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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예 Oct 30. 2022

N잡으로 살아남기

제 9 화


텅 빈 구인공고 사이트 목록


담양읍 통틀어 14개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


소설 쓰기는 잘 모르겠지만 문학을 향유하는 일은 여전히 즐겁다. 내 생각을 글로 적는 것도 재미있다. 하지만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내가 담양으로 돌아온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일자리 문제도 한몫했다. 물론 담양은 광주에 비하면 아르바이트 자리가 훨씬 적지만, 그만큼 청년 인구도 적어 오히려 일을 구할 확률 자체는 더 높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또 점점 군 자체에서 관광 쪽으로 많은 지원을 하며 여러 식당과 카페가 들어서다 보니 아르바이트 자리가 증가하는 추세였다. 그때는 그거면 되겠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생을 많이 구하는 시기는 봄~초가을까지. 관광객들이 많은 시기로 한정되어 있었다. 도시에선 아르바이트 생을 너무 짧은 타임으로만 구해서 자취할 때 생활비가 너무 부족했는데 담양은 완전 반대였다. 완전 직장처럼 다니는 사람만 구하는 것이었다. 식당 홀서빙을 직장처럼 다녀야 하다니, 카페 아르바이트를 로테이션으로 돌아야 하다니. 몸이 삯는 일이었다. (실제로 16개월의 아르바이트 후 건강이 많이 상했다.) 또 일반적인 식당, 카페 운영 시간에 맞춰 일을 하다 보니 출근이 10시~11시로 조금 늦고 퇴근 또한 일반적인 저녁 식사 시간 이후가 되어야 해서 내 생체리듬이 이상해져야 했다. 주말은 일하고 평일에 쉬어야 했다. 구인공고 사이트에는 늘 올라오는 아르바이트들만 올라왔고 높은 확률로 그런 곳은 문제가 있었다.



파이프 라인 만들기



나는 담양에서 오래도록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담양에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광주로 출퇴근하지 않고 온전히 담양에서 일자리를, 그것도 안정적인 수입원이 제공되는 일자리를 얻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공무원이 되거나, 내 가게를 차려서 단골을 확보하거나, 다른 업장들을 전전하며 영영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일밖엔 없었다.


어쨌든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거주지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작가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의 이야기고 지금 나에게 그건 너무 먼 훗날의 이야기와도 같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부업이나 재테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더불어 sns를 활용한 다양한 파이프 라인을 만드는 것에 특히나 주목하게 되었다.


6시 51분 회사 출근 완료


계약직이지만 지금은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동시에 작가가 되기 위해 글도 쓰고 있다. 훗날을 위해 sns도 열심히 관리하고 있다. 카카오 브런치도 시작해서 다방면으로 성과를 만들어보려고 하고 있다. 요즘 내 스케줄은, 1시간의 거리를 버스로 달려 출근을 하고 열심히 업무를 한 다음 퇴근하고서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간다. 수업이 없는 날에는 블로그 체험단 활동을 하러 다닌다. 블로그 글 작성은 회사 점심시간이나 퇴근 이후 등. 짬을 내어 틈틈이 작성한다. 전공 소설은 남들보다 1시간 일찍 회사에 출근해서 쓴다. 졸려서 힘든 날엔 퇴근 후 남아서 쓸 때도 있다. 집에 돌아오면 방을 정돈하고 다음날 출근을 준비한 뒤 씻고 잠이 든다. 간간이 병원을 다닌다. 하루가 부족하고 또 계속되는 긴장에 불면증을 앓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열정 같은 것이 있다. 그건 영영 고향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과 관련이 있다.



나는 배, 담양은 항구


마을 회관의 풍경


졸지에 'N잡'이니 '갓생'이니 '미라클 모닝'이니 하는 부지런한 단어들이 나를 수식할 수 있는 말이 되었다. 담양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 하나를 포기하면 현재의 삶이 조금은 여유로워질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건 그것 하나이다. 나는 나고 자란 고향이 정말 좋다. 고향은 항구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서 언젠가 돌아올 나를 기다리는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담양은 관광지이고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시골집이 하나 부서지고 그 자리에 대형 신상 카페가 들어선다. 동네 노인들이 죽고 나간 허름한 집을, 자식들은 금방 팔아버린다. 이곳엔 낯선 사람들이 이사 오고 나는 동네에 모르는 얼굴이 하나 늘어난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갈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왕이면 그것이 어릴 적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 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냥 잠시 도시로의 산책을 나온 것일 뿐인데, 그러니까 담양은 그대로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이 내심 섭섭하다. 그래서 더더욱, 이 변화가 변화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담양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와 같이 변하면 괜찮을 것 같다. 공무원이 되지 않고, 자영업을 하지 않고, 서비스업에 종사하지 않고 담양에서 머무를 수 있게 되는 삶. 어쩌면 이것은 유년과 고향이 일치하고, 사회생활의 시작과 타향살이의 시기가 맞물리며, 스스로 과거로 도피하고자 하는 퇴행적 발상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 삶이 어딘가 목적지가 있는 외출이 아니라, 돌아올 곳이 있는 산책이길, 바란다.


10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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