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퍼거슨의 리더십에서 찾은 비즈니스 원칙

PR&브랜딩 매니저가 본 퍼거슨 경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by 침착한 PR맨

잉글랜드 레전드 미드필더 마이클 캐릭이 자서전 '비트윈 더 라인스(Between The Lines)'에서 재밌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알렉스 퍼거슨 경과 관련된 이야기다.


200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피파에서 '세계 최고의 클럽'을 가리기 위해 주최하는 피파 클럽 월드컵에 유럽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했다.


당시 마이클 캐릭은 남미 챔피언으로 참가한 에콰도르 팀, LDU 키토를 상대로 결승전에 주전으로 나섰다. 경기 전, 퍼거슨 감독에게 '공을 받으면 전진 패스를 뿌리라'는 지시를 수없이 들은 후였다.


전반전 중앙 미드필더로 나선 캐릭은 모든 패스를 전방으로 찔렀다. 딱 한번 제외하고... 뒤에 있던 수비수 리오 퍼디난드에게 공을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퍼거슨 감독이 터치라인 근처에서 고함을 지르는 소리를 들었다. 자서전에서 캐릭은 그때만큼은 퍼디난드에게 공을 주는 편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고 회상했다.


전반전이 끝나고 캐릭은 선수들과 함께 라커룸에 들어갔다. 퍼거슨 감독은 이미 안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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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좀 씨발 앞으로 차라고, 말 같지가 않아?(Pass the ball fucking forward, I fucking told you)". 퍼거슨 감독은 라커룸에 들어오는 캐릭에게 다가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캐릭은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행동을 취했다. 감독에 대한 반발심을 최대한 숨기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상황을 모면할 때까지 기다렸다.


동시에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40번을 넘게 앞으로만 찼는데 그거 하나를 잡고 늘어지네...'. 하지만 감독이 잔뜩 흥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항변을 할 수 없었다.


당시 퍼거슨 경이 맨유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이 중앙 미드필더의 전진 패스다. 공격적인 축구를 위해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었다. 2010-2011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클럽 역사상 최대 전력을 가졌던 바르셀로나에게 3대 1 떡실신을 당한 후, 퍼거슨 경은 "맨유가 수비 축구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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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경은 훌륭한 경영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축구 철학, 절대 예외를 주지 않는 규율, '헤어 드라이어'로 유명한 호통은 한 목표를 향한다.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축구다. 당시 빠른 템포로 눈이 즐거운 경기를 펼쳤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스날, 강력한 우승 후보지만 보수적인 경기 운영으로 욕을 먹던 첼시는 따라올 수 없는, 그 시절 맨유는 특별한 존재감을 뿜었다. 당시 축구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브랜드였다.


어떤 회사라도 팬덤을 만들 정도로 매력이 충분하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퍼거슨 경은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행동 양식을 보여줬다. 엄청 간단하다. 바로 고객 지향. 팬들이 좋아하는 축구로 우승을 일궈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팬덤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팬들이 떠나지 않으면 모든 사업은 영원히 지속가능하다.


하지만 말이 쉽지, 팬들을 만족시키면서 실속까지 챙기기는 정말 어렵다. 우리는 많은 조직이 고객을 외면하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매출에만 집중하다 명성을 잃어버린 경우를 자주 본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고객 지향이 너무 심한 나머지, 눈치를 보게 되어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한다. 점점 자금이 말라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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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 고객은 유튜버다. 범위가 정말 좁다. 모수도 작고 끼리끼리 네트워크도 형성하고 있어서 평판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나는 PR과 브랜딩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외부에서 우리 회사를 어떻게 볼지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유튜버들에게 사랑받는 회사가 될 수 있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경청'이다. 너무 간단해서 퍼거슨 경까지 언급해 가며 뜸을 들인 게 부끄럽기도 하다. 일단 더 좋은 전략이 생각날 때까지 당분간은 경청이다. 고객이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듣다 예상치 못한 성과를 얻고, 업무 방향성에 대한 힌트를 얻은 적이 있다. 그 경험에서 도출한 원칙이다. 간단하지만 효과적이다.


