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열린 죽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담마 Nov 28. 2019

거미와 애벌레

사냥과 쇼핑


베란다에 나갔다 전쟁을 목격했다. 검은 거미와 초록 애벌레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애벌레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틀 전에 녀석은 죽었다. 상추 씻고 난 물에 미동도 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 물을 베란다로 들고나가 이 화분 저 화분 부어주었다. 주방볼 바닥에 잠겨있던 애벌레가 제라늄 화분 위로 떨어지는 걸 분명히 보았다. 맙소사, 그때 죽은 게 아니었다니!


거미도 내가 아는 녀석이었다. 콩알보다 작은 몸집에 광택이 도는 까만 빛깔의 거미였다. 화분과 화분 사이에 거미줄을 쳐놓고 전부터 거기 살고 있었다. 뭘 먹고살까? 궁금했었는데 사냥 장면을 목격하게 될 줄이야.


거미는 줄에 매달려 싸웠다. 먹잇감은 자기 몸 세 배에 육박하는 거구였다. 바닥 근처까지 내려와 질긴 줄로 애벌레를 옭아매고 잽싸게 위로 올라갔다. 먹이를 끌어올리려는 계획 같았다. 느슨해진 집을 손본 다음 다시 내려가 애벌레에게 거미줄을 쏘아댔다.


난 고민했다. 애벌레를 구해 줄까?

  

애벌레의 인생, 아니 애벌레의 충생이 기구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시댁 텃밭에서 평화롭게 살던 녀석이었다. 초록 애벌레는 너른 밭에서 푸성귀를 먹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운명의 그날, 갑자기 하늘에서 거대한 손이 내려와 상추를 포기째 뽑았다. 애벌레는 상추 잎 사이에 끼여 비닐봉지에 담겼다. 내 차에 실려 두 시간을 달려온 끝에 냉장고로 들어갔다. 추운 날이 사흘간 계속되었다. 갈퀴 같은 손이 나타나 상추를 한 움큼 집어 들 때까지 애벌레는 혹한을 견뎌야 했다.


주방은 저녁식사 준비로 부산했다. 남편이 삼겹살을 굽는 동안 나는 상추를 씻었다.

  

애벌레는 제라늄 화분 위에서 정신을 차렸다. 여기가 어디지? 주위를 둘러보았을 것이다. 고향과 달리 이곳 땅은 이상했다. 얼마 기어가지 않아 벽에 가로막혔다. 애벌레는 화분 벽을 타고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육이와 허브가 자라는 인간의 베란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향해 애벌레는 머리를 놀렸다. 그러다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 떨어졌다. 이틀 동안 매끈한 타일 위를 기어 다녔지만 먹이도 쉴 곳도 찾을 수 없었다. 위에 거미줄이 있는지도 모르고 화분 사이를 지나갈 때였다. 검은 거미가 내려와 끈적거리는 줄을 휘둘렀다. 거미줄에서 벗어나려고 꿈틀거릴수록 피부는 말라갔다.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되어 갔다.

 

베란다 가득 아침 햇살이 들이치고 있었다. 화초들은 태양을 향해 몸을 펴고 맛있게 아침을 먹는 중이었다. 평소 같으면 나도 한 포기 식물이 되어 그들 사이에 앉아 광합성을 즐겼을 것이다. 후회가 되었다. 상추 씻고 난 물을 하수구로 흘려보낼 걸. 애벌레는 저렇게 고통을 당하느니 그때 깨끗이 죽는 편이 나았다. 지금 구해준다 해도 애벌레가 생명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거미는 제압해놓은 먹잇감을 집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힘쓰는 중이었다. 애벌레의 무게를 견디려면 집이 튼튼해야 했다. 먹이를 조금 끌어올리고 거미줄을 보수한 다음 또 끌어올리기를 반복했다. 저렇게 애쓰는 거미한테서 애벌레를 빼앗을 수 없었다. 인간의 손이 나타나 다 잡아놓은 먹이를 채간다면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신용카드를 내밀고 마트에서 고기를 사 와 구워 먹는 처지에 어떻게 사냥의 끔찍함 운운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틀 전에 먹은 돼지에 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어떻게 생긴 놈이었는지,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돼지, 소, 닭, 오리는 애초에 생명이 아니었던 것처럼 마트에 진열되어 있고, 우리는 수세미나 세재를 고를 때와 똑같은 감정으로 고기를 쇼핑카트에 담는다. 거미와 애벌레 사이에 오고 간 치열함과 급박함, 긴장감과 처절함을 가늠할 수조차 없다.


 나는 오랫동안 의문을 가져왔다. 왜 신은 세상을 이런 방식으로 설계했을까. 식물과 동물의 구분은 왜 필요했을까. 동물도 광합성을 하며 살 수는 없었을까. 개체 안에 무한 에너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으면 좋지 않았을까.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왜 진화는 남을 죽여야 내가 사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을까. 그랬으면 지구가 천국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반항심에 차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지만 답을 알 수 없었다.


지난 이틀 동안 애벌레는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생명을 사냥하기 위해 거미도 최선을 다했다. 나는 그들의 싸움을 외면하고 거실로 돌아왔다.


오후에 빨래를 걷으려고 베란다로 나갔다. 거미도 애벌레도 보이지 않았다. 전쟁이 치열했던 현장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미집도 비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창틀 아래 구석진 곳에서 거미를 발견했다. 녀석 옆에 매달려 있는 건 제 몸 빛깔을 닮은 검은 껍질이었다. 어여쁘던 생명은 쪼그라들어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애벌레는 초록의 육즙을 거미에게 다 빨려버린 후였다. 생명의 주스를 한껏 들이키고, 거미 배가 통통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린 죽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