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을 살아낸 정희
한때는 배움이 사치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가난은 학교보다 논밭으로 아이들을 내몰았고, 어린 손은 글씨 대신 흙과 땀에 익숙해졌다.
배움을 꿈꾸기보다 하루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더 급한 현실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교육의 기회를 뒤로한 채 생존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지금 우리가 교실에서 배움을 누릴 수 있는 건, 그 시절을 견딘 이들의 희생 덕분이다.
생존을 넘어 배움을 추구할 수 있는 지금, 그 가치에 감사해야 한다.
배움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생존은 더 본능적인 문제인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배움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더 시급했던 시절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희는 배움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항상 있었다.
배우고 싶었지만 그 시절 '여자가 배워서 뭐 하냐는' 시절이었다.
남자들만 배움을 끝까지 가질 수 있다는 아버지의 이상한 신념에 여자였던 언니들도 배움을
끝까지 할 수가 없었다.
다리까지 불편했던 정희는 좋은 직장에도 다닐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주간에는
미싱공장에 가고 밤에 야간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정희는 그것만이라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의무교육이 철저히 시행되지도 않았고, 학교가 있어도 갈 수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침이면 도시나 시골을 막론하고 어린아이들이 시장이나 논밭, 공장으로 나갔다.
교복 대신 낡은 작업복을 입고, 책가방 대신 지게나 바구니를 메었다.
"공부는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말은 당시 부모들 입에서 흔히 들리던 현실적인 충고였다.
집안 형편이 조금 나은 집의 맏이도 동생들 학비를 대기 위해 일찍 학교를 포기하곤 했다.
정희는 적은 월급으로 대학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희망을 품으면서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오빠들의 학비를 위해서 집에 돈을 조금씩이라도 보내야만 했다.
다리 불편한 걸 내 몸처럼 한 몸처럼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던 정희였는데, 학교도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는데 돈까지 부치라고 하니 뭔가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다.
정희는 공장생활을 적응하기도 많이 힘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공장에 온 아이들이 나 말고도 여럿 있었지만, 몸이 약했던 정희는 유난히 견디기가 힘들어
했을 뿐만 아니라 이 시절엔 어린 나이에 일터에 나가서 집안을 위해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으니 참고
또 참았다.
부모의 손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진 어린 어깨 위엔 책 보다 무거운 삶의 짐이 놓여있었다.
재봉틀을 돌리던 정희는 바늘에 찔리는 경우도 많아서 손가락에 상처가 가득했다.
정희는 분명 아이였지만, 세상은 정희에게 어른이기를 요구했다.
때로는 그저 학교 앞을 지나다니는 것조차 부러움이 되었고, 또래 친구들이 교실 안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를 너무 먼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절을 살아낸 정희는 삶의 무게를 통해 성장을 배웠고, 배움의 기회를 힘들게 가졌지만
세상이라는 학교에서 치열하게 살아남는 법을 익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