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헌책방에서 책을 종종 구입한다. 이유는 새책을 사서 읽고 실망했던 경험이 많았던 반면 헌책은 비교적 선방하는 듯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새책을 구입할 때 실망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유는 모르겠고 오히려 새것에서 더 큰 만족을 얻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싶어 자신이 부조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참에 곰곰이 생각해봤다.
첫 번째 가능성은 나의 선택 로직과 관련되어 있다. 새 책을 사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제 값을 주고 사는 만큼 도서관에서는 예약이 밀려 한동안 빌릴 수 없고, 헌책방에는 나오는 족족 팔려나가 살 수 없는, 간혹 헌책방에 나와도 희소성 때문에 새책과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 책들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희소성 있는 책을 선택한다는 말은 바꿔 말해 타인의 취향을 택한다는 말이다. 음악을 들어도 Top 100에서 들을만한 노래를 4~5개 밖에 찾지 못하는 내가 타인의 취향을 택한다는 건 성공확률이 5% 이내가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헌책방에 가보면 불과 몇 달 전까지 무척 인기 있던 책이 무더기로 나와 쓸쓸하게 쌓여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것을 보면 타인의 취향을 따르다 실패하는 게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두 번째 가능성은 책의 편집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재미있는 글들은 주로 앞쪽에 포진되도록 편집한다. 영특한 독자들은 책의 중간 부분이나 뒷부분을 슬쩍 살펴보기도 하지만 이미 뒷부분까지 살피고 있다면 어느 정도는 마음을 빼앗긴 상태일 가능성이 크고(앞부분을 읽고 별 관심이 없다면 이미 내려놨겠지, 뒷부분을 살피고 있겠는가?) 이미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 사람에게 객관적인 판단은 무리다. 결국 편집자의 의도를 간파해도 승부는 앞부분에서 나게 마련이고, 이걸 귀신같이 잘 아는 편집자들은 재미있는 글을 무조건 앞부분에 포진시킨다. 말하자면 재미있는 글이란 미끼를 던지는 건데, 서점을 서성이다 미끼를 어설프게 물었다면 결과는 둘 중 하나다. 당장 내려놓거나 그 자리에 서서 20~30분 동안 단물을 빼먹고 내려놓거나. 하지만 편집자들이 보통이 아니기에 낚싯바늘은 예리하고, 미끼는 너무나 먹음직스럽다. 그러니 한번 물었다 하면 구입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서점 문을 나설 수 없게 만든다. 편집자가 독자들의 마음을 빼앗는 글을 잘 알아보는 이유가 비단 유능한 편집자여서는 아니다. 그 글을 읽고 본인도 마음을 빼앗겨 저자에게 출판해보자 러브콜을 보냈기 때문이다. 매일 글을 읽는 게 직업인 편집자의 마음도 빼앗은 글이니 얼마나 재미있겠나? 그런데 관건은 그 재미가 책의 말미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에 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다 보면 질리는 법인데, 하물며 뒤로 갈수록 맛없는 음식이 나오는 코스요리라면 아무래도 실망하지 않겠나? 실망감을 안겨준 책을 헌책방에서 구입한 경우라면 '이래서 주인에게 버림받았구나..' 라며 책에게 동정심을 갖겠으나, 새 책을 구입한 경우라면 나의 책을 보는 안목이 형편없음을 곱씹을 뿐이다.
세 번째 가능성은 투자에 대한 기대감과 관련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헌책은 50%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그러니 새 책을 산다는 건 헌책을 살 때보다 2배를 투자한다는 말이고, 2배를 투자할 때의 심리는 최소 2배의 유익을 기대하게 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최소' 2배다. 만족감을 두배로 높이는 더 쉬운 방법은 1+1이다. 즉 반값으로 할인된 헌책을 두권 사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단 말이다. 그러니 쉽고 확실한 방법을 제쳐두고 새책을 구입할 땐 최소 2배이고, 바람직하기로는 3배, 4배 유익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책 보다 3배, 4배 유익하기를 바라는 독자를 만족시키기가 어디 쉽겠는가? 게다가 서점에 서서 훑어보고 내려놓을 수도 있었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볼 수도 있었는데 헌책방에서 책을 구입할 때에는 그들보다 유익하기를 기대함이 당연하다. 헌책도 이러하니 제값을 주고 새책을 구입할 때에는 6배, 8배의 기대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어이, 출판사들. 감당할 수 있겠는가?