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요청을 하다보니 인터뷰이에게 강의요청을 받다!
국민가수이자 해밀학교 이사장을 맡고있는 인순이씨의 페이스북을 우연히 보게되었다.
예전부터 인터뷰를 하고 싶었던 인터뷰이 중 한명이였지만 기회가 오지않아 요청 조차 하지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페이스북을 보자마자 댓글과 페이스북 메세지로 인터뷰 요청을 보냈다.
하지만 처음에는 답변이 과연올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몇 시간 뒤 답변이 왔다.
답변내용은
ㅎㅎ 좋아요^^ 조건부로...
내가 인터뷰하면 울 학교에서
홍천 고등학생대상으로 토크 콘서트를 하는데 강의해줄 수 있어요?라는 답변이였다.
당연히 나로서 강연요청에 바로 당연하죠! 라고 답을 하였다.
하지만 강연일이 시험전날이여서 고민도 하였지만 기회는 주어질 때 잡자는 생각이 들어 강연을 하게되었다.
하지만 또 한번의 고민을 하게되었는데 그 고민은 차편에 대한 고민이였다.
강원도 홍천이다보니 차편이 별로 없다는 점이였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포디수리과학창의연구소의 박호걸 소장께서 함께 동행을 해주어 무사히 홍천 해밀학교로 갈수 있었다.
해밀학교에 가보니 기존에 알고있던 학교와는 전혀 달랐다.
학생들 모두가 행복해하는 모습과 인순이 이사장님의 기운 넘치는 모습 덕분에 나마저도 너무 행복했다.
토크쇼를 하기위해 강연장에 들어서자 학생들의 박수와 함성소리가 울려퍼졌다.
또한, 토크콘서트가 무사히 끝나고 학생들의 반응역시 너무 좋았다.
강연이 끝나고 한 학생이 찾아와 "다음에 또 오면 안되요?"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라는 말을 들어 나역시도 힘이 나고 뿌듯했다.
또한, 강연이 끝난 후 강연을 들으러 왔던 학생들에게서 즐거웠다며 연락이 왔고
두명의 학생들은 서울에 오는 등 함께 만나 대화를 나누고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인순이에게 묻고 인순이가 답하다!
Q. 가수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저는 가수를 꿈꾸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우리 집안에서 일할 수 있는 청년이 제가 되는 바람에 사실은 돈을 벌기 위해 나왔어요. 그래서 저의 목적은 가족 부양을 위해서 가수가 된 케이스입니다.
Q. 다른 직업들도 많이 있는데 왜 가수였나요?
A.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였는데요. 사실은 저는 맨 처음에 수녀님이 되고 싶었어요.
수녀님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바깥에서 활동을 안 하고 수녀원 안에서만 있으면 '사람들이 날 쳐다보지 않겠다'라는 생각으로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돈을 못 번 대요. 그래서 수녀는 포기했고 그다음에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는데 그건 되지 못하고, 그런데 어떤 사람이 '노래를 하겠냐?'고 해서 '돈 주냐'고 물었더니 돈을 준다고 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했기 때문에 노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호호^0^
Q. 지금 인순이씨가 가수이자 해밀학교 이사장이기도 한데 해밀학교를 설립하게 된 계기와 해밀학교는 어떠한 학교인가요?
A. 저는 태어난 배경, 자라난 환경 모든 걸 볼 때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게 기적같이 느껴져요. 물론 이 해밀학교를 생각한 지 10년 정도 되었지만 10년 전에 이미 제가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기적 같다'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 받은 사랑을 돌려줘야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돌려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저의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양로원을 해야겠다. 어르신들을 모셔야겠다. 내가 품에서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그렇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나 봐요. 그래서 매년 5월만 되면 '아! 어르신을 모셔야지' 또 12월이 되면 '아이들을 키워야지'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가 2010년도쯤에 라디오 생방송에서 다문화 아이들 고등학교 졸업률이 28%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아!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인가?'라는 생각을 했죠.
그러면서 '왜 내가 해야 될 일인가? 왜?'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죠. 이유가 있고 설득이 돼야 하잖아요. 근데 '내가 그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가 이유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학교를 설립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다문화만 하는 학교를 생각했었는데 '이건 옳지 않다', '다문화만 모아둔다면 또 다른 우리만의 세상에 갇혀 살 수 있다'라는 생각에 저소득층 아이들이라든지, 조손가정 아이들이라든지 그냥 보통의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져서 서로 상호 간에 이해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해밀학교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Q. 해밀학교가 중학교로 알고 있는데 왜 초등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이 아닌 가장 힘들다는 중학교를 선택하게 됐나요?
A. 사실은 중·고등학교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무상으로 키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거 같았어요. 그래서 고등학교는 조금 더 자리를 잡고 난 다음에 그때 다시 할거고요, 중학교는 제가 사춘기를 수십 년 동안 경험을 했습니다.
왜냐면 풀리지 않은 답에 대한 갈증, 우리 엄마는 왜? 우리 아빠는 왜? 나를 이렇게 틀린 데서 낳아서 이렇게 힘들게 살도록 만들었나? 이건 돌아갈 수 없는 답이잖아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죠. 이미 벌어진 일이고 그런데 그걸 가지고 원망하면서 수십 년을 살았거든요.
아마도 다문화 아이들도 '나는 한국 사람인가', '나는 어디사람인가'라는 정체성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할거예요.
