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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29. 2021

부부 8

십문칠(10.7) 골덴바지


계절이 바뀌고 색다른 온도를 만나면 자연은 자연대로 우리네들은 우리들대로 옷을 갈아입느라 분주하다. 철이 지난 옷들은 장롱 깊숙이 들어가고, 보풀라기가 솔솔 올라와 있지만 또 입을 것 같아서 넣어두었던 스웨터와 칙칙한 색깔의 바지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계절 별로 갈아입기도 빨아 입기도 다려 입기도 여간 쉽지 않다.


겨울을 알리면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는 아이보리 색 골덴 바지가 등장했다. 한 벌로 3년은 족히 입으셨으니 바지통은 넓어지고 굵은 골이 사라졌지만 두툼하고 따뜻해 보여 푸근한 아버지와는 안성맞춤이었다. 40년 전 자줏빛에 가까운 붉은 골덴 바지를 멋지게 입으셨던 한분이 계셨는데 골덴 바지 하면 지금도 생각난다. 20대 초반 잠깐 직장을 다닌 그곳에 사장님이시다. 세 살배기 손주의 톡톡한 재질의 골덴 바지는 앙증맞고 귀엽고 예쁘다.


남편의 키는 169.7센티. 군대에서 측정한 것이라 반올림해서 그냥 본인 키는 170센티라 명명한다. 뜬금없이 왜  키  이야기를 하냐 하면 모든 바지를 사서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세월이 키를 줄였는지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167센티인데 군대에서 규칙적인 생활로 잠시 늘어난 것이 분명하다. 거기다가 목둘레가 점점 굵어지고 허리둘레는 늘어났다. M사이즈 정도 입어야 하는데 XL 사이즈를 입으니 와이셔츠 소매 길이는 자르고 바지 길이와 바지통을 줄이고 잘라내야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입고 유행하던 시절의 청바지는 땅바닥에 질질 끌리게 입었다. 이때 바지는 반 이상 잘라내야 했던 기억이 있다. 잘라낸 청바지 조각이 아까워 소품을 만들까 궁리도 했었다.


1970년대 중고등학교 시절에 멋을 부리는 여학생은 치마폭을 줄여 입고, 남학생은 바지통을 줄여서 당꼬 바지로 만들어 입었다. 그때 입었던 습관이 지배적이라서 그런지 모든 바지 길이는 다리 복숭아뼈를 달랑 말랑해야하고 거기다가 바지통은 당꼬로 바싹 줄이고 와이셔츠 소매 길이도 손목뼈에 오도록 자르니 버려지는 옷감과 수선비가 옷을 사려고 하면 앞서서 걱정거리다. 줄이고 자르고 하는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지 모른다. 큰 맘먹고 장만한 양모 정장은 손목 길이를 싹둑 자르고 바지 길이도 싹둑 자르는데 아깝기가 그지없었다. 수선비도 만만치 않다. 운동복 바지도 예외는 아니다. 옷을 새로 사서 수선할 부분을 이야기하다 보면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헷갈린다.


유행이라는 것이 돌고 돌아서 바지 길이가 짧아졌다. 4년 전 아들의 결혼식 예복 바지 길이가 복숭아뼈 위로 올라가고 바지통도 좁아져서 예식장에 오신 큰아버지께서 아들 바지가 수선을 잘못했나 줄어들었다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남편은 10년 전 담배를 먼저 끊고 술도 따라서 끊었다. 담배와 술은 기호 식품이니 마음먹으면 끊을 것 같지만, 호기심에 고등학교 때부터 슬쩍슬쩍 손을 댔던 것이라 사실 끊기가 어렵다. 술 먹을 시간에 걷기를 시작했고 천천히 체중이 줄어서  80 킬로 나가던 몸무게가 지금은 72킬로가 되어 슬림 해졌다. 뱃살이 빠지니 허리 벨트 구멍을 몇 개를 새로 뚫었다.


한 해가 지나면 입던 옷을 입더라도 한 벌 정도는 새 옷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것이 살아가는 일상이요,  순환이며, 그냥 사는 거다. 바지를 사러 가면 먼저 길이 짧은 것, 바지통 좁은 것부터 살피는 것이 익숙해져 있다. 같이 가서 입어보라고 하면 맞지 않는다고 힘들어한다. 그래서 우선 적당한 것을 사 가지고 와서 수선을 하는 코스가 편하다. 요즈음 코듀로이 라고 부르는 골덴바지, 통은 좁고 길이는 짧은 것으로 열심히 찾다 보니 허리 뒤쪽은 고무줄로 되어 있고 길이도 적당한 골덴 바지가 있다. s사이즈가 바지 길이는 좋겠지만 허리 사이즈가 있으니 M사이즈로 입어봤다.  맞는다. "어머" 그냥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나 줄이지 않는 바지가 나타나다니 이리 반가울 수가 있나. 결혼 전에는 몰라도 결혼해서 수선집을 가지 않는 바지는 없었다.


일요일 아침 성당을 가려고 거울 앞에서 요리보고, 조리 보고, 길이도 내려다본다.  원래도 작던 엉덩이가 살이 빠지니 더  밋밋하다. 그래도 바지통과 길이가 딱 맞으니 십문칠이다. 본인도 줄이지 않는 바지는 생전하고도 처음이라며 웃으면서 말한다. '참 별일일세 별일이야. 까만 양말이 어울리려나"




2021년 11월 28일  일요일. 낮 기온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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