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공부하면 모두 수능국어 만점 받을 수 있을까?
수능 국어 만점을 받으려면, 어떻게 공부하면 될까? 또 얼마나 많이 공부하면 될까?
나는 그 답을 안다. 나는 수능 국어 만점부터 3등급까지 다양한 성적대 학생들의 3년간 학습량을 직접 관찰해 왔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재학하는 3년 동안 나는 매주 한 번씩 그들을 만났다. 그들의 공부를 꾸준히 관찰할 수 있었고, 충분한 경험적 데이터를 쌓을 수 있었다.
비문학과 문학 지문을 매일 5개씩 3년 동안 공부한 학생은 1등급을 넘어서 수능국어 만점을 받을 수 있다.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려줘도 지문 한 개를 읽는 속도가 너무 느린 학생은 이렇게 공부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수능 만점의 공부량을 채웠어도 수능 만점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 이유를 무엇일까?
10명이 수능만점의 공부량을 채웠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10명 모두가 수능 국어 만점을 받을까? 나는 5년 전에는 ‘yes’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젠 ‘no’라고 답한다.
“대체 왜? 똑같은 량을 공부했는데, 누군 100점이고, 누군 2등급인가?”
수능만점의 공부량을 채웠는데도, 2등급을 받는 학생들이 있다.
나는 이 친구들 머릿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도대체 이 학생들이 공부할 때, 그들의 머릿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너무 궁금했다.
내가 경험했던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국어 성적 안 오르는 학생들과 공부하면 하는 대로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되는 학생들이다. 이 두 그룹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난 이 두 그룹에게 매주 같은 질문을 한다.
“지난 일주일 동안 공부하면서 생각했던 것, 혹은 느낀 것들을 얘기해줄래? 뭐든 좋으니 이야기 해보렴.”
이 질문은 지식과 관련된 질문이 아니다. 이 질문은 “자신의 학습 행위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관찰하고 분석한 결과물을 말해 보세요”이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두 그룹은 다르게 반응한다.
성장 잠재력이 낮은 학생은 어떻게 답할까? 잠재력이 높은 아이들보다 낮은 수준의 대답을 할 것 같은가? 아니다. 이런 아이들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성의 없어서? 아니다. 아주 한참을 머뭇거린다.
나는 매번 잔뜩 기대하고 답을 기다린다. 하지만 늘 항상 그들의 대답은 이렇다. “없는데요.”
공부하면서 자기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전보다 어떻게 얼마나 나아졌는지 파악을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읽지 못하다 보니, 느낀 점도 없다. 공부할 때 그냥 수동적으로 글을 따라 읽을 뿐이다.
‘이 친구는 아무리 공부해도. 이번 수능에서 100점을 맞기 힘들어. 심지어 수능 날 성적이 평소보다 더 안 나올 수도 있어’
머릿속에 이런 불길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반대로 적게 공부해도 성적이 팍팍 오르는 학생들은 자기가 공부하고 있는 대상, 즉 글을 능동적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자신이 읽고 있는 문장의 의미를 자신이 잘 알고 있는지 아닌지도 잘 알아차리면서 글을 읽는다.
또 이들은 자기가 이해한 것에 대한 성취를 평가한다. 공부하면서 이들은 늘 자기 자신의 한계에 부딪친다. 이 때 자신의 한계성에 좌절하거나 실망하기도 한다.
‘나는 내가 방금 읽은 것을 잘 모른다’
이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안다. 이들은 모르는 상태를 아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한다. 그러면서 최적의 공부법을 찾는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그들만의 희노애락이 생긴다. 학생들은 자신의 희노애락 스토리를 나와 공유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나를 만나면 이런 희노애락을 쏟아낸다.
일주일 뒤에 만나서 “네가 공부했던 것에 대한 그 어떤 얘기든 좋으니, 해보렴”라고 말했을 때, 이 학생들은 이번 주엔 저번주에 비해서 어땠고, 어디는 어렵고, 어디는 잘 안 되고, 이번에 뭐는 잘 되고, 어떤 걸 느꼈고, 어떤 걸 배웠고, 등등 할 말이 많다. 학업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자신의 실력을 상대적으로 비교한다.
