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카모 Aug 24. 2018

부디 행복하세요

병원 에세이

  작년 겨울인턴 의사 과정을 마무리할 즈음 한 달 동안 병원 영상의학과 동의서실에서 일한 적이 있다. CT, MRI, 기타 영상검사를 시행할 때에는 신체  구조물을  보이도록 조영제라는 물질을 혈관을 통해 주입하는데, 드물게  물질에 대한 과민반응을 보여 응급상황이 발생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유의사항  부작용을 의사가 설명하고동의를 받는다

  종양의 진단과 치료 경과재발 여부를 위해 영상검사는 필수적이기 때문에 수많은 환자들이 이 방으로 동의서를 받기 위해 몰려든다평균적으로 하루  100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똑같은 내용에 대한 동의를 받고, 이는 매우 지루한 작업이다본인 확인, 촬영부위 확인, 금식 여부 확인, 이전 촬영했을  부작용의 여부같이 먹는  확인유의사항 설명궁금한 점 질문, 그리고 서명이와 함께 이 방에서 나간 후 어디로 가는지 안내하는 것. 이 모든 것을 한 환자당 최대 2 내에 완료를 해야 한다특히아침 개시시간과 점심시간 직후 환자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다그리고 갑자기 환자가 몰렸다가도 한두 시간 동안 아무도 안 오고 대기하는 경우도 흔하다.

  항암 화학치료를 받으면서 종양이 악화되지도그렇다고 딱히 치유되지도 않아 십수 년째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신기한 유방암을 앓고 있는 할머니를 이곳에서 보았다담배를 수십 년간 피우다가 폐암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는 중년 아저씨도 왔었다나와 크게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젊은 여성분이 유방암이 의심되어 악몽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것도 보았다가장 마음 아팠던 경우는 예후가 매우 나쁜 골육종 진단을 받은 아이를 표정이 어두운 부모가 손잡고 들어오는 경우였다. 따라서  방에 앉아있었던 시간은 질병이라는 인생의 커다란 시련을 겪는 환자들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입구의 문지기가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 곳에 있으면 이전에 병동에서 뵈었던 환자들을 많이 마주친다. 병원에서 환자로 다시 마주친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 암의 전이나 재발악화를 의미하므로. 몹시 추웠던   오후에는    병동에서  중년 환자분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들어왔다. 

  “선생님 다시 뵈어서 정말 반가워요.” 그녀가 악수를 청하며 나에게 말했다

  항암 화학치료를 하고 백혈구 수치가 떨어져 격리병실에 오래 입원해 있던 그분을 내가 어떻게 잊을  있을까. 오랜 항암 화학치료로 혈관이  파괴되어서 아침마다 백혈구 수치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채혈하는 것이  힘들었었던 분이었다. 혈액이 충분히 나오지 않아서 여러  찔림을 당하는 것은 아픈 본인에게도 정말  고역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비닐 가운을 입고마스크를 쓰고 땀을 뻘뻘 흘리는 나에게 항상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던 분이었다.  나아가 마지막으로 뵌 이후  달이 지났지만   병원에서 인턴 의사라는 미미한 존재를 기억해준다는 것은 더욱 고마운 일이었다. 최소한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된 뿌듯함을 느끼게 해준다고 할까.

  그런데  달 전에는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웃으며 잡담을 나누던 분이 이번에는 금방 넘어갈 것처럼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분명 유방암이 흉막폐로 전이된 것이 악화되어 흉수가  오르기 때문일 것이다급격히 나빠진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는 나와 다르게 그녀는 오히려 평안해 보였다. 그녀는 고단한 삶이라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덤덤하게 넘기고 있었다. '호흡수가 높은 상태가 오래 유지되면 정말 참을  없는 불편함과 고통이 발생하기 때문에 모름지기 의사는 이를 간과하지 말고 최대한 편안하게 해주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의과대학에서 배운 것이 떠올랐다하지만 동의서 방의 일개 인턴 의사인 나는 그녀에게 해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동의서를 받는 내내 애써 웃으려고 했지만 말을 이어가는 그녀의 호흡이 가빠질수록 나의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동의서를 다 받고 환자분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날숨이 다하기 전 웃으면서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 부디 행복하세요.”

  나는 말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직감하는, 슬픈 눈을 가진 그녀의 남편이 서서히 휠체어를 밀어 그녀를 데리고 방을 나갔다. 

  이어진 환자들이 끊기고 나서야 나는 그 말이 나에게 남기는 그녀의 유언임을 깨닫고 그녀의 마지막 말을 되새겼다. 이제 그분과는 마주칠 일이 없을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도 소중하지 않은 인연은 없다. 덩그러니 놓인, 환자가 잠시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며 나는 오후 내내 생각에 잠겼다.

작가의 이전글 나이 서른, 글이 쓰고 싶어 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