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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Mar 19. 2016

날 모르던 네가 자꾸 보여

어떤 영화에서 한 소년이 엄마한테 물었어. 

사랑에 빠지면 어떤 기분이냐고.

꼬마의 엄마는 말했지.

수천 마리 나비가 몸속을 날아다니는 기분이라고.


종잇장처럼 얇은 날개로

힘차게 펄럭이는 신기한 생명체가

미세혈관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 미풍을 일으키는 느낌.

나도 느껴본 적 있어.


한 남자가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여자에게 

첫눈에 반하는 영화에선 말이야.

남자 주인공이 거리에서 푸른 유니폼에 둘러싸여.

할아버지와 아주머니, 남녀노소 모두가 그 여자와 같은

옷을 입은 채 걸어 다니고 있거든.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어서

시도 때도 없이 아른거리는 얼굴.


머그잔에 담긴 녹차에 동동 떠있고

펜을 놀리다 나도 모르게 적고 있는 네 이름.

너를 향한 마음이 어디든 나타나기도 했어.




내 안에도 내 밖에도 온통 너로 꽉 찬 느낌.

너와 헤어지고 계절이 두 바퀴나 돌았는데

이 추운날에도 나비 몇 마리가 눈앞에 나타나.


얼마 전에

검은 코트에 야구모자 쓴 사람을 봤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실루엣.

홀린 듯 그 사람을 쫓아갔는데

넌 아니었어.


길 모퉁이를 돌면

저 계단을 다 내려가면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검은색 코트에 야구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자꾸만 나타나.


우리 처음 만난 날

너는 그렇게 입고 있었잖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편하게 입고 나온 차림새였지.


멋지게 정장을 차려입은 날도

내가 좋아한 연분홍 셔츠를 입은 날도

유치한 커플티를 맞춰 입었던 날도 아닌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너와 내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을 때 네 모습.

나는 그때 모습만 생각이 나.


행복하기도 힘겨워하기도 했던 

우리였던 시간 속의 너 말고

날 만나기 전 너.


요즘 나는 내 얼룩이 조금도 없던

네가 자꾸만 보여.


딱 그때의 너를 지금의 내가

찾아낸다면 참 좋을 거 같아.


넌 어떤 날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니.

네가 불러낸 순간으로 내가 돌아가면

우린 조금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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