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고단한 삶을 너무 늦게 알아채서'
아들, 아들, 아들....
아들이 뭐라고!!!!
이 소리 정말 지겹게 들으면서 컸다.
우리 엄마는 아들이 귀한 집안에 결혼을 하셨는데 딸만 둘을 낳으셨다.
아들을 꼭 낳아야 한다는 시댁 어른들과 아무 말도 못 해주는 남편 때문에 여러 번의 여아 중절수술을 받아야만 했다고 하셨다. 그 시대만 해도 그게 허용이 되는 시대였다고 한다.
그렇게 몸이 약해지신 엄마는 하혈을 자주 하시는 바람에 건강이 많이 악화되셨다.
그때 엄마의 나이 20대 중, 후반이셨다.
20대의 나이에 몸이 그리 망가지신 것이다.
딸만 낳았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엄마는 서럽다 못해 사람 취급도 잘 못 받았다고 한다.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허리가 아파서 복대를 차고 있는 엄마에게 아침을 차리라고 하시고, 찬물로 설거지까지 시키셨다고 한다. 왜 그 당시엔 꼭 시집살이를 시키고 고생스럽게 했는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가끔 엄마가 주방에서 우는 모습을 가끔 목격하기도 했다.
뒷모습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 울음은 자기 잘못도 아닌 일을 평생 짊어지고 가는 여자들의, 그 억울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어릴 때 엄마가 답답했다.
왜 저렇게 시어머니 눈치만 보고, 왜 저렇게 아빠한테는 아무 말도 못 하나 하고
엄마가 너무 아파서 친정에 가고 싶다고 하니 아빠가 엄마를 친정에 데려다주셨는데,
그날 저녁 아빠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꾸지람을 잔뜩 들으시고는 엄마를 다시 그 저녁에 시댁으로 데리고
가야만 했다고 한다. 그때 친할아버지의 성격은 옛날사람처럼 상을 엎고, 내 말이 곧 법이다. 아들이 최고다.
딸은 낳아봐야 필요 없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셨다.
나는 엄마가 어릴 때부터 항상 아프셔서 누워만 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컸다.
지금은 두통으로도 고생을 하고 계신다. 여러 병원을 다니셨지만 아무런 원인은 없다고만 하니 더
답답할 뿐이다
나는 아빠에게 말한다. 그때 하혈을 그렇게 많이 하고 많이 아파서 관리를 제대로 안 해줘서 그런 거라고...
그런데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쯤 엄마의 배가 점점 불러오는 게 아닌가!
어느 날 이모네 집 앞마당에서 엄마를 데리고 굿을 하고 있었다. 난 무서워서 안에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엄마가 아들을 가졌는데 무사히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굿을 하는 것이란다.
나~~ 참... 그땐 정말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들이 뭐길래 아들 때문에 굿을 하고 난리인지.
그때 당시만 해도 친할아버지도 돌아가셨을 때였다.
나는 굳이 친할아버지도 돌아가셨는데 뭣하러 무리를 하냐고 난 창피했는지 어디 가서 임신했다는 소리 하지 말라고 엄마에게 모진 말을 뱄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몸이 너무 약해 하혈도 심해지고, 그 당시엔 노산이라고 하였지만 지금생각해 보면 나이가 34세밖에 되질 않았다. 그런데 위험한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대학병원에서 자궁적출술을 받고 엄마는 나랑 14살 차이나 나는 남동생을 출산하였다. 엄마는 다행히 건강하였고, 엄마 아빠가 그리도 원하던 아들도 건강하였다.
창피하다고 했던 나는 어디로 가고 조그마한 손이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아이를 하나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우리 남동생이 그랬다.
옆집 이모에 누나 네 명에 할머니까지 엄마 아빠까지 남동생은 여기저기 돌아가며 육아를 봐준 덕분에 수월하고 어렵지 않게 키운 걸로 기억이 난다.
하지만 엄마는 30대의 나이에 폐경이 되셨고, 그 뒤로 여러 가지 질환이 많이 생기시고 몸은 약해질 때로
약해지신 상태였다. 아빠는 엄마를 여기저기 한의원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한약을 해주시곤 했다.
아빠의 정성 덕분인지 어느 정도 조금씩 호전이 되긴 하였지만 여전히 아프다고 하신다.
난 궁금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다 돌아가셨는데 아들을 꼭 낳은 이유가 뭐냐고!!
엄마는 그냥 한이 맺혀서 애를 낳아서 친할아버지 무덤에 가서 얘기하고 싶으셨다고 하셨다.
얼마나 맺힌 게 많으시면 그러셨을까 싶다가도 몸이 너무 상한 엄마를 보고 있으니 속도 상하고 화도 났다.
하지만 엄마에게 원망하는 소리를 가끔 했던 나는 내가 아이를 낳아서 키워보니 정작 내가 더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보려고 노력을 해보았다.
그 고단한 삶을 너무 늦게 알아채서.
그 눈물을 아이의 눈으로만 봐서. 미안하다고.
나는 이제 안다.
그 시절,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여자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만든 건 사람이 아니라 시대였다는 걸.
그리고 그 시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낸 우리 엄마가.
누구보다 강한 여자였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