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도 회사 일이 끝나지 않았다
마우스가 아닌 랫으로 하는 실험을 처음 했다. 마우스는 검은 작은 쥐고 랫은 하얀 큰 쥐다. 거의 팔뚝만 하다. 마우스는 성질이 사납고 랫은 온순한 편이다. 온순하다고 해서 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우스는 툭하면 문다면 랫은 위험을 느낄 때 인정사정없이 문다. 살점이 너덜거린다. 랫 실험을 10년 이상 한 선배에게 살점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랫을 보기만 해도 무섭다.
동물 실험을 한다고 해서 동물에 대한 무서움이 없지 않다. 내 경우에 뭐든 문다는 생각이 들면 무섭다. 어렸을 때 시골 할머니 집에 갔다가 닭에게 쪼인 후로 새가 무서웠다. 정확히 말하면 눈이 무섭다. 생생한 눈이 날 겨냥했고 쪼았다는 연결로 각인되었나 보다. 대학교 때 동생과 함께한 등굣길에 새가 서 있기만 했는데도 눈을 보고 겁을 먹고 소리친 적도 있다. 내가 키우지 않는 모든 동물이 무서운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겁에 질린 동물실험자다.
어제 처음으로 랫을 잡았다. 볼펜 두께 정도인 꼬리를 잡고 랫을 드는데 묵직하다. 힘도 세다. 이빨만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얘네한테 물리면 살점이 너덜거려, 살점이 너덜거려, 살점이. 아, 큰일이다. 옆에 교수님이 보고 계신데. 얘네들이 순하다고 누가 얘기했어! 발버둥을 얼마나 잘 치는데. 덩치가 큰 만큼 힘이 센데. 뭐든 모양이 있는 것에 발을 걸 수 있다. 매달린다. 그러면 또 떼어내기 위해 나는 애를 먹는다. 이미 졌다. 얘네하네 나는 겁쟁이로 낙인 되었다. 그중에 2번이나 마취시키기 실패한 녀석이 있다. 얘는 뒤로 미뤄야겠다. 케이지에 넣어 두었다.
실험 방법을 자세히 알려줄 수 없지만, 등 쪽 피부를 절개하고 꿰맸다. 꿰매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실이 뜯어지고 피부가 벌어졌다. 다시 꿰매야 한다. 이런 랫이 한 마리가 아니다. 두세 마리가 그랬기 때문에 수술한 랫을 모두 다시 꿰매기로 한다. 다행히 아물기 시작한 랫이 있어 안심이다. 생각보다 빨리 아물기 시작한다. 제발 제발..이라는 마음으로 퇴근했다.
잠자리에 드는데 실험이 복기된다. 잠에 들었다. 깊은 잠에 빠져든 건지 헷갈린다. 랫이 자꾸 떠오른다. 눈이 나를 보고 있다. 고통스러운 눈빛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은 불안하다. 오늘 밤만 버티면 오늘 밤만 버티면 상처가 아물기 시작할 텐데, 제발 하며 간절히 바란다. 내가 너희를 생각하며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릴 일인가. 그런데 왜 자꾸 마음 한 곳이 저릿하지. 너희를 향한 마음이 두려움인지 간절함인지. 실험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인지 헷갈린다.
(사진 : @riccardo ragione,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