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심연
"가족이니까"
이 말은 어둠처럼 모든 것을 덮었다.
울음도, 외침도, 질문도. 무슨 말을 해도 돌아오는 건 그 다섯 글자였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해하지 못해도, 용서할 수 없어도, 그래야만 하는줄 알았다.
어릴 적, 나에겐 '가족'은 따뜻한 단어이진 못했다.
밥 냄새가 스며든 저녁 식탁에서 온 식구가 밥을 먹을 때면, 긴장의 연속이였을 때가 많았다.
함께 웃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한적도, 학교생활을 하면서 힘든 이야기를 해본적도 거의 없었다.
부모님을 사랑한다는 생각조차 해본적 없이 지내왔던 것 같다.
식탁위엔 늘 말이 없었다.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만이 대화를 대신했다.
웃음 대신 침묵, 위로 대신 무관심, 우리는 함께 있었지만, 서로를 보지 않았다.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보려 하지 않았다.
엄마의 고단함은 불빛 아래 지친 그림자로 길게 드리워졌고, 아버지의 분노는 술병 속에 숨어
거품처럼 올라왔다.
나는 조용히 숨을 쉬었다. 들키지 않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위해 침묵했고, 그 침묵은 시간이 흐르며 심연이 되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가장 멀리 느껴졌고, 그 깊이를 헤아리는 건 금기처럼 여겨졌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억압, 이해라는 핑계로 무시된 고통.
가족이라는 이름은 따뜻해야 한다고,
사랑이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그 이름 아래 숨겨진 것은 차가운 책임과 가려진 감정의 무덤이었다.
그 깊이를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아프니까, 무섭고, 부끄러우니까.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내가 울고 있을 때 아무도 묻지 않았다는 걸,
내가 사라지고 싶다고 느낄 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걸, 가족이라는 단어가 내게 남긴 건,
다정함보다 깊고 조용한 심연이다.
이제는 조심스레 그 어둠을 젖히려 한다.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이 두렵지만, 진짜 가족이란 아픔까지 마주하는 것 아닐까.
꺼내지 않으면, 그 깊이는 결고 메워지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