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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Mar 15. 2016

큰따옴표가 없어진 당신

속마음이 듣고 싶어

나는 큰따옴표가 좋아. 
두 명의 숫자 6이 서있는 거 같기도 하고

예쁜 속눈썹을 가진 눈이 웃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


물음표, 느낌표, 마침표, 쉼표. 

씩씩하게 혼자 다니는 다른 문장부호들과는 달리

큰따옴표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듯 사이좋게 짝을 이루잖아.


둘을 지향하는 모습은 내가 쓰는 글에 너를 등장시키고, 모르는 제삼자를 불러오며 

외롭고 결여된 시각을 따뜻하게 채워주니까.


특정인의 입이나 손을 통해 발화된 것이라서 다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내용이 담겨.

그래서 기자들은 큰따옴표를 빌어서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도 해. 


육하원칙에 따라 객관적인 사실만 적어야 하는 기사 작성의 원칙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생각이나 느낌을 적을 수 있는 곳이 큰따옴표 속이거든. 

신문을 볼 때면 가끔 수많은 김 모 씨들에게서 시선이 머물러. 

불만을 토로하고 희망을 내다보는 목소리에는 저마다의 체온이 담겨있거든. 

이 기자는 은연중에 이런 말이 하고 싶구나 싶어서, 진실 속에 진심을 느끼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널 기다리며 신문을 보던 내게 넌 말했다.

칼럼이나 소설에서 찾아야지 

큰 따옴표를 왜 뉴스에서 찾냐고.

기사는 감정이 들어가면 가치를 잃는다고.


그때 난 사회면 기사처럼 변해버릴 너를 알아채지 못했다.

너와 내가 있었다는 앙상한 한 문장만 남을 줄은. 



눈 내리던 어느 날, 

작년에 친구네랑 같이 스키장 갔던 거 재밌었는데, 또 가고 싶다고.

우리 처음 만난 날에도 아주 잠깐 눈 왔었는데, 그러고 보면 우린 눈이랑 인연이 많은가 보다고.

하얀 눈이 왔으니까 디저트로 눈꽃빙수 먹으러 가자고.


그저 눈이 왔단 것만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던 내 옆에서

넌 딱 한 마디 했어. "응, 춥다."


밥을 먹으러 가서도 고작 

"이 집 맛있다."거나 "이런 날엔 국물이 좋아. 그치?" 거나.

처음과 달리 말수가 줄어든 날 느꼈는지

헤어질 때쯤 왜 그러냐고 묻더라. 


"눈이 왔으니까 춥잖아.

추우니까 따뜻한 국물이 맛있는 거고. 

무언가 먹었으니까 맛있다고 한거잔아."


빽 하고 높아진 내 말소리에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면서 

"그게 왜?" 


대체 뭐가 문제냐는 니 표정을 보니까 

얼마 전부터 속에서만 맴돌던 말이 나왔어.


"인과관계가 없으면 안되니?

눈이 안 내렸으면, 김치찌개를 안 먹었으면

넌 오늘 할 말이 없었을 거잖아.

너는 나랑 있는데 네 말에는 내가 없어.

네 말에는 너도 없어. 오늘의 장면만 있지.  

기분이나 마음이 들어간 말 같은 건 하면 안 되는 거야?"


앞이 있고 뒤가 있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내가 말하는데 내가 없다니, 

그런 이상한 트집이 어디 있냐고 화라도 내길 바랬다 사실. 

그래야 또 내가 너한테 따질 수 있고, 그래야 너를 조금 이해도 하면서, 

우리 둘 미래도 기대해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너는 차분하고 단호했어.

너무 예민한 거 같다고, 오늘은 이만 들어가라면서 대화가 끝나기를 바랐지.


두 사람이 대화를 하다가 슬퍼질 때는 

혼자만 말할 때도 아니고, 들어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아니야.

서로 말을 하고 있는데, 분명 너의 입도 움직이고 나의 입도 움직이는데 

언제든 한 사람이 사라질 거 같을 때야.


네 자리를 A나 B가 대신해도 어색하지 않을 때.

네 대사는 괄호 속의 지문에 뺏겨 버릴 때.

더 이상 너의 큰따옴표를 볼 수 없을 때.

그렇게 극속에서 존재가 미약해질 때.


이제 보니 너는 작은따옴표를 좋아하나 봐.

속마음으로 한말을 적을 때 쓰는 거.


기쁜지 슬픈지 꽁꽁 숨기니까 알 수가 없잖아.

비겁하게 작은따옴표 뒤에 숨지마.

그럼 들키지라도 말지.


넌 글은 못 쓰겠다.

갈등을 외면하는 글은 재미가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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