#1

시작은 인터뷰였다. 회사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론칭했을 때였다. 첫 번째 고객이 들어오고, 블로그 콘텐츠도 만들 겸 인터뷰 요청을 했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렸다. 그런데 그 사람은 글이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구독자 10만을 넘긴 유명 유튜버였는데, 본인 유튜브 커뮤니티에 우리 회사 소개와 함께 인터뷰 콘텐츠를 공유했다. "혼자 보기 아깝다"면서. 끽해야 하루에 몇십 명 들어오던 우리 회사 블로그는 며칠간 방문자 백단위를 찍었다.


#2

두 번째 인터뷰에서 고객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구독자 40만 유튜버. 사는 곳이 너무 멀어 전화로 진행했다. 전화기만 한 시간 반동안 붙잡고 있었다. 팔이 저려오면 왼팔 오른팔로 바꿔 들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인터뷰가 꽤 재밌었나 보다. "제가 너무 아무 말이나 한 것 같은데, 이게 진짜 글로 나오나요?"라고 하며 웃었다. 그 사람은 아직도 우리 서비스를 굉장히 잘 활용하고 있다. 우리도 어디 가서 영업할 때 좋은 사례로 자주 소개한다.


#3

최근에 했던 인터뷰다. 20만 유튜버. 댄스 아카데미 원장이면서 개인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또 한 시간 반 신나게 수다. 인생을 파이팅 넘치게 살았던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 작은 지하 연습실에서 시작해 지금은 지점 2개를 운영한다. 인터뷰가 끝나고 "술자리 꼰대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다"며, "재미있는 경험이었다"는 평을 남겼다.


유튜버들은 대체로 팬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소통하기 좋아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모회사 메타가 작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크리에이터 절반 가량이 가장 큰 창작 동기로 '자기표현'과 '재미'를 꼽았다.


하지만 유튜브에서는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에 한계가 있다. 리뷰를 하는 사람은 주구장창 리뷰만 하고, 춤추는 사람은 춤만 춘다. 매번 사람이 등장하지만, 사람다운 모습은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팬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 어떤 사람인지는 정확히 모를 것이다.


유튜버들은 팬들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인터뷰가 그들의 목마름을 어느 정도 해소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살아온 인생을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나도 채널 성장이니, 콘텐츠 노하우니 뻔한 이야기는 잠시 제쳐두고 유튜브 밖에서 일어난 일들을 파고든다.


계속 듣는 역할을 하다 보니 부작용도 좀 있다. 나름 애정이 생겨서일까, 고객 말을 너무 잘 듣게 됐다. 때문에 CS팀과 사소한 마찰도 있었다. '왜 니가 멋대로 고객 상담을 해주냐'는 항의를 꽤 많이 들었다. 전화를 넘기기가 싫어서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는 답변을 해주다 보니 회사 안에서는 미움을 샀다. 내 생각에 전화를 넘기는 행동은 '난 그런 건 모르겠고~' 같은 의미를 띤다. 그리고 보통 고객이 서비스에 대해 문의할 때에는 무언가 불편한 상황이 일어난 경우가 많다. 나는 절대 전화를 안 돌린다. 우리도 어디에 문의 전화를 넣었는데 자꾸 돌리기만 하면 짜증 나지 않은가.


CS팀과는 차차 관계를 개선해 나갔다. 우리 회사에 불만이 많은 고객이 있었다. 원인은 우리에게 있었다. 예전에 회사 관계자가 언론 인터뷰를 할 때 '원래 잘 안되던 유튜버인데 우리가 키웠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하고 다녔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그 고객은 기분이 나빴나 보다. 회사에 항의를 했다. 그 뒤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전에 쓴 기사가 남아있으니 계속 인용을 당하며 고통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전화기를 붙잡고 읍소를 해야만 했다.


한 번은 클레임이 엄청 쎄게 왔다. 심지어 1년 전에 나온 기사를 문제 삼았다. 요청 사항은 기사 삭제. 정말 쉽지 않다.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CS팀은 고객이 자꾸 진상을 부린다며 투덜거렸고, 나는 기사 삭제는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거절해도 거절해도 고객은 포기를 모르고 CS팀은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궁금했다. 왜 1년 전 기사에 이제야 집착인지. 내가 직접 이야기해보겠다고 바통을 넘겨받았고, CS팀은 이전과 달리 순순히 번호를 넘겼다.


