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손으로 하지 발로 한데요?!
유난히도 쾌청한 날씨였다. 정희는 혼자서 두 발로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힘든 시절을 겪은 정희는 그렇게도 바라던 대학입학은 하지 못했다.
집에선 노발대발 난리가 났고, 그 돈으로 시집이나 가라고 난리통이 난 것이다.
서러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매일 어두운 터널 속을 걷는 듯한 날들을 지나왔다.
하루하루 버텨야 했던 생계, 마음속에 쌓여간 무거운 침묵.
세상은 언제나 나에게 강해지라고 말했지만 정작 한 번도 "괜찮냐"고는 묻지 않았다.
때론 눈물로 흐려진 길을 더듬으며, 때론 누군가의 손을 빌려 다시 일어서며, 나는 그렇게 그 시대를 건넜다.
내가 이렇게 힘들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금 모은 돈으로 대학을 가고 싶다는데 이마저도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게 원통했다.
집안의 어려운 여러 가지 상황들이 나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이번엔 꼭 고집을 꺾고 내가 원하는 데로 하겠다고 우기고 또 우겼지만 '그럼 집에 영영 올 생각 말으라'는 무정한 엄마의 말 한마디가 더 서러웠는지 모른다.
나는 서러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몇 날 며칠을 울었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마음이 풀릴 때까지 울고 싶었다.
우는 것도 내 맘 데로 못하나라는 이상한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성격이 급하고 아들밖에 모르는 엄마, 아빠는 우는 것조차도 안쓰러워하거나 미안해하는 일 같은 건
절대 없었다.
나는 다 알고 있다. 그래서 더 큰소리를 내면서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고 울었다.
며칠을 그러니 언니들이 부모님을 설득하고 나를 위로해 주면서 밥을 억지로 먹게 하고 울음을 그치도록
해주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밥을 먹고 방 안에서 나왔다.
나는 그토록 바라던 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야간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력으로 일반 직장에 취업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앉아서 일하면 되는 경리일인데도 불구하고 나의 몸을 한번 훑어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몸이 불편해서 여기서는 일하기 힘들다고만 했다.
이런 과정을 몇 번 겪고 난 나는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면접을 봤던 곳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몸이 불편하면 뭐 아무것도 못한데요? 나 고등학교 내내 일등만 하고 뭐든 다 잘하는데 왜 자꾸 안 된다고만 한데요? 일을 손이랑 머리로 하지 다리로 한데요?"라고 말하며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나와버렸다.
속은 후련했지만 마음속으론 그래도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어서 부아가 치밀었다.
그렇게 큰소리까지 치고 나왔지만, 예상대로 그 마지막 회사에선 연락이 오질 않았다.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내 속도 모르고 하늘은 왜 이렇게 청명하고 오늘따라 푸르른지 날씨마저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엔 잠깐만 이라고 생각을 하고 방직공장에 다시 취업을 하였다.
정말 잠깐만 일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다짐하면서 재봉틀 앞에 앉았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할 길이 있다 해도, 지금까지 버텨온 그 시간이 나를 증명하는 거니까.
나는 누구보다 강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
이제는 말해주고 싶다.
정말 잘해왔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잘 해낼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