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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마우스 Mar 01. 2019

입사 한 달, 간호 일기

오늘은 입사 한지 딱 한 달이 되는 날이다.

매일 울며불며 병원과 집을 오가기 바빴고 응급실 입사로 인해 정말로 다양한 환자들을 만났던 시간이기도 하다.

모든 과의 환자들이 다 몰려드는 곳이니 신규인 내가 교육받는 곳이 중증도가 낮은 곳이라고 해도 내과적인 문제를 만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환자들에게서 발생한 급성기 증상을 간호해 주는 것은 아직 햇병아리인 나에게 늘 두렵고 버거운 일이었다.


한 달의 시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면 어떡하지?

2. 내가 익숙하지 않아서, 손이 느려서 환자들과 다른 선생님들께 모두 피해가 되는 존재가 되는 것 같다.


이 두 가지 생각은 늘 마음을 무겁게 했고, 신규여서 당연한 문제라고 말하는 선배들의 위로에도 막상 근무를 하러 가면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것 같은 나 자신이 너무 답답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알아야 할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았고, 처음 하는 사회생활을 적응해 내야 했으며 사수(프리셉터)와의 힘든 관계를 버텨내는 것도 하나의 과제처럼 다가왔다.

이제 겨우 한 달 차 간호사인 나에게 팔을 내어주는 환자들에게 채혈을 실패하거나, iv(정맥주사)를 실패할 때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죄송합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 싫었고, 약물을 계산하거나 중요한 행위를 할 때 늘 남들보다 시간이 걸리는 내 자신이 너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며칠 전 내 프리셉터(사수)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공부머리랑 일머리랑 다르다는 말 들어봤지? 넌 나보다 좋은 대학 나와서 학교 다닐 때 공부는 더 잘했을지 몰라도 환자 iv(정맥주사)하나 제대로 못하는데, 간호사로서 일을 잘할 수 있겠어?"

"저도 이런 제 자신이 너무 답답하고,  이 일이 너무 힘든데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환자 옆에서 함께 하는 걸 결국  좋아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살면서 이것밖에 안 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답답하고 싫었던 적이 없는 거 같아요."

내 대답을 들은 내 프리셉터 선생님은 한숨을 크게 쉬며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싸늘하게 쳐다보셨지만, 그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나의 이런 모습을 내가 간호해야 할 환자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결국 내가 환자에게 아무런 신뢰를 줄 수 없는 간호사인 것 같아서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너무 힘든 병원생활에 나 자신과 한 가지 약속한 것이 있었다.

'절대 무슨 일 이 있어도 병원 안에서는 울지 말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이 들더라고 병원문을 나서서 울자.'

그런데 입사 한 달을 채우던 날,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퇴근하면서 탈의실 사물함을 열었는데 응급실 선생님이시자, 학교 선배님의 쪽지 하나가 붙어있었다.


"네가 학교 다닐 때 실습할 때 눈치도 있고, 환자들한테 얼마나 따뜻했었는지 나는 알아. 같은 병원에 오게 된 학교 동기들 중에서 네가 제일 먼저 발령받았을 때 동기들이 모두 네가 처음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며 너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했던 말도 아직 선명하게 기억해. 밝고 늘 웃는 네가 출근길에 입은 웃고 있고, 눈은 슬퍼 보이는 걸 보니까 정말 최선을 다해서 참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더라. 나도 신규 때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어. 출근길에 지하철에 뛰어들고 싶기도 했고, 차에 부딪혀서 사고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 하면서 출근했어.

어떤 말로도 이 힘든 마음을 다 덜어줄 수 없다는 거 알고, 너무 뻔한 말이라 믿어지지 않겠지만,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 해결될 거야. 조금만 더 버텨보자. 네가 응급실에 와서 너무 좋아." 


저 말을 보는 순간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아오던 감정들이 모두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에 사물함 앞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새로 시작되는 3월은 내가 독립하기 전 프리셉터 선생님에게 도움을 받으며 일 할 수 있는 마지막 한 달이다.

3월을 시작으로 새로운 프리셉터(사수)를 만나서 일 하게 될 것이고, 그래도 첫 출근 한 날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결국 나는 아직 어쩔 수 없는 신규 간호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간호사이고 싶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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