기사는 당연히 지워야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제가 심각했다. 단순히 진상 고객의 투정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었다. 사과하고 빠르게 조치를 취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TV에도 방송된 인터뷰였다. 그 유튜버는 잠깐 얼굴을 비추고 우리 회사에 대해 좋은 말을 남겼다. 그게 문제였다. 얼굴이 노출되는지 모르고 화장을 안 했었다. 카메라 감독도 얼짱 각도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뉴스니까. 그렇게 거의 쌩얼인 상태로 영상에 담겼다. 하기 싫었지만 분위기 상 거부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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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인터뷰가 나오고 몇 달 뒤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악플러들이 그 기사를 찾아냈다. 댓글로 조롱하고 각종 커뮤니티에 영상 캡쳐본을 퍼 날랐다. 우리 고객은 악플러들을 신고하다 지쳤고, 그제야 회사에 연락했다. 스트레스를 견딘 시간이 길었던 만큼, 간절하게 매달렸을 테다.


언론 윤리 3조는 '인권을 존중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취재 대상을 존중하고 개인의 인권과 존엄성을 침해해서는 안된다. 명분이 확실했다.


기자에게 연락해 잘 마무리했다. 기자는 엄청 당황해서 '그런 일이 있었냐며' 곧바로 기사를 지워줬다. 수고롭게 한 점은 점심 식사로 퉁쳤다. 오랜만에 안부도 묻고 법카도 태울 겸.


그 뒤로 또 그 고객이 기사에서 언급된 적이 있었다. 탑티어 매체. 지면까지 나왔다. 이번에는 자진 납세를 했다. 고객이 기사를 찾기 전에 먼저 전화를 걸어 엄청나게 사과했다. 당연히 고객은 화를 있는 대로 냈다. 그래도 나중에 머리가 차가워지고 나서는 괜찮다고, 먼저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전에 언급한 게 계속 인용될 수 있구나, 이해를 해줬다. 다행이었다. CS팀에서도 별다른 컴플레인을 걸지 않았다. 오히려 잘 처리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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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경이 현역이던 시절, 맨유 선수들은 잘못할 때마다 온갖 쌍욕을 들으면서도 그를 아버지처럼 따랐다. 욕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백발 할아버지가 그 거친 남자들을 조련할 수 있었던 이유를 추측해 본다.


이미 당시 선수들은 퍼거슨 감독 철학을 완전히 이해하고 체화했다고 생각한다. 매우 까다롭고 힘든 원칙이지만, 실천했을 때 돌아오는 보상은 굉장히 달콤하다는 사실을 이미 깨달았을 테다. 단순히 돈으로 측정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당시 맨유는 가장 비싼 선수들을 가진 구단이 아니었다. 재정도 다른 빅클럽만큼 풍요롭지 않았다.


그때 선수들이 원팀으로 전력 질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당시 맨유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통틀어 가장 빛나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세계 최고 명문 구단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선수들은 전의를 불태웠을 것이다. 그리고 전설의 중심에 퍼거슨 감독이 있었다. 그가 만든 엄격한 규율과 통제는 사실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도 볼 수 있다. 퍼거슨 감독과 맨유 선수들은 팬들을 위한 축구로 수없이 많은 우승을 일구어 냈다.


고객을 상대하는 비즈니스에서도 퍼거슨 경이 보여준 리더십이 필요하다. 고객이 회사를 사랑하게 만들고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핵심 원칙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조직원들이 이를 철칙으로 삼도록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 고객은 까탈스럽고, 언제든지 회사에 실망하고 등을 돌릴 여지가 있다.


그래서 나는 설익은 셀프 리더십 '경청'을 원칙으로 업무에 임한다. 다양한 대행사를 돌다 처음으로 인하우스에 입성했고, 처음으로 고객이 생겼다. 크리에이터라는 새로운 전문가 집단이다. 이들에게 우리 회사와 내 존재감을 깊게 새기고 싶다. 이들이 만들고 있는 '크리에이터 경제'는 유망하지만 아직은 척박하다. 앞으로 내 리더십 원칙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크리에이터 경제 일원으로서 이들과 함께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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