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유산을 물려받을 때
김약사는 변호사도 함께 물려받았다.
변호사는 만나자마자
김약사가 알아야 할 많은 정보를 읊었고,
평소 해야 할 일에 대한 요구사항이 가득 적힌 서류를 내밀었다.
부모님의 변호사였고
이제는 김약사의 변호사가 된 변호사는
머리숱이 없는 대신 말이 많았다.
말 많은 변호사의 요구로
김약사의 집에서
일하게 되는 사람은 모두
근로계약서를 쓸 때
비밀유지각서와 함께
CCTV 녹화에 대한 동의서도 써야 했다.
항상 그렇게 해왔다는 게
변호사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CCTV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어딘가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만 느끼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CCTV의 존재란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변호사는 희미하게 우는 것같이 웃었다.
김약사가
어릴 때에도
집을 드나드는 이들 중,
넓은 집안에 널려있는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경우 대부분 물건이 없어지곤 했다.
김약사를 위해 엄마대신
맛있는 식사를 차려주고
밥을 먹는 동안 함께 수다를 떨었던
정든 도우미 이모가
물건을 훔쳤다는 이유로 내 쫓겼을 때,
김약사는
엄마가 오해하고 있다고
굳건히 믿었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유산을 물려받고 나서
알게 되었다.
엄마는 혼자서 사실을 보고 있있고
오로지 자신만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CCTV는
대체
왜 필요했을까.
남편의 행동을 지켜보며 원망하고
딸의 오해로 인해 미움을 받으면서까지
엄마는 과연 무엇을 원했던걸까.
집을 지을 때
엄마는
아빠의 동의도 없이, 통보도 하지 않고
CCTV를 설치했고
그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막대한 돈을 들여서
보안을 설계할 때
업체에 사각지대조차 없애도록 요구했고,
그러다 보니
샤워실과 화장실을 제외하곤
모든 곳을 CCTV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CCTV녹화파일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엄마의 요구 사항은 훨씬 복잡했다.
엄마의 보안장치는
부모님이 죽고
김약사가 상속받은 것들 중에서
가장 기괴한 것이었다.
모든 정보를 넘겨받고 알게 된 것은
숨겨진 메인 보안장치가
보안실이라는 이름으로
엄마의 안방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엄마의 안방에는
나르시시스트답게
아주 커다란 거울이 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 아주 작고 비밀스러운 방이 있었다.
모든 곳의 녹화된 CCTV정보들이
파일로 자동 저장되어서
소리까지 녹음된 녹화 장면들을 볼 수 있었으며,
24시간 돌아가도록 카메라를 작동시키고
때로는 차단하는 장치가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자동으로 업데이트되며
스스로 저장하고 압축하여 보관할 줄 아는
인공지능이 운영하는 보안실이었다.
엄마의 홍채와 지문이 아니면
보안실을 열수도
파일을 열 수도 없도록 되어있었다.
김약사가 그것을 상속받을때
김약사의 홍채와 지문정보가
엄마 정보 대신 등록되었다.
그곳은
외부의 비밀경비업체와도 연결되어 있어서
비상시에 숨을 수 있는
패닉룸으로서 작동하며
패닉룸이 작동하면
동시에 보안업체에 사고가 접수되는 시스템이었다.
일반인으로 살았던
엄마의 머리속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걸까.
김약사는 죽은 엄마를 깨워 묻고 싶었다.
김약사가 유모의 손에 자라도록
방치하면서
왜 그렇게 걱정 없이 태연했는지도,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김약사를 바라볼 때
엄마는
정말로 김약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다 지난 일인데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김약사는 직업상
포장된 많은 알약 속에서
잘못 들어간 약을 찾아내는
섬세하고 꼼꼼한 일을 하며
30년을 보냈다.
어린시절부터
직업병인지 아니면 천성인지
김약사는 물건들의 자리를 정해주는 강박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물건들이 잘못된 자리에 자리했다고 느낄때
직관적으로 원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약사로서 일할 때는
꽤 도움이 되는 능력이기도 했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만들어질때 기능을 잃고
잘못된 곳에 놓여있는 것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
김약사에게
그 것부터가
이미 힘겨운 일 그 자체였다.
문득 보안실의 녹화파일이 생각났던
날이 있었다
과거 어떤 날과 어떤 시간을 골라
녹화파일을 재생시켜 보았다.
그날 녹화파일 속에
엄마와 아빠 그리고 김약사는
각자 다른 곳에 있었다.
엄마는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의 방에 들러
아버지 베개 속에 부적을 넣고 있었다.
그리고
잠든 김약사 방에도 몰래 들어가
방에 걸린 그림 뒤에
부적을 넣고 있었다.
부적이라니.
엄마는 큰 교회의 권사님이었다.
엄마의 신실한 믿음을 알아본 것인지
엄마는 교회나 단체에서 높은 직책을 여러 개 맡고 있었다.
엄마의 믿음은
항상 대단한 액수의 돈으로 증명되었지만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이라며
불신자들이 대부분인 교회의 교인들은
엄마의 믿음을 인정해 주곤 했었다.
엄마는 모태신앙이었고
죽을때까지 교회에 다녔지만
엄마와 부적은 이질감없이
잘 어울렸다.
부적을 들고 돌아다니는 엄마를 보며
오랜만에 김약사는 웃고있었다.
완벽해보였던 엄마가 처음으로
인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얼마나 바랬으면...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사람들 모두
자신을 사랑하게 하고 싶을 때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이상한 그림에
자신의 이기적인 바람을 담는 것은
몹시 엄마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늘
모든 것이 가짜 같았다.
딸인 김약사의 눈에
엄마는
화려한 치장으로 자신의 본질을 가리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약사는 그런 엄마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가 없었다.
김약사에게 엄마는 눈빛조차 주지 않는
가슴 아픈 짝사랑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말없이 홀로
술과 벗 삼아 살아갔던 아빠는
사랑하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이었다.
김약사가 어렵게 다가서면
슬픈 눈빛으로
어찌할 줄 모르는 아빠는
술에 취하면 슬퍼 보였고
술이 없을 땐 불행해 보였다.
그리고 저절로 흘러가는 시간과
벗 삼아 마시는 술을 이용해
매일 조용히 죽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허상 같은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불행한 삶을 끝내고 싶어 하는 아빠를 지켜보며
김약사는
늘 슬픈 기분이었다.
그렇게
불행하게 끝날 줄 알았던
삶의 어디쯤에서
선물처럼 쫑아를 만났다.
생명력이 넘치는 존재가
눈을 반짝이며 김약사만 바라보고 있었고
귀를 팔랑거리며 어디나 따라다녔다.
장난감을 물고 곳곳을 뛰어다니며
어지럽히는 것이 쫑아의 하루 일과였다.
쫑아를 만난 후로
김약사의 각종 강박증은 조금씩 사라졌다.
이제
물건들의 자리는 없어졌지만
김약사의 마음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골목 귀퉁이에
갑자기 쓰러지기 전까진
스스로 괜찮아졌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괜찮다, 괜찮다 여겼던 허술한 마음이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로 이어졌다.
스스로를 더 잘 돌보아야 했다.
쫑아를 위해서라도.
그랬다면 쫑아가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김약사를 기다리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김약사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리고
집에는
김지영을 지켜보는 CCTV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