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었어요

by 라라


내 아이라면 정말 끔찍이 여기고 쪽쪽 빨아대며 엄청난 모성애가 발산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난 정말 무심한 엄마였다.

힘들 때가 너무너무 많아서 솔직히 아이가 그렇게 까지 이쁜 줄 모르고 키웠다.

아이는 날 닮아서 너무 울었다. 울어도 너무 심하게 울었다.

백일동안 밤낮이 바뀌어 낮에는 주야장천 자더니 밤에는 뜬눈으로 날을 센다.

그냥 세면 예쁘기라도 하지..

새벽 내내 울어재낀 다.

이유도 모르겠고, 열도 없고, 안아줘도 엎어줘도 우는 너를 어떻게 하면 좋으니..

나도 울고, 참다못한 나는 널 침대에 내던져버린 적도 있었다.



너무 미웠다.

우리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나도 엄청 울었다는데...

내가 울 때마다 엄마는 아빠가 소리를 질러서 나를 엎고 밖으로 나왔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시댁에 가서 울면 내가 더 미움을 받을까 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있던 나를 항상 엎고 계셨다고 했다.

할머니가 하는 잔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다고 하셨다.


나도 할머니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엄마가 충분히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시댁도 마찬가지였다.

애가 어른들을 딸리진 않고 계속 울기만 하니 이쁨을 받은 기억도 없고, 애가 누굴 닮아서 이렇게

울어대는 거니 좋지 않은 소리만 하셨다.




우리 아이는 차만 타도 계속 울었다.

우리가 살던 곳은 서울이었고 친정과 시댁은 전주였는데 고속도로에서 휴게소마다 쉬던 기억이 난다.

그땐 애가 예민해서 우나 보다고만 생각했는데 차에서 토를 여러 번 하고, 애가 크고 나서야 차만 타면

멀미를 하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차만 타면 울던 게 아이가 멀미를 해서 그랬던 거는구나라고 생각하니 괜히 미안했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다 보니 모르는 거 투성이에 아이가 우는 이유를 찾으려고 엄청 노력했던 거 같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백일이 지나면 기적처럼 밤낮이 돌아오고 울음이 그친다고 했었는데 우리에겐 완변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는 여전히 밤마다 새벽마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악을 쓰고 울었다.

병원에 데려갔는데 '야경증'이라고만 하고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하셨다.

나중에 친척언니의 아들이 우리 아들만 할 때 탈장 때문에 주기적으로 정확한 시간에 울어서 병원에 데려간 적이 있다는 소리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비뇨기과를 갔는데 잠복고환인 거 같긴 한데 정확하지 않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진료의뢰서라도 써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어렵고 입을 떼고 서울 삼성병원으로 예약을 잡고 갔다.

그곳에선 교수님이 우리 아이의 상태를 보시더니 바로 '잠복고환과 탈장'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밤마다 심하게 울지 않았냐고 물어보시는데 백일 때부터 그렇게 밤마다 울었어요.라고 말을 하니, "초보 엄마 아빠니까 모를 수도 있죠.. 근데 애가 고생을 많이 했겠네."그 소릴 들으니 그동안 아이에게 했던 모진 말들이 너무 미안해서 눈앞에 눈물을 가렸다.




왜 닮을 게 없어서 이런 걸 닮니, 누굴 닮아서 예민한 거니, 별의별소리를 다 듣게 한 우리 아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한참을 울었다.

입원 수술을 해야 하는데 우리 아이는 입원이 불가능했다.

어차피 밤새 잠을 못 자고 울기만 하니 다음날 되면 컨디션이 안 좋고, 감기도 걸리곤 해서 다시 날짜를 잡아

세 번 정도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교수님은 안 되겠다 싶으셨는지 입원해서 하면 보험 때문에 배려차원에서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아이가 도와주질 않으니 새벽 5시까지 와서 첫 수술하고 통원수술하는 걸로 하자고 말씀하셨다.

우린 알겠다고 하고 감사하다는 소리를 연신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데리고 돌아왔다.

우린 모두 탈진 상태가 되어 그래도 원인을 찾아내서 다행이다라고 말하면서 부둥켜 안고 그동안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서 서로 위로를 해주었다.

하지만 아직은 수술이 남은 우리 아들이 있기에 안심하기엔 일렀다.





다행히 새벽 5시에 도착을 해서 아침 9시쯤 수술이 끝이 났다.

가래를 스스로 뺄 수없으니 등을 계속 두드려 주라고 했다.

폐에 가래가 안 빠지면 폐렴에 걸릴 수 있다는 무서운 말을 듣고 등을 계속 두드려 줬다.

아이는 며칠간 고생했지만, 그래도 어느새 성장을 하였는지 예전보다는 많이 울지 않고 칭얼거리지 않아서 살 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좋은 엄마 흉내를 낸다.

사랑이라는 말 대신 책임을 입에 물고, 따뜻함 대신 조용한 인내로 하루를 넘긴다.

모성애는 없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아이를 지키고 싶어서.

그게 나에게 가능한 최선이니까.


난 모성애가 없는 게 분명하다.

우리 엄마도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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