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친구는 술래니까
양팔을 위로 올려 만세를 하고.
겉으로 보이는 두개의 주머니와
안에 있는 속주머니에도 손을 찔러보고.
단추를 모두 잠갔다가 풀어도 보고.
네가 시킨 다양한 동작들을 군말 없이 다 했는데,
흐음~하고는 턱을 손으로 감싼 채 날 아래 위로 훑더니
"좋아, 벗어."
이 옷은 마음에 드나 보다 싶어서 냉큼 옷을 벗었는데
"다른데 몇 군데만 더 가보자."
그렇게 말하고 나를 앞질러 매장을 빠져나가는 너.
순간 나는 울컥해서
"내가 아바타냐!
네가 입으라면 입고, 벗으라면 벗게.
적당히 둘러봤으면 그중에서 하나 고르면 되잖아.
보니까 그게 그거구만.
꼴랑 재킷 하나 사는데 두 시간이 웬 말이냐고. 두 시간이.
그것도 내가 입을 옷도 아닌데. "
짜증이 담긴 내 목소리에도
너는 태연하게 시계를 한 번 보더니 그러더라.
"배고파서 그러는구나?
여기 백화점 푸드코트가 진짜 괜찮대.
말만 해. 오늘은 내가 다 쏠게. 뭐 먹고 싶어?"
이럴 줄 모르고 따라온 것도 아닌데.
나한테 연락이 잣아지면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거, 겪어봐서 잘 알고 있는데.
그래도 요즘 너는 좀 심했어.
연극표를 예매할 건데 어떤 게 좋겠냐며 물어오고
메시지를 읽지 않는데 전화를 해봐도 괜찮냐고 물어오고
구두를 신을 건데 7cm가 좋을까, 9cm가 좋을까 물어오고
편지를 쓸 건데 어떤 말로 시작하면 좋을까 물어오고
수면 위로 드러난 예쁜 모습은 그 사람이 보고
물속에서 발버둥 치는 모습은 내가 보고
'네 남자친구가 그렇게 잘났냐'고 했을 때 너는 화낼 법도 했는데,
축축하게 젓은 소리로 보는 내가 아플 만큼 가엾은 눈동자를 하고 그랬지.
이 사람 하고는 정말 잘 해보고 싶다고.
아주 조그마한 것들까지 그 사람 마음에 들고 싶다고.
그 사람이 찾던 사람이 바로 나였으면 생각하길 바란다고.
그래서 오늘도 네가 선물할 재킷이 그 사람 몸과 마음에
꼭 맞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피팅모델이 된 건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할 적에 말이야.
나는 늘 술래가 잘 됐고, 한 번 술래가 되면 오랫동안 했어.
가위 바위 보 여신은 좀처럼 내손을 들어주는 법이 없었고,
내가 잡으려고 쫓아가면 친구들은 벌써 선안에 들어가 있었거든.
술래가 되는 건 지루하고 쓸쓸했어.
무궁화 꽃이 피었다고 끊임없이 말해야 하니까.
멈춰 있거나 도망가거나, 내편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가위바위보를 못하면, 달리기를 못하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나는 어울리고 싶었어, 그래서 애들이 하자는 걸 그냥 했던거야.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그 놀이를 하고 있어.
네가 새로운 사랑을 할 때마다.
한 번씩 고개를 돌릴 때마다
너는 점점 내 곁에 가까워있어.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거리.
잡는다 소리치고 너를 쫓아가면 되는데
잡을 뻔 한 순간도 있었는데.
내가 널 어떻게 잡아.
한번 잡히면 영원히 이 놀이가 끝날걸 아는데.
나는 너랑 계속 놀고 싶은데.
그러니 성실한 술래가 되는 수밖에.
두 계단 위에 네가 서있는데
나는 참 멀게 느껴진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린 네가
날 부르면서 이쪽이라고 손짓을 한다.
그럼 나는 또 가야지.
잡힐 듯 잡을 수 없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는 또 네곁으로 가야지.
나는 너의 친구, 술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