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저를 용서해 주세요

<같은 바다, 부레 없는 우리-제3부 가족>

by 쌍둥이 아빠

아버지는 어딘가 늘 불안해 보였다. 늘 고통스러운 술을 드셨다. 몇 날 며칠을 계속해서 술을 드시기도 했다. 아버지가 정신을 잃어 도저히 어머니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면 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집으로 달려가야 했다.


술에 취해 아무런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아버지는 간혹 그런 표정을 지으셨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어째서 지금 이렇게 밖에 못살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눈물이 고인 눈은 멀리 천정을 향해 있었다.


나는 늘 밤늦게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새벽 찬바람에 나를 깨워 장에 가시는 아버지를. 그 추운 장터에 손이 곱도록 야채를 팔라고 시키시던 아버지를. 내 소심한 짝사랑조차 늘 방해하는 아버지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아버지를.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조그만 슈퍼마켓 구들방에 병들어 누운, 이제 더 이상 원망할 수도 없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몸과 마음의 병은 점점 더 깊어졌다. 그리고 가족들의 미움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로 사라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날. 하얀 천에 덮인 아버지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하얀 천을 들추어 아버지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있었다. 장례를 치러야 했다.


굵은 팔뚝의 장터 아저씨들이 엎드려 울었고, 누군가는 황급히 음식을 장만하고, 누군가는 아버지가 누울 곳을 준비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울다 지친 어머니와 누나들이 무덤 앞에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했다. 너무 늦은 일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을 자지 않았지만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잠들지 않았다고 생각한 어느 날 아침. 다리를 만지는 거칠고 따스한 손길을 느꼈다. 아빠? 아빠! 하고 놀라 깨어보니 아버지는 없고 나는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


이미 출석해야 할 수업에 많이 늦은 시간이었다. 학교에 가는 것을 포기하자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살아가는 일이, 삶이,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 있는 삶이. 너무 힘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다. 매일 매일 단 한 순간이라도 아버지를 생각지 않은 날이 없었다. 미움과 원망도 웅덩이에 앙금이 가라앉듯 가슴 바닥에 가라앉고 있었다.


남은 것은 그저 애처로운 그리움뿐이었다.

그러니 이제. 아버지. 아빠. 아빠. 사랑해요. 미안해요.

이제 그만 저를 용서해 주세요.



나무


내 어릴 적 집 뒤안에는

언덕을 깎고 집을 지을 때 용케 살아남은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다

호랑이 할머니도 옛날부터 있었다는 오래된 나무

너무 높은 가지에 오른 아이들은

차례로 울며 아빠를 찾았고

아이들을 안아 올린 아버지들은

함지박만큼 웃으며 뒤안을 돌아나갔다

해 질 무렵이면 근방의 참새들이 몰려와

하루의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아카시아 꽃이 피는 시절엔

아이들과 개미와 왕벌들이 꽃을 나누어 먹었다

이사 갈 무렵 동네 어른들은

여기서 못 되어 나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아직 어린 나는

밤이 늦도록 나무에 올라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제사


간밤 산이 새도록 우는 소리

온산의 골짜기를 더듬다

빈산을 안고 되돌아온다


어린 소를 먹였다는 재를 지나

밭떼기를 했다는 두렁도 지나

건고추 가득했던 시장도 지나

신작로 나지막한 오봉집도 지나

이윽고 집 마루에 쿵쿵쿵 발소리를 내며


새소리처럼

빈산처럼

젊고 지친 아버지가 돌아온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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