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에세이
119 대원의 들것에 실려 들어온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행려였다.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는 얼룩진 검은색 티셔츠에 구겨 신은 신발, 소변 지린내가 나는 축축한 바지, 깎은 지 몇 주는 되어 보이는 하얀 수염, 엉겨 붙은 머리 행색을 한 그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악취가 시골 응급실을 가득 채웠다. 간호사와 나는 반사적으로 비닐장갑과 마스크를 주섬주섬 착용했다.
119 대원은 내 앞에서 태블릿 피시를 요리조리 만지더니 20분 전쯤 길에 쓰러진 채로 고함을 지르는 그를 지나가던 행인이 신고하여 데려왔다고 말했다. 신분증이나 핸드폰도 없어서 난감했는데, 모여든 사람 중 한 명이 환자를 알아보면서 신원 파악이 되었다고 했다. 연락이 닿은 보호자가 곧 이곳에 올 예정이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술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 주취자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과거 의무기록을 열어보았지만, 이 병원에 처음 내원했다는 의미를 지시하는 빈 화면만이 나를 반길 뿐이었다.
한숨을 크게 쉰 후 펜라이트와 신경 검진 망치를 챙겨 그에게 다가갔다. 마스크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악취 때문에 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간호사는 얼굴을 찡그린 채 환자 머리 쪽 창문을 활짝 열었고, 이내 봄바람이 불어 들어오며 냄새를 아주 조금 씻어갔다. 그는 나의 지시에 대한 협조를 못 하였기에 신경학적 검진을 모두 수행할 수 없었지만, 그나마 수행 가능한 신경학적 반사나 신체검진 상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뇌출혈이나 뇌졸중 같지는 않았다. 그는 허공을 응시하며 다소 뒤틀린 모양으로 누워있었다.
그때였다. 그가 손발을 휘저으며 소리를 지르고 침상을 벗어나려고 몸을 격렬하게 움직인 것은. 당황한 나와 간호사가 반사적으로 그를 팔다리를 붙잡고 침상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붙드는 것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그는 침대에서 낙상하여 다쳤을 것이 분명했다. 환자가 진정되자 뻑뻑한 침상 보호대를 올린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컴퓨터로 이동해 기본 수액과 혈액 및 영상 검사를 처방했다. 이후 가끔 정체불명의 고함을 지르며 허공을 휘젓는 노인은 조금씩 조용해지더니 이내 코를 골며 잠을 청하였다. 주말 점심시간 전부터 이런 환자가 오다니 조금 짜증이 났다.
잠시 뒤 나온 기본 혈액검사와 두부 컴퓨터 단층촬영 결과는 지극히 정상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추가로 내가 놓친 소견은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내가 다가가자 그는 잠에서 이내 깼는지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커튼을 치고, 간호사와 함께 그의 옷을 들추고 이곳저곳 살폈지만, 일상적으로 넘어지면 발생할 수 있는 팔꿈치와 무릎의 찰과상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드레싱 세트를 챙겨 와 단순 처치를 하면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아도 꿈을 꾸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무릎 찰과상을 드레싱을 한창 하고 있을 때 보호자가 시골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보호자를 보자, 나는 드레싱을 잠시 멈추고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세련된 연보라색 원피스와 브로치가 달린 검정 카디건을 걸치고, 과하지 않은 얼굴 화장과 단정한 머리를 한 노부인이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그리고서는 간호사에게 자신이 노인의 아내임을 밝으며 환자의 위치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살짝 당황해하는 간호사가 내 쪽을 가리키자, 그녀는 환자를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응급실 담당의임을 알리고, 그가 어떻게 이 응급실에 오게 되었는지, 검사 결과는 어떤지 설명하면서 드레싱을 마무리 지었다. 그녀는 그가 치매 환자라는 것, 그가 집을 뛰쳐나간 지 이틀이나 되어서 몹시 걱정 중이었다고 말하며 이내 그의 곁으로 다가가 귀에 무슨 말인가를 속삭인 뒤 그의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였다. 행려병자 행색인 그와 우아한 차림의 귀부인이 같이 있는 이 특이한 부조화를 응시하는 나는 적잖이 당황하였다.
