.
내 글은 기자와 언론을 향한 동경을 담고 있다. 기자가 쓰는 글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이야기를 다룬다. 내가 많이 만나는 산업부 기자를 예로 들어보자. 기자는 기업이 전달하는 개별적인 소식을 단신으로 쓰고, 업계 현황과 트렌드를 피처로, 때로는 인터뷰를 통해 기사에 담지 못한 기업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유한다. 그리고 기자 각각이 쓰는 기사들이 모여 산업 전체 흐름을 보여준다. 이 흐름을 내러티브라고 한다.
내러티브, 지금 모든 브랜드가 열망하는 가치다. 우리말로는 서사라고 한다. 서사가 좋은 기업이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는 사랑 받는다. 좋은 서사에 감명한 고객들은 팬을 자처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회사 소식에도 관심을 갖는다. 서사가 없으면 결과는 무관심이다. 세일할 때 사고, 행사할 때 들여다보는 그런 존재다.
단순히 이야기를 만들어내면 좋은 서사가 생길까? 아니다. 지금 모든 브랜드가 각자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단편적인 정보를 나열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저희는 명품과 좋은 신발의 조건을 모두 갖춘 제품을 제작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좋은 신발의 가치를 이렇게 정의하고 3년간 최고의 신발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최고의 소재를 찾아 터키에서 수많은 가죽을 테스트했고, 30년 경력 장인에게 제작을 맡겼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최고의 신발. 고객 반응이 어쩌구 저쩌구 블라블라..."
급하게 와디즈에서 찾아본 내용을 짧게 요약했다. 이 제품은 펀딩 목표액 열배 넘는 금액을 모았다. 굉장히 좋은 성과다. 개인적으로는 와디즈 펀딩 제품이 대부분 기성 브랜드보다 매력적인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구매자들이 과연 이 제품과 브랜드에 애정을 갖고 팬이 될지는 의문이다.
내러티브에는 정체성이 있다. 다른 브랜드에서 따라할 수 없는 '곤조'가 있다. 성과, 경쟁력, 구성원, 기업관, 고객관, 목표의식 등 회사가 가진 모든 유무형 가치와 시대 정신, 트렌드, 고객 등이 만나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단순히 정보를 읊는 수준이 아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 뿐 아니라, 어떤 철학에 기반해 결정을 내렸는지, 직원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고객들은 어떤 가치를 느끼는지 보여줘야 한다. 고려할 게 정말 많다.
하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서 내러티브 유행이 반갑다. 좋은 글이 가져야 할 필수 조건이 탄탄한 서사이기 때문이다. 서사를 갖춘 글을 쓰려면 핵심을 꿰뚫는 통찰력이 필요하고, 이 통찰력은 하루 아침에 만들 수 없다. 기자들은 사회에서 내러티브를 만든다. 날카로운 시각으로 쓴 기사 한 편으로 거대한 담론을 뒤흔든다. 근간에는 하루에 수십, 수백개씩 쏟아지는 보도자료를 검토하고 기업 담당자를 만나 이것저것 캐묻는 노가다, 취재가 있다. 나도 이들을 따라 글을 쓸 때 수많은 사실관계와 디테일을 따진다.
요즘은 인터뷰에 몰두하고 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기사 양식이다. 새로울 게 없다. 산업과 기업체를 다루는 기자들은 지겹도록 인터뷰 기사를 쓴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 오면 인터뷰가 특별해진다. 우리 회사는 유튜버, 인스타그래머 등 다양한 창작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타겟 고객이 아주 좁다. 심지어 이들끼리 네트워크도 촘촘하게 짜였다. '고인물'들이 모여 있는 업계다. 샌드박스, 다이아 TV 같은 MCN들은 전속 계약한 창작자를 몇백명씩 보유하고 있다. 혼자 채널을 운영하는 이들도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찾아 무리를 이루고 상부상조한다.
회사 인지도를 높이기가 아주 까다롭다. 일반적인 배너광고나 SNS 마케팅으로 이들 눈에 들 수 있을까? 막대한 자금을 들이지 않으면 성공 확률이 아주 낮다고 본다.
그래서 생각한게 인터뷰였다. 인터뷰 기사 한 편을 쓰려면 긴 대화가 필요하다. 인터뷰이는 본인 자랑부터 개인적인 일화까지 속 시원하게 털어낸다. 인터뷰어는 경청한다. 그리고 멋진 글로 한 시간 넘게 이야기한 수고를 보답한다. 인간적인 유대가 안 생길 수 없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창작자 한 명 한 명 만나면서 좋은 관계를 맺고, 이들 네트워크에 첫 발을 내딛는다. 그렇게 그 쪽 세계 일원이 된다.
다행히 나는 글을 좀 쓴다. 몇몇 친분이 진한 기자들은 내 글을 추켜세워 주기도 한다. 나를 좋게 보는 기자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진 창작자들을 정기적으로 소개하고 싶다고. 기자와 편집장까지 모셔 식사 자리를 만들었다. 그동안 내가 쓴 글을 열심히 소개하고 결국 고정 코너를 따냈다. 우리 회사 이름으로 인터뷰 기사를 쓸 수 있게 됐다.
얼마 전에는 MCN 인터뷰를 했다. 대표가 세명이나 있는 회사였다. 세 대표가 우르르 사무실을 찾아왔다. 한시간 반동안 신나게 썰을 풀었다.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오는 이야기였다. 대출금 빼고 아무것도 없던 회사 초창기에 들어와 어느덧 20만 구독자를 앞둔 오디오북 전문 유튜버, 콘텐츠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순순히 자신이 쓴 책을 건네준 작가와 출판사, 처음으로 거금의 프로젝트를 맡긴 고객사 등등. 이야기가 더 남았을 테지만, 시간 관계상 종료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건졌다. 그리고 사람을 찾았다. 다음 인터뷰이를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그 회사 소속 오디오북 전문 유튜버.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배경만 들어도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 사람 이야기를 한시간 넘게 들으면 또 다음 인터뷰이가 나타나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 회사를 중심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소개할 계획이다.
목표는 잘 짜여진 세계관이다. 다양한 기업과 창작자들이 등장한다. 우리 회사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서사를 완성하고 싶다. 여기는 큰 회사들과 다르다. 막대한 투자금을 바탕으로 창작자를 수백명씩 영입한 회사와는 규모와 숫자로 경쟁할 수는 없다. 독창적인 내러티브를 가져야 한다. 누구나 아는 회사가 되기는 어렵지만, 아는 사람은 좋아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나는 내 인터뷰 시리즈를 그렇게 만들거다. 글 한 편 한 편이 모여 그 어떤 광고와 마케팅 캠페인보다 거대한 존재감을 발산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