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되고 싶은 것들
건대 반디앤루니스에 갔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간 책은 <도망치고 싶을 때 읽는 책>. 책 제목이 참 가소롭다 생각했다. 평소 자기 계발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제목은 그럴듯하게 표지는 그럴싸하게 포장해놓고 책을 펼쳐보면 자신의 경험 하나로 이 세상 모든 이치를 다 안다는 듯 설교조로 말하는 책들이라 치부했다. 그런 책에 환호하고 값을 지불하는 이들은 멍청한 대다수라 생각했다.
차마 계산은 못 하고, 서점 한 구석에 앉아 몰래 펼쳐 읽었다. 목차는 제법 그럴듯했다. 주제도 인간관계나 두려움, 불안과 같이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고민했을 법한 내용이어서 부담 없이 읽혔다.
“무서워지면 도망가도 된다.” “도망칠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살며, ‘1만 시간’을 투자해 한 분야에서 ‘성공’하라는 말을 들으며 ‘우리’는 커왔는데. 인생의 배움을 완전히 비틀어버리는 말들. 설교 조의 말투가 좀 별로였지만,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특별한 통찰을 담고 있지 않아도, 읽는 순간 문장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지 않아도, 그냥 좋았다. 도망치고 싶은데 도망쳐도 좋다고, 도망쳐야 한다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가 됐다. 자기 계발서 류의 책들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를 포함해, 그들은 멍청한 게 아니다. 그저 위로받고 싶을 뿐이지.
<보노보노라서 다행이야> <곰돌이 푸...> 등. 어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동화적 에세이들이 연일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그런 류’의 책들이 잘 팔리는 만큼,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서는 위로받고 싶은 어른들이 많다는 것 아닐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마주 앉아 솔직한 위로를 주고받기에는 아직 용기가 부족한 것인지. ‘도망치고 싶은 이’ ‘보노보노가 되고 싶은 이’들이 모여 있는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책 가판대 앞에서 혼자 상념에 빠져드는 순간, 하나, 둘, 셋. 또 누군가 <보노보노..>를 집어 든다. 3초에 한 권씩 팔린다는 베스트셀러라지 아마. 또 하나 늘었다. 위로받고 싶은 영혼.
2018년 9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