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결과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창작의 위기는 찾아온다.
나는 창작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정도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고와 뼈를 깍는 고통을 겪었을지 느껴질 때가 있다.
글을 쓰기 위해 소재를 찾고 주제를 정하고 내용을 정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글을 쓰는 흉내만 내는 것은 아닌지, 창작이 아닌 모방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할 때가 많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고,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흔히들 예술가들은 창작의 고통이 제일 힘들다고 한다..
나 또한 수차례의 창작의 위기를 경험해왔다.
처음에는 이를 극복하지 못할까 두려웠고, 무엇보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 느껴졌다.
신선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고, 단어를 고르기조차 힘들어지면서, 글을 쓰는 흥미를 잃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생길 때도 있다.
나는 이 위기가 단순히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많은 작가들이 탄생하기까지 겪은 시련과고통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창작의 위기는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 속에서 발견하는 것들은 작가로서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걸 알았다.
나는 이제 더이상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나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주고,
진정한 나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여기려고 노력한다.
창작의 위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전조인 셈이다.
이제 창작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 하나로 사진을 찍고, 앱 하나로 음악을 만들 수 있으며, AI의 도움으로 멋진 이미지를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도 있다.
기술은 창작의 문을 넓혔지만, 그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진짜'를 찾기 어려워졌다.
마치 거대한 소음 속에서 나만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결과가 아니다. 지금도 우리는 수많은 창작물을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진정한 '표현'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빠르게 스크롤을 내리고, 좋아요 수를 계산하며, 알고리즘의 흐름에 따라 작품을 만드는 시대,
창작은 내면의 무언가를 꺼내는 일이 아니라, 외부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가장 개인적이고 고유해야 할 창작이, 이제는 가장 보편적이고 비슷해져야 살아남는 다니.
창작의 위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이 위기를 통해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나는왜 쓰는가.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