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 희
소녀였던 정희는 끝내 대학은 가지 못한다.
70년대에는 결혼을 일찍 했기 때문에 집에서는 다짜고짜 결혼을 하라고 난리였다.
어린 나이에 오빠들 학교 등록금을 다 내어주고, 낮엔 방직공장에서 미싱을 돌리고,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며 글을 읽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조용한 성격인 나는 모든 게 힘들었다.
어머니는 "여자는 시집가서 편히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선을 보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강한 권유로 '선'을 보게 되고, 남편이 될 사람은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은행원이었다.
"은행 다닌단다. 말수도 적고 착하다더라."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오래 보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에 있던 한 문장을 눌러 삼켰다.
'이 사람과 살게 될까, 아니면 지금처럼 살게 될까, '
그 선택의 끝은 결혼이었다. 낯선 집, 낯선 침대. 낯선 식구들.
안정된 직장과 성실한 성품이 장점이지만, 사랑 없는 결혼은 나에게 또 다른 감옥이 되었다,
결혼 후 곧바로 임신, 시댁에서는 '착한 며느리', '좋은 엄마'가 되기를 기대하면서도, 꼭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강조를 하셨다. 그 소리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첫째는 딸이었고 시댁에서 친절하셨던 시어머니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시면서 둘째는 아들을 꼭 낳아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점차 자아가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의 이름이 '정희'였음을 잊고 '누구 엄마'로만 불리는 현실이 어색하고 나를 잃는 것 같아 맘이 편치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꾸 둘째를 재촉하셨다. 하지만 둘째도 역시 딸이었다.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 병원 복도 끝에 서있던 시어머니의 얼굴은 아무 표정도 없었다. 남편은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였고, 그것으로 내가 받을 수 있는 환영의 말은 끝이었다. 축하도 없었고, 미역국도 없이 나는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시댁 식구들은 대놓고 말했다.
"셋째는 꼭 아들 낳아야 해. 남편 외아들이잖니."
"요즘은 의사도 미리 알 수 있다더라. 병원 잘 알아봐."
그 말들은 마치 바늘처럼 그녀의 마음을 쑤쎠되는 듯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고 딸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
밤이면 혼자 방 안에서 아이 둘을 재우고는, 들릴까 봐 손으로 입을 막고 울었다.
"내가 낳은 이 아이들이 왜 이토록 미안해야 할까...."
하루는 시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다가 툭 던지듯 말했다.
"이 집안에 아들이 없으니 되는 일도 없고 기운이 없어."
나는 주방에 서서, 한쪽 팔로 둘째를 안고 국을 끓이며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김이 솟는 냄비 안으로 순간 눈물이 떨어졌다.
그게 국물인지, 눈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세상의 칭찬을 받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집에서 나는 실패한 여자다.
왜냐하면 딸을 낳았으니까.
사람들은 아들을 낳는 여자가 대단하단다.
딸 둘을 낳은 나는 조용히 살아야 한단다. 그러면 나는, 나는 도대체 뭘 위해 여태껏 살아왔던 걸까..."
라고 쓰여있는 일기장을 꺼내 보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래도 나는 가족을 위해, 시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남편의 무관심 앞에서도 묵묵히 식탁을 차리며, 아이들에게만큼은 세상의 따뜻한 온기를 건네주고 싶었다.
니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움받기보다는 나 자신을 찾아가기 위해 우리 딸들의 자랑스러운 엄마로 살기 위해 결정을 내렸다.
그러곤 그날 밤 정희는 작은 노트를 사 와서 오랜만에 나는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이. 정. 희
그 이름은 남편의 아내도, 누구의 며느리도, 두 딸의 엄마도 아닌, 오직 그녀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