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은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들에게 준 권리이다.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에게 준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영화나 글, 사진, 그림, 영상 같은 것들 전부 다 저작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저작물을 출판을 한다든지 영화를 상영한다든지 SNS에 사진을 게시하는 것을 저작권이라고 한다.
저작권이라고 하니 얼마 전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 나오는 문장과 유료 뉴스레터 서비스 롱블랙의
홍보문구가 유사하다는 문제가 제기되는 일이 생각이 난다.
'인생의 난제가 풀리지 않을 때면 달아나는 것도 한 방법이죠,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일 겁니다.'
어느 작가의 제보로 인하여 김영하 작가가 롱블랙 측에 문의하였지만 우연의 일치라는 이야기 외에는
어떠한 사과도 없었던 걸로 안다.
이 사건을 두고 많은 독자나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몇 마디 비슷한 문장으로 표절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도 하였다.
김영하 작가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냐"며 "제가 너무 예민한 거냐"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김영하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인생, 난제, 이유, 여행이라는 네 단어는 김영하 작가의 고유표현이기도 하다.
이 처럼 저작권의 문제는 예술가들에게는 예민한 문제이다.
문학이든 음악이든 요즘은 댄스에서도 표절의 시비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생소하게 생각할 수 있는 댄스에도 저작권을 해놔야 한다는 어느 댄스리더의 이야기를 듣고 그게 가능할
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가끔 아이돌댄스가 비슷하다는 의견이 제기가 되어도 손동작 하나만 방향만 바꾸면 다르지 않냐고 오리발을 내버리면 그만인 사례들을 많이 봐왔다.
창작의 아슬아슬한 경계는 어디까지 인지 예술가들조차도 정확히 알 수가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저작권이라는 걸 정확히 해놓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때 사건해결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이것도 그들이 만든 창작물의 결과물이니 저작권 설정을 해놓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냥 쓴 글들인데 다른 책과 서사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을 수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도 내가 글을 쓰다 보면 어디선가 많이 본 글을 썼나라는 아슬아슬하다는 느낌을 받아서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를 반복하게 된다.
그만큼 창작은 아슬아슬한 경계의 지점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전 세계의 나라에서 어떻게 비슷한 곡이나 비슷한 영화의 소재 책내용이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가수들도 유행 따라 비슷한 이미지의 그룹이 나올 때가 많듯이 말이다.
여덟 단어라는 책을 쓴 박웅현 작가는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이 성찰하며 우리에게 꼭 필요한 여덟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책에서 자존이라는 말이 인상이 깊었다. 문학적 관찰과 통찰력을 통하여 본인의 자존을 회복하고
진정한 철학과 문학 창작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통찰력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말이 창작과 문맥이 상통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창작이라고 하면 겁부터 먹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이게 저작권의 문제와 아예 관련이 없다고는 보지 않는다.
책 읽어주는 유튜브채널을 이용하는 편인데 대부분 고전책을 많이 읽어 주거나 생존해 계시지 않는 분의
책을 많이 읽어 주곤 한다. 어쩜 이 유튜버도 저작권과 관련된 지식을 갖고 책을 선택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저작권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고전분야의 책을 영화로 만드는 경우 저작물에다 특정한
표시를 해야 한다고 한다. 'CCL(Creative Commons License) 저작권 라이선스'이라는 표시를 하고 몇
가지 조건들을 붙여놓고 따로 묻지 않고 사용해도 된다는 것이다.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완전한 방법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저작권 침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야 함은 맞는 말이다.
덧붙이자면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이용하려고 할 때에는 그 사람의 권리를 보호해 줘야 하기 때문에 임의로 이용해서는 안된다. 영상 저작물은 공표되고 난 후부터 50년까지 보도되다가 70년으로 연장이 되기도 하니 유의해야 할 것 같다.
아슬아슬한 창작의 경계에서 우리는 저작권의 문제를 항상 생각해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가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창작을 하는데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아슬아슬한 창작의 경계가 아닌 완벽한 창작이 존재하길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