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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마우스 Nov 16. 2018

80세 노인으로 살아가기

노인체험 후기


내가 학교에서 배우는 다양한 과목 중 노인간호학이라는 과목이 있다.

국가고시 해당 과목은 아니지만 고령화 속도가 가속화되고 의료기술의 발달로 고령의 노인 환자분들을 많이 겪게 될 나에게는 유익하고 흥미로운 수업 중 하나이다.


첫 수업 시간 교수님은 "노인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니?"라고 질문하셨다.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내가 생각했던 모습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지팡이를 짚고 걸으시는 모습

2. 지하철 역 앞에서 엘레베이터를 기다리시는 모습

3. 병원에서 진료나 치료를 위해 방문하시는 모습


수업을 같이 듣는 동기 중 할머니와 오랫동안 같이 살았던 경험이 있던 동기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1.친구분들과 경로당에서 화투치는 걸 좋아하시는 모습

2.가끔 전쟁시절 이야기를 해주시는 모습

3.생활의 지혜가 늘 가득하신 모습


생활 환경의 차이도 있겠지만 내가 "노인"이라는 것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은 편이라고 했다.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결과라 다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렇구나..내가 노인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생각하다니.."



수업 과제의 일환으로 노인생애 체험센터를 몇 주 전 다녀왔다.

팔목과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노인의 관절을 경험하기 위한 보조기구와 등을 굽어지게 하는 장치, 황반변성과 노안이 온 노인의 눈을 체험할 수 있는 고글까지.. 체험에 필요한 6kg의 장비를 착용하고 실제 가정집과 똑같은 환경을 체험하는 것이었다.


솔직한 느낌을 말하면 두려웠고 충격적이었다.

사실 나는 단순히 늙으면 기관이 퇴화하니 불편한 점이 생기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지 얼마나 불편하고 그게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본 경험이 없다.


그런데 겨우 2시간의 체험 중에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시야가 좁고 경계가 불분명해 계단이 무서워졌고, 서랍장 손잡이도 불편했으며, 우유에 적힌 유통기한의 글씨를 읽기란 거의 불가능이었다.

모든 것이 다 불편했고, 답답했다.


체험을 마친 후 함께 한 동기들과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의 동기들이 생각보다 많이 불편했고,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고, 실버 용품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는 병실에서 핸드폰 떨어뜨리시면 콜벨 눌러서 왜 간호사에게 주워달라고 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하철 역에서도 서로 먼저 엘리베이터 타시려고 하시고, 에스컬레이터가 무섭다는 마음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노인들을 위한 시설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내 소감을 들으신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핸드폰 떨어뜨리고 주워달라고 하면 바쁜 간호사 입장에서는 귀찮죠. 그치만 그분들은 본인이 침대에서 떨어질까봐 두려운 거예요. 서로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시는 것도 어쩌면 전쟁을 겪으셔서 선착순에 대한 기억이 박혀있어서 그런 걸 수 도 있어요. 뭐든지 옛날에는 선착순으로 빨리 가야 밀가루든 보리든 얻을 수 있던 시절도 있었잖아요. 노인의 성격적 특성일 수 있어요."


모두들 체험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을 쯤 교육하시는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하셨다.

"아이들을 보고 욕하지마라. 나 역시 어린시절을 지나왔고 그들은 당신과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노인을 보고 흉보지 마라. 그들도 당신과 같은 길을 이미 다 겪어온 사람이다."


살아가면서 늙음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과정. 

그 과정을 아직 겪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지 늙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인에 대한 배려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말이었다.


체험을 다녀 온 요즘 지하철 역에서 걷기 힘들어 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 더 마음이 쓰이고 도와드리려는 모습이 생겼다. 

나 자신이 부디 노인체험을 통해서 느꼈던 많은 감정들을 잊지 않고, 임상에 갔을 때 그 누구보다 노인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적합한 간호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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