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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큼삶 Aug 13. 2019

시작

“우리 스위스에서 살아보는 건 어떨까?”

“우리 스위스에서 살아보는 건 어떨까?”


퇴근 후에 곧 돌이 되는 첫 아이와 놀아주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길게는 아니더라도.. 한 2-3년 정도 생각하고 말이야.”


설마 이렇게 빨리 이런 종류의 결정을 내려야 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꿀 같은 육아 휴직 3개월을 한국에서 보내고 다시 돌아와 최근에 복직. 미국에서 석사 졸업 후, 커리어를 시작한 이래 첫 승진도 했고, 이제는 현재 팀과 프로젝트에 많이 익숙해져 있었고, 다른 팀과 프로젝트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도 많이 생긴 터였다. 자연스레 팀을 옮기기로 마음속으로 결정하였고, 관심 가는 몇몇 팀의 매니저들과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그중 한 팀은 스위스 지사에 터를 두고 있는 팀이었는데, 처음에는 팀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순전히 스위스라는 지리적 위치로 인한 관심이 대부분이었다. 이쪽 팀으로 옮기게 되면 스위스로 이사를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흥미로웠지만 프로젝트나 커리어 기회 면에서 크게 기대되는 팀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잠시 본사로 출장 나온 해당 팀의 매니저 L과 오프라인으로 만나 짧게 대화를 나눴는데, 프로젝트도 너무 괜찮아 보였고, 커리어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은 기회였다. 매니저 L도 능력 있고 좋은 매니저 같아 보였고, 30분의 짧은 미팅이었지만 서로의 핏이 꽤 잘 맞다고 느껴졌다. 매니저 L도 동일하게 느꼈는지 미팅을 시작한 지 10분 만에 바로 스위스 비자 프로세스 이야기로 주제를 옮겼다.


매니저 L: “그래서 스위스 비자를 신청하는 절차가 말이지.. 흠, 너 이 회사에 총 몇 년 있었지? 그 전의 경력은 얼마였고? 스위스 비자 신청할 때 일정 경력이 필요하거든.”


아주 좋은 신호였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주 진지하게 스위스로의 이주를 고려했던 건 아니었기에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기대를 크게 안 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프로젝트도 팀도 좋아 보였고, 좋은 기회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기회를 잡으려면 5년간의 미국 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아내와 곧 돌이 되는 어린 딸을 모두 모시고 스위스라는 미지의 나라로 이주를 해야 하는 터였다.


“음.. 난 좋아. 재밌을 것 같은데?”


저녁 준비를 하던 아내가 대답했다. 이렇게나 긍정적인 반응일 수 있다니. 하지만 아주 놀라운 반응은 아니었다. 육아 휴직 중인 작년 말부터 사실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내와 종종 대화를 나누곤 했다. 미국 내의 다른 주 / 다른 도시가 주된 고려 대상이었는데, 고려 대상 지역에는 유럽 국가도 있었다. 둘 다 더 나이 들고 아이가 크기 전에 완전히 다른 국가에서 살아보는 경험도 재밌을 것 같다는 것이 늘 우리 둘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결정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와 내 가족이 스위스에서 (잠시나마) 사는 게 과연 맞는 일인지 고민이 되었다. 한국에서 지내던 아내를 데리고 미국으로 온 게 거의 2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곧 돌이 되고, 이제 막 방 하나 더 있는 넓은 집으로 이사 와서 이제 정말 이 지역에 정착한 느낌이 들던 참이었다. 스위스는 살기 좋은 나라라고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미국에서 이제 막 정리된 안정적인 삶을 내려두고 다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기가 걱정이 되었다. 물론 직장은 지역만 바뀌고 그대로 유지되긴 하지만, 그래도 어린 딸과 아내와 함께 모든 생활의 환경을 바꾸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나도 재밌을 것 같긴 해. 스위스에 살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고. 생각했던 것보다 스위스에 있는 이 팀, 더 재밌고 괜찮을 것 같아. 근데 아직 결정난 건 하나도 없고, 이제 매니저 L이랑 더 이야기해보면서 결정 내려야 할 거야.”


맞다. 사실 결정난 건 아무것도 없긴 했다. 이제 막 이 팀의 매니저와 대화의 물꼬를 튼 상황뿐이었고, 매니저 L이 그래도 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나의 ‘감’과 나도 이 팀이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사실 딱 그 정도. 팀을 옮겨가는 프로세스와 최종 결정까지는 사실 갈길이 멀고 변수도 많다. 스위스로 이주한 다는 건 인생의 큰 결정이지만, 그리고 그 가능성이 이제 막 내 삶에 얼굴을 비추었지만,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매니저 L과 이 팀은 이제 나를 포함한 여러 새로운 영입 후보자들 중에서 최종 결정을 내려야 했고, 나는 나대로 마음의 결정, 스위스 팀과의 커뮤니케이션 진행 (최종적으로 나를 뽑게 만들기 위한), 후속 작업 (현재 팀과의 의견 및 계획 조율), 이주 준비 등이 남은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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