그래서 그 사춘기 때 제가 옆에서 같이 걸어주고 싶었던 거죠. 나는 이런 삶을 살았고 이런 일에 부딪혔을 때 또는 누군가가 나를 놀렸을 때, 난 이렇게 참아냈지 난 이렇게 싸웠지 난 그렇게 했어라고 그래서 아이들이 얘기할 때 '얘들아! 그 얘기 듣고는 싸웠어야지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야'라고 해주던지 '그 얘기는 그냥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라', 아니면 '너 그 얘기 듣고 가만히 있을래? 네가 성공을 해서 뭔가 보여줘야지'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내가 경험했던 얘기를 해주고 아이들 옆에 있어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삶 모두에게 힘들지 하지만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단다. 네가 열심히 사는 만큼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많을거야 라는 얘기도.....
Q. 인순이씨가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A. 우리 딸을 낳았을 때가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고 제가 새로 태어난 것 같았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사실 사는 것이 너무 치열했어요. 그래서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일만 하면서 살았는데 아이를 낳고 난 다음에는 꽃을 보더라도 '저 꽃이 저렇게 예쁜 색이었나?' 하늘을 보면서 '오 하늘이 파랗네!' 그리고 '구름이 하얗다'는 걸 아이를 낳고 난 다음에 실감 나게 알게 됐어요.
Q. 딸 세인 양을 낳고 키우면서 어느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으신 가요?
A. 세인이가 자라나는 모습에서 하나씩 뭔가를 터득해가는 장면을 볼 때, 맨 처음 뒤집을 때, 그다음에는 기었을 때, 그다음에는 걸었을 때, 그다음에는 엄마라고 불렀을 때, 이런 하나하나가 다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저 확실히 엄마 맞는거같죠? 딸 아이 얘기만 나오면 행복해하는 걸 느낄 수 있으시죠? 호호
Q. 가장 크게 넘어졌을 때와 그걸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A. 제 인생에서 가장 크게 넘어졌던 건 제가 자라면서 소소하게 겪는 일들이 저한테는 다 컸어요. 제가 다른 사람들과 달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저를 죽을 만큼 힘들게 만들었었어요. 그렇지만 끝까지 잘 살아낸 나의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지금은 세인이가 나를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입니다.
Q. 인순이씨가 가수이자 엄마이자 해밀학교 이사장이신데 가요계 대선배로서 가수를 꿈꾸는 학생 그리고 청년이 가장 중요시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우선 마음가짐인 거 같아요. 가수는 파라다이스가 아니에요. 가수가 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해야 하고 또 뭔가 TOP에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그걸 지키기 위해서는 올라갈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인생의 전부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인순이씨가 생각하시기에 가수와 가수생활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가수는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죠.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기 때문에 그만큼 내어주어야 하는 것 같아요. 유명인이 된다는 건 공인이 된다는 건 받고 또 내어주는 것도 있고 책임감도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Q. 인순이씨가 희망의 아이콘으로 불리고 있는데 희망의 아이콘이라고 불리게 된 계기와 불릴 때 어떠한 생각이 드시나요?
A. 희망의 아이콘으로 불리게 된 건 제가 아마 힘든 삶을 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긍정적으로 살아왔다는 것이 희망의 아이콘이라는 호칭이 불리게 된 것 같아요.
Q. 인순이씨가 생각하시기에 꿈과 희망, 인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저는 요즘 백두대간을 걷고 있어요. 거기에 가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인생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백두대간 지리산 종주를 하였습니다. 새벽 2시반 부터 18시간을 걷고 그 다음날 12시간을 걸었습니다. 노고단에서 갈 때 처음엔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었어요. 어느 정도 지나다 보니까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없어요. 우리가 발을 떼는 순간부터 우리는 끝까지 갈 수밖에 없는거였어요. 이게 인생인거 같아요. 중도에 내려오기 싫거든요. 중도에 내려오는 건 더 험한 길이에요.
발을 하나 떼었으면 저 높은 산을 넘을 수밖에 없듯이 인생도 그런거 같아요
힘들지만 끝까지 간다는 꿈과 아름다운 산,파란하늘,색색의 꽃을 보고 또 아름다운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겠지 라는 희망을 안고 사는거 같아요
Q. 인순이씨의 꿈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A.나의 목표는 아름다운 노래를 관객과 함께 부르는 것,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꿈은.... 어떻게 하면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로 나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학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학교를 통해서 나간 아이들이 마음의 근육을 잘 만들어서 어디에 가든지 많이 흔들리지 않도록, 완전히 흔들리지 않은 삶은 없겠지만 자기를 포기할 만큼 흔들리지 않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로 만들어내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Q. 최근 많은 학생이 학교공부로 인해 꿈을 잃고 대학이 꿈이 되어버린 시대 속에 살고 있는데 이러한 학생들을 보시면서 교육인의 한사람으로서 현재의 교육 문제와 앞으로의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대학만이 길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대학에서도 고급의 지식을 알 수도 있지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잘하는지를 알려주는 그런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Q. 최근 N포 세대 7포 세대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청년을 보시면 어떠한 생각이 드시나요?
A. 너무나 한 곳만 바라보니까 포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한 곳이 아니고 좌우로 뒤로 좀 봐준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많을 거로 생각하거든요.
결국 자리 하나를 놓고 많은 학생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어차피 거기는 한사람밖에 될 수 없습니다. 거기에 자신을 소진하지 마세요 그건 자기의 개성을 망가트리고 자기를 너무 일률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신 개개인들은 특별합니다. 우주에서 단 한 사람뿐입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 미래를 이끌어갈 수많은 학생 그리고 청년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산다는 건 재미있는 것 같아요.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다른 꿈을 또 꿀 수 있기 때문에 살 만하다는 거죠. 그리고 힘들다는 건 옛날도 있고 지금도 있고 다음도 있어요. 힘들 때 정말 이것이 힘든 것일까?라는 물음을 꼭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내일은 뭐가 생길지 궁금해 하면서 하나하나 헤쳐 나가는 것에 대한 성취감에 많은 점수를 주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가수이자 해밀학교 인순이 이사장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