이들에게 공부는 자신과의 대화 이다. 이 학생들은 공부하면 한만큼의 성적이 반드시 나온다.
내가 질문했을 때, 아무 말도 못 하는 학생으로 돌아가 보자.
“공부는 생각하는 거야? 생각하지 않고 공부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
나는 자주 잔소리한다.
“생각하면서 공부하는 게 뭐죠? 도대체 어떻게?“
나 같은 경우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 글을 읽는다. ‘어떻게 해야 이 학생이 생각을 많이 하도록 유도하지?’ 이런건 저절로 되는 거라고 생각하다 보니, 이 방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고민하다가 이런 식으로 한번 설명을 해보았다.
학생 앞에서 내가 소리내서 한 줄을 읽고,
“이 한 줄을 읽고, 나는 이렇게 해.”라고 말했다.
한 줄에 대한 나의 해석을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의문점, 내가 생각한 행간의 의미, 이 한 줄이 그 앞의 한 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등등의 것들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면 이 친구는 또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그렇게 많이 생각하면서 읽으면, 너무 오래 걸려요.”
사실 내가 이걸 말로 해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말로 안 하고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면 빠르단다.”
생각이 글 읽는 속도를 지연시키지 않는다.
수동적으로 글을 읽는 학생에게 글을 잘 읽도록 가르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네가 공부하면서 생각한 것이나 느낀 점을 이야기해 보렴”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은 사소한 경험이든 의미 있는 경험이든 겪고 나면 집에 돌아와 그 경험을 다시 되돌아본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차분히 정리하면서 자신을 탐구한다. 자신의 생각을 읽는 것, 이것이 메타인지이다. 이런 학생은 공부할 때도 일상 생활에서도 늘 자신을 읽는다. 메타인지가 잘 되는 고등학생은 공부도 잘 할 뿐만 아니라, 생활기록부 기재용 탐구 활동 보고 내용을 제출 할 때, 자신의 생각과 성취를 잘 표현해낸다.
하지만 메타인지가 잘 안되는 수능 만점을 받거나 일등급이 될 수 있을까?
같은 공부량과 공부법으로 공부했어도 어떤 학생은 수능 국어 만점을 맞지만 어떤 학생은 2등급 3등급밖에 받지 못한다.
‘공부를 잘 하려면 사람 자체가 바뀌어야 돼’
‘학생이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들자’
사람이 바뀌는 학습법으로 공부해야 공부시간과 비례해서 성적이 오른다.
'생각을 많이 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국어 방법은 뭐가 있을까? '
많은 고민 끝에, 나는 네 가지 방법을 찾았다.
첫째. 글을 읽을 때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할 것.
둘째. 한 문장과 그 뒤에 이어오는 문장의 이음과 연결성에 대해 생각할 것.
셋째, 단락의 주제를 뽑을 수 있을 것.
넷째, 단락의 주제를 뽑아서 단락의 주제들의 연결성을 고려하여전체 주제를 뽑는 것.
문장-> 문장 이음-> 단락 주제 -> 전체 주제 순으로 글을 분석하고 이해한다.
처음에는 이렇게 의도적으로 글을 분석하고 읽는 연습을 하면, 나중에 저절로 이렇게 읽게 것이다. 내가 이런 방법에 대해서 생각한 이유는 이렇게 가르쳐야만 아는 학생들도 있기 때문이다. 저절로 이렇게 읽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방법을 학생의 실력에 맞게 적용한다.
일단 처음에는 잘 읽든 못 읽든 많이 읽도록 한다.
기초 실력을 만들 때 반드시 단락의 주제를 쓰면서 글을 읽으라고 권한다. 자기가 생각한 단락의 주제이어야 한다. 설명지에 나온 단락의 주제를 그대로 쓰면 안된다.
단락의 주제들을 가지고 글의 짜임을 생각해보라고 한다. 그 다음 글의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한다.
이 작업을 잘 하려면 결국 한문장 한문장이 중요해진다. 어떤 문장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문장을 잘 읽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심지어 나중에 한단어 한단어가 중요해진다. 한단어만 잘못읽으면 문장이 의미조차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학생은 몰입하게 되고 집중력도 길러진다. 또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예민함과 꼼꼼함이 길러진다.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오랜 자기 훈련을 통해서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