자리에 돌아온 나에게 간호사가 다가오더니 저 광경이 뭔가 이상하다며 말을 걸었다. 나도 문득 느낌이 왔지만, 치매 노인에게 적절한 보호와 환경을 제공하지 않고 방임하는 양상의 노인 가정폭력 상황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 신고 여부를 나에게 묻는 간호사에게 조금 더 지켜보자고 하며 병력 청취를 더 하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갔다. 만약 조금이라도 앞뒤가 맞지 않거나 이상한 구석이 있다면 바로 경찰이나 관계 기관에 신고할 계획이었다. 내가 서서히 다가가자 노부인은 잡고 있던 노인의 손을 놓고 주섬주섬 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손수건을 적시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저 눈물에서 진심 어린 안도감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이내 그녀는 노인과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행려병자라고 여겼던 노인은 7년 전 우리나라 유명 대학교의 국문과 교수직에서 명예롭게 은퇴했다. 일제강점기 시대 한국문학에 정통했던 노인은 한글, 한문,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고, 날카로운 지성의 학자였다고 했다. 그는 자기의 아내에게 시와 여러 번 지어 바치고, 퇴근길에 꽃다발을 들고 들어가는 로맨티시스트, 그리고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는 은퇴 후 평소 동경하던 전원생활을 위해 고향으로 귀향하였지만 약 오 년 전 어느 날부터 그는 변하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사소한 일로 시비를 걸기도 하며, 분노와 질투를 폭발하는 등 감정의 기복이 심해졌다. 샤워 및 목욕, 양치 옷 갈아입기를 일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훌륭한 언어능력을 자랑하던 그가 말이 점점 어눌해지고, 단어에 대한 이해력이 급격히 떨어지자 이상하게 여긴 가족들이 그를 데리고 방문한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전두측두엽 치매라는 진단명을 받았다고 했다. 전두측두엽 치매는 급격한 인격의 변화 및 언어 기능의 저하가 특징인 치매로 현재 모든 그 종류의 병이 그렇듯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결국 증세가 악화되던 그는 이틀 전 집을 뛰쳐나갔다고 했다. 그녀가 그를 못 뛰쳐나가게 온몸으로 막으려 했지만, 이성을 잃은 그의 힘을 이길 수 없었고, 그를 수소문해서 찾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와 재회한 것이다.
혹여나 그가 다치거나 죽지는 않았을까 애태우고 있던 그녀는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좀 전의 의심을 말끔히 해소하고, 그녀가 애정이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그녀는 괜찮을지 궁금해졌다. 혹여나 정말 힘들면 여러 가지 도움이 되는 사회복지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으며, 보호자 본인도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하자, 그는 목소리를 낮춘 채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그녀와 그만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 비밀이란 본래의 그이로 돌아오는 시간이 한 달에 한두 번 있다는 것이었다. 짧은 한 시간 정도 그는 깨끗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항상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수차례 말해주며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잠깐의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지금은 멍한 그의 눈빛을 바라보며 아직도 저 속에는 그이가 살아있다며 자신이 힘이 닿는 때까지 그와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슬프고 걱정되는 것은 그 시간이 점점 간격이 길어지고 짧아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우수에 잠긴 눈으로 말을 잃은 채 그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노인이 배우자의 부축을 받고 집을 돌아간 후 시골 응급실의 오후는 나의 예상과 반대로 너무 평온하고 조용했다. 이 환자 이후 응급실에 내원하거나 병동에 누워있는 치매 환자들을 볼 때마다 이 육신 안에 한때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한 번 더 돌아보며 정성스럽게 살핀다. 기억과 이성을 잃어가는 치매라는 질환은 환자 본인에게나 그 가족에게나 너무나도 잔인하고 무서운 형벌이다. 나 자신도 의료진으로서 평균 나이가 점점 증가해가는 시대에 늘어나는 치매 환자들을 보면서 가끔 나 자신이나 가족이 이런 질환을 앓을까 걱정을 한다. 하지만 잠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남편과의 짧지만 행복한 순간들이 그녀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티고 살아 숨을 쉬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을 이제는 안다. 소중한 사람을 열렬히 사랑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것, 이 순간을 사는 것, 그리고 그 행복한 기억을 간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삶 이곳저곳에서 마주치는 고통의 순간들을 건너가는 근원적인 힘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