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왔다
왜 나는 내 고향에서 낯섦을 느끼는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날이 왔다.
7개월만의 유럽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2주도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마음이 급격히 뾰족해짐을 느끼고 있다.
유럽에 있을 때는 행복해서, 또는 그 느긋함과 여유에 취해버려서, 그 여유에 의무감을 부여하기 싫어서 기록을 하지 않았는데 막상 돌아와보니 그때의 그 감정과 행복감을 활자로 남겨둘 걸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2주도 채 되지 않았는데, 왜 나는 벌써 서울생활에 지쳐버린 것일까. 귀국하자마자 다음주부터 일을 시작한 영향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헬싱키에서는 집 근처에서 파란 하늘과 푸르른 나무와 풀들을 보면서 걷기만 해도 힐링되고 하루의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았다. 근데 서울에서 산책을 하면 그저 엄청난 인파와 먼지 가득한 하늘과 빌딩숲과 건물들만 눈에 들어온다. 집 근처 공원을 가면 그나마 낫지만,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가장 힘든 건 대중교통이다. 내가 지금 다니는 직장은 집과 거리는 멀지 않는데, 두번이나 환승을 해야한다. 출퇴근 시간, 인파에 휩쓸려 떠밀리고 내릴 때마다 사람을 뚫고 잠시만요와 죄송합니다를 외치고 줄을 서서 기나긴 에스컬레이터를 오를 때는 이따금씩 혼이 빠지는 것 같다. 사실 통근시간으로만 보면 헬싱키에서 학교를 오갈 때나, 시내를 다녀올 때의 시간과 다르지 않은데 그냥 그 사람에 치이고 바쁘고 여유 없는 인파 속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왜 그럴까.
그리고 나이..와 사회생활.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는 내 나이를 궁금해하고 또 나는 내가 왜 이 나이에 이 새로운 일을 하는지를 설명해야 하고 나는 내 나이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왠지 모를 의무감과 부담감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사회생활하는 나의 모습은 흡사 가면을 쓴 것 같다. 그래, 이전에 3년 10개월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사회생활을 했다. 그때는 내가 나름 사회생활을 할 줄 안다고 생각했고. 근데 교환학생 및 해외 인턴을 하면서 내 진짜 편한 모습이 뭔지 알게 됐고, 꼭 일을 하기 위해서 작위적인, '사회생활을 위한 나'라는 자아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서도 일을 했지만 눈치 보고 센스 있고 뭐 이런거 필요없고 그냥 내 일만 하면 됐다. 그리고 6-7살 어린 친구들 또는 나보다 열몇살 많은 사람들이랑 말하면서도, 내 나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근데 한국에 와서는 이전과 똑같은 그런.. 가면을 쓴 듯한 생활을 하고 있다.
분명 28년 넘게 살던 내 나라인데, 왜 나는 갑자기 이 모든 생활이 낯설고 답답한 걸까. 결국 해답은 무엇일까. 이 모든 것에 다시 무감각해져야 하나? 아니면 또 다시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아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