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산을 돌아, 새소리 처럼 돌아온 아버지

<같은 바다 부레없는 우리 -제3부 가족>

by 쌍둥이 아빠

아버지는, 가혹하리만치 성실한 분이셨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으니 부지런에 기대어 생존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정도가 좀 지나쳐, 어머니에게도 가혹한 성실함을 요구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참지 못하셨다. 건강이 좋지 않던 어머니에게 심하게 화를 내거나, 심지어 때리는 일도 있었다. 술도 많이 드셨다.


또 자존심이 굉장하셔서 누구에게든 지는 일을 무척 싫어하셨고, 거의 매일 밤늦게 쿵쿵쿵 들어오셨다.

이상한 일은, 우리 삼남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으셨다. 욕을 하거나 때리는 일도 없었고, 공부 잘하는 큰누나는 좀 어려워하기도 했다. 간혹 쩔쩔매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 삼남매는 시골에서는 좀 이례적으로 공부를 곧잘 해서 모두 인서울의 대학을 갔는데, 그걸 무척 자랑스러워하시고, 주변에 자랑도 많이 하셨다.


아버지는 주변 도시의 오일장을 돌며 야채를 파셨는데, 나중에는 트럭에 야채를 가득 싣고 다니시며 팔기도 하셨다. 아버지 연세가 쉰이 되셨을 무렵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셨는지, 어느 조그만 농촌 도시로 이사를 하고, 조그마한 슈퍼마켓을 얻어 생계를 이어가게 되셨다. 나는 그때 대학을 막 입학한 때라, 아버지 어머니가 그 조그마한 농촌 도시로 이사를 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작은 슈퍼마켓은 그동안 일해온 야채장사와는 많이 다른 일이었다. 파는 물건이 다양함은 물론, 물건들의 겉봉에는 영어가 많이 쓰여 있었다.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셨다. 세금 관계도 좀 어려웠다.


평생 장사에 잔뼈가 굵은 아버지로서는 슈퍼마켓 장사에 미숙한 본인의 모습에 충격도 받으셨고 무척 자존심도 상해하셨다. 사실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괴로우셨던 시절이었다.



철수의 사랑


철수는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다

간밤에 비명을 지르곤 하던 닭집 배씨도

하루만의 가출로 돌아온 아내 영희도

철수 자신도

이젠 시장을 떠야 할까?

망설이는 철수


지난여름은 신기하게도 장사가 잘돼

그간 갚지 못한 빚을 얼마간 갚을 수도 있었다

사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 수도 있었다


철수가 받은 전화는 어른의 목소리

그러나, 소주 다섯 병과 맥주 세 병을 마시고

잡혀간 여중생들 사이에

철수가 아는 어른은 없었다


어이없게 속은 철수는 울분

경찰서에 불려가 조서 쓰고 도장 찍고

벌금은 이백

여름에 번 돈 이백


아이들의 보호자는 오지 않고

보호자들은 교도소에 가출에 찾을 수 없고

부모 없이 자란 철수는 술잔에게 푸념하고


밤새도록 푸념하다

이를 물고 용서하고

아이들을 불러 모아

다시는 그러지 마라, 응? 그러지 마라, 응?

울먹이다 모두 울고

호리호리한 술집 주인 마산댁도 눈물을 찍고


더 이상 살 수 없는 시장에서

철수는 산다

죽어도 산다




영희의 가출


숨을 죽이고 머리가 터지기를 몇 번

그 뜨거운 것을 삼키기도 수십 번

어두운 방문을 넘는 영희는 부쩍 숨이 찼다


역광장에서 버스 종점까지 걷고 또 걷지만

쉬어갈 곳은 떠오르지 않았다

커다란 가방도 감추어지지 않았다


샛노란 해를 피해

그늘진 골목에 숨어들자

다시, 그 어두운 방문 앞


문지방을 넘으며, 넘지 말자, 문지방을 넘으며, 넘지 말자

결국 덜컹이는 가슴을 넘었다


욕설처럼 술컵이 깨졌다

작고 둥근 영희의 등 뒤에

맑게 조각난 유리 파편이 쏟아졌다


푸른 입술을 일렁이며 엎드린 영희에게

오백 년 삼켜온 그 뜨거운 것이

끝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