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고 까만 아이

by 연두

초등학교 때 찍은 사진 속 내 모습은 시컴둥이. 누구를 닮아 그리 까맣냐고 물어보면 엄마의 대답은 한결같이 아버지로 점철된다. 엄마는 하얗고 아빠는 까맣고. 불만족스럽게도 내 바로아래 남동생은 흰둥이였다. 어린 꼬맹이 시절 하얗고 말간 피부를 가진 여자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어른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는가? 여자들은 피부가 하얀 것으로도 한 인물 한다고.

미경독사진.jpg


타고나기를 까맣게 태어난 것도 맞지만 결정적으로 까맣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나 어릴 때, 우리 부모님은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나를 본가로 떼어 보내셨단다. 엄마 아버지께선 빨리 집을 장만해야 된다는 목표의식으로 아이 둘 연년생을 함께 키우기 어려워, 시골 부모님 댁으로 딸아이인 나를 의탁하신 것. 덕분에 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시골들판을 마음껏 누리며 자랄 수 있었다.


내돌사진.jpg

시골 할아버지 댁에는 증조할머니와 친할머니, 고모 네 분과 삼촌 세분, 닭장 속에 닭들이 잔뜩 자라고 외양간엔 송아지와 암소들이, 돼지우리엔 꿀꿀돼지 서너 마리가 있었고, 넓고 넓은 대청마루엔 꼬맹이 내가 타고 놀 수 있는 커다란 개들과, 만만한 고양이들이 두어 마리 함께 있었지만 어린아이는 나 하나밖에 없었다.


덕분에 그곳에선 남동생 아우를 보았다는 찬밥신세가 아닌, 귀한 공주대접을 받는 유아독존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여름이면 뒷산 묘지에 올라가 봉분에서 미끄럼을 타고 놀다, 어스름 저녁이 되면 우물가에 고모들을 쫓아가 낮에 잡아둔 개구리 뒷다리를 손질해 구워 먹으며 목욕을 하고, 마당에 피워놓은 모깃불 옆에 멍석을 깔아 두고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반짝이는 별 세례를 받으며 구수한 옛이야기에 빠져들기도 했었다.


가을이면 밤나무에 올라가 나무를 털어 밤을 줍는다고 대롱대롱 매달리기도 하고, 조왕신에게 고사를 지낸 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시루떡을 조금씩 뜯어먹으며 집집이 돌리는 재미는 또 왜 그리 쏠쏠하던지. 겨울이면 삼촌들이 만들어 주신 썰매를 타느라 손이 터져 벌겋게 성이 나면, 할머니는 부엌으로 나를 데리고 가셔서 따뜻한 여물통에 손을 담가 수세미로 박박 밀어주셨다. 아프면서도 간지럽기도 하고, 누런 콧물을 쏟으면서도 밖을 싸돌아다니는 재미를 포기할 수 없었다.


동생과 나 흑백.jpg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유아기적 그 시간을 기억하는 건, 아마도 대 가족 틈바구니에서 유일한 꼬맹이로 사랑받았던 특별한 시간들이 유독 인상적이었던 까닭인 것 같다. 남동생에게 엄마 아버지를 빼앗겼다는 아픔보다는 땅에 내려놓지 않고 업어서 나를 키워주셨다는 고모들의 증언을 취합해 볼 때, 나는 아마도 우리 집에서보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의 시간들을 누렸던 것 같다.


초등학교 입학 즈음이 되어, 겨우 서울로 상경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몇 년 동안 여러 식구에게 듬뿍 받은 사랑은 내가 자라면서, 비록 까맣긴 하지만 인정 많은 아이로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고 지금도 그 시간을 추억하면 그런 기분이 든다. 저녁노을이 지는 가을 어느 날, 가을걷이를 마친 들녘에 만들어 놓은 볕집 더미 노적가리에 포옥 안겨있는 느낌.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담뿍 사랑을 쏟는다면 우리 아이들도 타인에게 사람을 베푸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