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의 작은 한숨
나의 첫 번째 월급.
난 한 푼도 사용해 보지 못하고 엄마에게로 오빠에게로 가버렸다.
난 다짐을 했다.
두 번째 월급부터는 내가 꼭 사수를 할 것이라고.....
첫 월급이라는 단어부터 날 설레게 했었다.
보통 첫 월급을 받으면 엄마아빠에게 내복을 사드린다고 들었다.
나도 미숙이처럼 내복을 사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이건 그냥 갈취였다. 그냥 달라는데 정말 화가 났다.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부모는 지금까지 내가 키워준 게 있는데 그 정도도 못 받냐면서 오히려 나를 타박하셨던 분이다.
중학교부터 방직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야간에는 학교에 다니곤 했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사고 싶은 게 있어도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참았다.
고등학교도 가고 대학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정희야, 이번 달에 월급 받지 않았어?"하고...
난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하도 다그치는 바람에 "받았어"라고 말을 하곤 오빠 등록비 내야 한다며 돈을 부치라는 엄마의 말에 '그걸 왜 내가 내야 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정희는 조심스레 봉투를 손에 쥔 채, 잠시 마당에 멈춰 섰다. 손끝에 닿는 따끈한 온기가 꼭 자신의 수고와
눈물 같아,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서있었지. 그 안에는 방직공장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기계를 돌리고,
섬유 냄새에 눈이 맵던 나날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땀에 젖은 작업복을 입고, 퇴근하자마자 야간학교로 가던 시간들, 그렇게 모은 첫 월급이었다.
'나도 학교 다니고 있어요. 나도 공부하고 싶어요.'
그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입밖으로는 나올 수 없었다.
내뱉는 순간, 엄마 눈빛이 더 서늘해질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정희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봉투를 조심스레 엄마에게 내밀었다.
엄마는 무심하게 봉투를 받아 들고, 곧장 부엌 찬장 안에 넣어버렸다. 아무 말도 없었다.
칭찬도,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도.
난 500원을 빼놨었는데 엄마는 그걸 어찌 알고서는 그 돈마저 가져가 버렸다.
엄마가 너무 밉고 오빠도 너무 미웠다.
내 손은 성 할 날이 없는데 괜찮다, 수고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그냥 당연하게 생각하니 더
속이 상했다.
마음이 여린 정희는 터덜터덜 방직공장기숙사로 돌아왔다.
같이 방을 쓰는 미숙이는 첫 월급으로 엄마아빠 빨간 내복을 사드리고, 본인 양말도 사고, 먹고 싶은 과자도
사 먹고 있었다. 너무 부러웠지만 조용히 눈물만 삼키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정희는 혼자 이불을 덮고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처음 받아 본 월급이었지만. 그것이 내 손에서 떠나는 데는 단 3분이면 충분했다.
쓴 적도 없고, 사고 싶은 것도 없었지만-
그저 내가 벌어들인 돈을, 내 마음대로 못 써봤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서러웠다.
그 서러움은 눈물로 바뀌어 이불속을 적셨다.
아무도 몰랐다.
정희의 눈물이 왜 그리 조용했는지를.
하지만 정희는 알고 있었다.
이 눈물은 언젠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될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